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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덕텔링] 방산 FTA 'RDP-A'는 해외 수출길 열쇠 아닌 입장권

시장 요구에 맞는 제품 경쟁력 확보가 우선돼야…계약 체결 전 국내법 수정도 중요

2024.07.01(Mon) 13:40:57

[비즈한국] 방위산업은 민수산업과 달리 국가 주도로 진행된다. 즉, 국가 노력이 수출 성공과 산업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대한민국의 경우, ‘수출 대박’ 상품인 K-9 자주포나 K-2 흑표 전차 등은 국가 연구기관인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주도하는 등,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미국 수출에 성공한 노르웨이의 JSM미사일. 사진=김민석 제공

 

하지만 정부의 역할이 방산 수출에서 크게 중요해도, 결국 제품 경쟁력이 없다면 그 어떤 정부 지원도 소용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이 관점에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것이 일명 ‘방산 FTA’로 불리는 ‘RDP-A’다. 대통령이 직접 조기 추진을 언급한 만큼 체결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이 계약의 실익에 대한 논의가 충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추진되고 있다.

 

실제로 RDP-A가 방산 FTA라는 별칭을 붙이기에는 그 범위나 내용이 과장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현재 한국 방위사업 중에서 미국군이 운용할 무기, 미국군이 사고 싶어 하는 무기가 없는 문제를 먼저 해결하지 않으면 RDP-A가 아무리 좋아도 별 성과가 없을 것이다. 마치 RDP-A가 체결되면 우리가 미국 방위산업에 진출할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됐다.

 

물론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확고한 진실 한 가지는 있다. 현재 미국 방위산업 시장에 진출해, 미국군에 무기를 수출하는 데 성공한 방위산업 기업을 가진 국가들은 예외 없이 RDP-A를 체결했다. 거의 큰 예외 없이 자신들이 개발한 미국산 무기만 구매하는 미국군에 의미 있는 수준의 수출 실적을 올린 영국, 이스라엘, 이탈리아, 노르웨이 등이 모두 RDP-A에 가입한 국가다.

 

다만 이것을 RDP-A 계약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근거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 RDP에 가입한 지 수십 년 넘은 국가 중 미국 무기체계 시장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한 국가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RDP-A는 미국 방위산업 진출을 성공시켜주는 ‘열쇠’가 아니라, ‘입장권’에 가까운 개념이다.

 

심지어 미국 방위산업 시장에서 의미 있는 매출을 올리는 영국, 노르웨이 같은 국가들은 RDP 체결 전에도 미국 수출에 성공한 무기들을 여러 종류 만들어 낸 바 있다. 정말 경쟁력이 있어 미국군이 필요한 무기는, 미국 방위산업체들이 앞다퉈 협력을 요청해 납품에 필요한 기술적 장벽을 없애준다. 미국 RTX사와 협력해 수출 중인 노르웨이의 NSM 미사일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납품에 성공한 국가들의 사례를 좀 더 살펴보자. 이스라엘의 경우 특수 관계 및 미국이 개발하지 않는 분야의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방산 상품 전략의 달인’이다. 미국의 대외군사원조(FMF)로 무기체계 대부분을 획득하고 이렇게 받은 미국 무기체계에 이스라엘산 장비와 무기를 부착하다 보니, 적들이 새로운 기술이나 장비를 선보이면 긴급한 해결책을 제공하는 제품들이 미국 업체보다는 이스라엘 업체들이 많다.

 

가령 전차에 장착한 다음 요격탄을 발사해 전차를 보호하는 능동방어장비(APS)의 경우 미국도 관련 기술을 연구해 RTX(구 레이시온)의 ‘퀵 킬’(Quick Kill) 등 먼저 연구했지만, 과도한 기술적 목표 설정으로 개발이 실패했다. 미국은 이미 실전에서 성능을 검증한 이스라엘제 APS를 주목했다. 이에 현재 미국 거의 모든 전차와 장갑차에 이스라엘제 APS 장착이 추진 중이다. 세계 최강의 무기만을 원하는 미국은 항상 지구상에서 처음 선보이는 신무기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아 실패할 때도 있었다. 이때 이스라엘은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반대로 미국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전쟁과 전투에 맞는 무기를 미리 개발해 성공한 노르웨이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노르웨이 방위산업체 콩스버그(Kongsberg)사는 미국 육군, 해군, 공군에 상당한 수량의 무기체계를 수십 년째 공급했다. 그 비결은 ‘미국이 미처 준비하지 못한 미래전’을 대비한 무기들을 개발한 것이다.

