[비즈한국] 국내 항공사의 비상구 좌석 유료 판매에 대해 안전 우려 목소리가 크다. 2014년 4월 제주항공이 국내 최초로 시행한 이후 진에어, 티웨이, 이스타항공,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 저가항공사가 대열에 합류했고, 지난 1월에는 대형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도 ‘유료 사전 배정 대상 좌석’에 ‘비상구(레그룸) 좌석’을 추가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대한항공만 유일하게 비상구 좌석을 유료로 판매하지 않는다.
![아시아나항공이 저가항공사의 뒤를 이어 지난 1월부터 비상구 좌석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사진=아시아나항공 홈페이지](/upload/bk/article/201911/thumb/18921-42975-sampleM.jpg)
비상구 좌석에 탑승한 승객은 비상 상황 발생 시 비상구를 개방한 후 슬라이드 밑에서 다른 승객들이 신속하게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항공을 제외한 국내 항공사는 ‘좌석 간격이 넓은 자리’라는 명목을 내세워 비상구 좌석을 유료로 판매한다. 비상구 좌석 구매 요금은 노선에 따라 상이한데, 저가항공사가 5000~3만 원, 아시아나항공이 3만~15만 원에 요금을 책정해 운영하고 있다.
비상구 좌석을 판매하는 국내 항공사는 자사 홈페이지에서 항공권을 예매할 때 사전 좌석을 배정받거나 항공권을 발권할 때 승무원의 권유로 비상구 좌석을 배정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췄다. 그런데 비상구 좌석에 대해 ‘안전’보다 ‘편의’를 강조하며 구매를 유도한다는 게 문제다.
아시아나항공 홈페이지의 ‘좌석 배정’에는 비상구 좌석이 ‘다리 공간이 일반석보다 더 넓어 더 여유로운 좌석’이라 소개돼 있다. ‘좌석 이미지 보기’에서도 ‘이코노미 레그룸’을 클릭하면 ‘일반 좌석 대비 16~38cm 넓은 다리 공간’이라는 문구와 함께 ‘아시아나항공이 운항하는 국제선 노선에 대해 다리 공간이 더 여유로운 좌석을 미리 선택하여 구매하실 수 있는 선호좌석 사전예매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는 내용의 안내창이 뜬다.
![비상구 좌석을 배정받은 승객은 좌석 간격이 넓어 편리할 수는 있으나 비상 상황 발생 시 비상구를 개방한 후 다른 승객들이 신속하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사진=아시아나항공 홈페이지](/upload/bk/article/201911/thumb/18921-42974-sampleM.jpg)
익명을 요구한 아시아나항공 승무원 A 씨는 “넓은 좌석에 앉고 싶어 비상구 좌석을 선택한 승객이 많다보니 ‘다른 승객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했는데, 왜 봉사해야 하냐’고 반문하는 승객이 더러 있다. 이 경우 추가 요금을 환불해준 후 다른 승객과 자리를 바꿀 수밖에 없다”며 “자격 요건이 까다롭지 않은 게 문제다. 만 16세 이상 만 65세 미만의 신체건강하고, 승무원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승객이라면 누구나 비상구 좌석을 배정받을 수 있다. 안전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상품을 판매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국내 최초로 비상구 좌석을 판매한 제주항공을 비롯해 다른 저가항공사도 비상구 좌석을 배정하기에 앞서 ‘넓은 자리’라고 강조한다. 제주항공 승무원 B 씨는 “홈페이지에서 항공권을 구매할 때, 공항에서 항공권을 발권할 때, 이륙 전 비상구 좌석에 착석했을 때, 무려 세 차례에 걸쳐 비상 상황 발생 시 행동 요령에 대해 설명하고, 동의서에 서명도 받는다. 하지만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당황해서 다른 승객들의 대피를 도와주지 못할 수도 있다”며 “군인, 경찰, 소방관 등 특수 직군 종사자들에게 먼저 비상구 좌석을 배정하면 좋겠지만, 유료화된 이후 사실상 불가능하다. 비상구 좌석을 비워둬야 비상 상황 발생 시 승무원이 원활히 대처할 수 있는데, 돈벌이에 급급하다보니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대한항공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비상구 좌석을 판매하지 않으나 등급이 높은 회원에게 선배정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사진=대한항공 페이스북](/upload/bk/article/201911/thumb/18921-42977-sampleM.jpg)
한편 비상구 좌석을 판매하지 않는 대한항공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을 받는다. 회원등급이 높은 승객에게 비상구 좌석을 선배정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항공사 관계자는 “대한항공을 자주 이용하는 승객부터 좌석이 넓은 비상구 좌석을 배정하는 건 문제”라고 따끔하게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전 세계 항공사가 비상구 좌석을 유료로 판매하는 추세다. 항공기 이륙 전 충분히 행동요령을 숙지시키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설명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비상구 좌석의 유료화에 대해 내부적으로 검토한 적 없다”고만 밝혔다.
유시혁 기자
evernuri@bizhankook.com[핫클릭]
·
우버가 택시회사를 사면? 한국 재진출 가능성 팩트체크
·
아시아나항공 매각, 'LCC 치킨게임'에 불붙일까
·
'암환자들 복용' 동물구충제 '펜벤다졸' 정식 임상 어려운 이유
·
현대엔지니어링 그룹 핵심 재무통 영입 둘러싼 뒷말 무성한 까닭
·
[단독] 저축은행 대표, 아내 회사 '무더기 피소' 내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