 

그중 하나가 원격조종 기관총(RCWS)인 ‘프로텍터’(Protector)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장갑차량 피해가 늘어나자 도입하기 시작한 프로텍터 RCWS는 스트라이커 장갑차나 에이브럼스 전차에 장착하기 시작했다. 현재도 미국 육군 RCWS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 있는 NSM(Naval Strike Missile) 미사일이 F-35 전투기, 이지스 구축함, HEMTT 트럭 등에 탑재해 성공한 이유도 프로텍터와 비슷하다. 세계 각국이 미사일의 크기와 위력에만 집중할 때, 소형이지만 장거리 정밀 유도가 가능하고 스텔스 기능을 갖춰 미국보다 먼저 만들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분산된 치명성’(Distributed Lethality)이라는 새 교리를 채택하자 NSM 외의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미국은 대량 주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돌아와 한국의 자랑스러운 ‘K-방산’에서 현재 미국군의 요구를 맞추고, 미국이 필요로 하는 무기가 얼마나 있는지 살펴보면 이스라엘이나 노르웨이에 비해 훨씬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장갑차의 경우 2023년 7월 차세대 장갑차 사업(OMFV)에서 경쟁자에 밀려 탈락했고, 무인지상차량(UGV)의 경우 미국 테스트를 했지만, 에스토니아의 THeMIS 등 경쟁 제품의 성능이 월등하여 채택 가능성이 낮다. 다행히도 TF-50이나 비궁 등 미국 진출이 기대되는 무기는 있지만, 이들 무기의 성공 여부는 RDP-A와 큰 상관이 없다. 우리에게는 미국이 탐낼 만한 ‘킬러 상품’이 부족하다.

 

그래도 몇 가지 한국 무기들은 미국군도 관심을 가질 수 있다. 그중 하나가 ‘드론 탑재 미사일’이다. 본지 칼럼에서 한번 다룬 이 미사일은 탄도 미사일에 AI 기능이 탑재된 드론을 넣어 먼 거리에 있는 핵심 이동 표적을 정밀 타격하는 기능을 갖추는 것이다. 우리는 KTSSM 미사일에 이 드론을 결합해 사용할 예정이다. 미국도 비슷한 개념을 연구 중이지만 실제 발사시험을 실시한 한국보다 개발 진척 상황이 느리기 때문에 미국과의 공동개발이나 수출에 도전할 만하다.

 

문제는 이런 무기체계들은 ‘전략 무기’로 분류돼 비공개 사업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수출을 위해서는 국가적인 결정이 필요하다. 진짜 미국에 수출할 만한 아이템, 미국군이 관심을 표할 수 있는 미래 전장 환경을 고려한 무기 개발이 RDP-A 체결보다 선행돼야 할 것이다.

 

또 다른 문제도 RDP-A 타결 전에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한국 방위산업의 독특한 ‘국산화’ 정책 문제다. 해외에서 도입한 무기체계나 부품을 한국산 제품으로 교체하는 국산화 정책은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뿌리이자, 지금도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점점 무기체계의 IP(지적재산권)에 대해 해외 방위산업체들이 민감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내 방위산업 초창기에는 제조사의 허락이나 인증 없이 우리가 무단으로 복제 생산을 진행해서 지금도 특정 업체들은 미국 진출이나 미국 무기의 면허 생산이 제한된 회사가 있고, 현재는 국방 분야의 특수성을 이유로 존속하고 있지만 RDP-A 체결 후 이 문제가 다시 미국 방위산업체의 문제 제기로 수면 위에 올라올 가능성이 크다.

 

혹자는 RDP-A가 국내법보다 우선할 수 없기에 이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을 내지만, 반대로 한미 FTA의 경우 FTA의 작동을 위해서 많은 국내법이 수정을 거쳤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RDP-A가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미국 방위산업의 이득과 이해득실을 만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미 FTA 때에는 한국만 FTA 이후를 걱정한 것이 아니다. FTA 이전에도 한국은 자동차와 휴대전화 등 막대한 양을 미국에 수출했고, 미국 경제계는 한미 FTA로 값싸고 성능 좋은 한국산 제품들이 물밀듯이 들어오면 미국 산업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현재 RDP-A는 그야말로 ‘한국만의 관심 사항’이나 다름없고, 미국 본토에서 RDP-A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는 전문가는 물론, 한국과 미국이 RDP-A를 추진 중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조차 적다. 왜 이런지에 대해 한번 깊게 고민해 봐야 한다.

 

RDP-A의 조기 추진보다, 우리가 ‘미국이 살 만한’ 무기를 만드는 것이 먼저다. 이스라엘이나 노르웨이가 미국 시장을 뚫은 것도 다 그런 과정을 통해 성공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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