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저축은행의 점포 폐쇄 속도가 가속화하고 있다. 올해 들어 문 닫은 곳만 벌써 10곳을 넘겼다. 유동 인구가 많은 서울에서도 빠르게 줄면서 고령층 등 금융 소비자의 접근성이 약화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저축은행중앙회가 5월부터 신규 점포 폐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면서 기준을 높였지만, 현장에선 비용 절감과 디지털 전환 등으로 폐쇄 가속화는 막을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올 상반기 국내 저축은행 점포 11곳이 문을 닫은 것으로 나타났다. 저축은행중앙회 공시에 따르면 2분기 오케이저축은행에서 2개, 더케이·JT·융창·DB저축은행에서 1개씩 총 6개 점포를 폐쇄했다. 1분기 5개(SBI저축은행 2개, JT친애·신한·페퍼저축은행 1개)보다 한 개 더 줄었다. 지역도 다양하다. 서울이 5개로 가장 많았고 경기도에서 2개, 인천·전북·전남·충북에서 1개씩 점포가 사라졌다, 상반기 중 영업소를 신규 개설한 곳은 없었다.
#폐쇄 지점 매년 10개 이하였는데 올 상반기에만 11곳
저축은행 업계도 일반 은행처럼 오프라인 영업점을 정리하는 추세다. 금융감독원 통계자료에 따르면 저축은행 점포는 2018년 312개에서 2019년 305개, 2020년 304개, 2021년 294개, 2022년 283개, 2023년 276개로 꾸준히 감소했다. 최근 6년 사이 폐점한 점포는 매년 10개 이하에 그쳤는데, 올해는 반년 만에 11개 점포가 사라지면서 폐쇄 속도가 급격하게 빨라졌다.
7월에도 점포 폐쇄는 이어지고 있다. 12일 상상인저축은행이 부천지점을 닫고 평촌지점과 통합했다. 같은 경기도권이긴 하나 부천지점은 부천시 원미구, 평촌지점은 안양시 동안구에 있어 생활권이 완전히 다르다. 31일에는 SBI저축은행이 서울시 강남구에 있는 청담지점의 문을 닫는다. SBI저축은행의 경우 1월에도 강남지점을 폐쇄했다. 인근에 강남금융센터가 있어 사라진 청담지점과 강남지점을 이곳에서 통합 관리하고, 잠실·올림픽·이수지점에서도 고객을 받는다.
저축은행들은 △내점 고객 감소 △수익성 악화 △경영 효율화 등의 이유로 점포를 폐쇄한다고 밝혔다. 업계에선 저축은행 업황이 악화한 만큼 비용 절감을 위해 점포 폐쇄는 불가피한 수순으로 본다. A 저축은행 관계자는 “2018년부터 디지털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일면서 지점이 점점 줄고 있다”며 “최근 업황이 너무 어려워진 것도 이유”라고 설명했다.
일반 은행과 달리 저축은행은 영업점 고객의 비중이 작다는 의견도 있다. 앞선 관계자는 “사실 일반 은행과 고객층이 다른 저축은행 입장에선 점포를 운영하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다. 영업점을 운영하는 게 손해인 곳도 많다”며 “일반 은행이야 예금 가입이나 대출 상담 등 다양한 이유로 영업점을 찾지만, 저축은행은 예금 가입 때와 만기 해지 때 한 번씩 찾는 정도”라고 전했다.
저축은행이 점포를 폐쇄하는 배경엔 수익성 악화가 크게 자리하지만, 금융 업무의 디지털화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예금 가입이나 해지 정도는 앱으로 해결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수신업무 위주의 저축은행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이다.
실제로 25일 오전 서울시 강남구의 선릉역 주변의 은행 점포를 방문해 보니 일반 은행과 저축은행 점포의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선릉역 일대에는 애큐온·오케이·예가람·JT친애·NH·DB·BNK저축은행과, 신한·하나은행 등 일반 은행이 모여 있다. 저축은행의 경우 대기 손님이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한두 명의 고객만 창구 업무를 보고 있어 여유로운 분위기였다. 반면 주요 시중은행의 영업점은 점심시간을 틈타 방문한 고객들로 가득해 대기해야 했고, 자동화기기(ATM)마저 모두 사용 중인 곳도 눈에 띄었다.
B 저축은행 관계자는 “저축은행 영업점에서 업무를 보는 고객은 90% 이상이 예금 개설·해지가 목적”이라며 “일반 은행에선 수신·여신 업무 외에도 다양한 업무를 취급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과거에는 저축은행 앱이 오류도 많고 사용하기 불편했지만, 최근에는 많이 개선돼 이용할 만하다”며 “고령층 고객을 감안해 앱을 단순하고 사용하기 편하게 만드는 추세다. 스마트폰으로 은행 업무를 능숙하게 보는 고령층도 과거에 비해 늘었다”라고 짚었다.
#폐쇄 가이드라인 시행했지만…업계 “대세 영향 없어”
하지만 저축은행을 찾는 고령층이 많은 만큼 이들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저축은행중앙회는 신규 점포 폐쇄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5월부터 시행했다. 업계에 따르면 신규 가이드라인은 점포 폐쇄 조건을 점수화 하는 등 기준이 대폭 강화됐다. 가이드라인 적용 대상은 5월부터 폐쇄한 곳이 아닌, 사전 신고 일자를 기준으로 한다.
신규 가이드라인에 따라 저축은행은 점포 폐쇄와 관련한 사전 검토서를 저축은행중앙회에 제출해야 한다. 여기에 평가 점수 산정표가 있는데, △폐쇄의 당위성 △수신·여신 증감 추세 △거래자 수 추이 △소비자 지원 계획의 적정성을 기준으로 폐쇄 합리성을 평가한다. 총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60점 미만이면 부적합으로 판단한다. 부적합 판정을 받으면 보완을 거쳐 다시 검토를 받아야 한다.
소비자 지원 계획에는 영업점 폐쇄 안내문을 홈페이지·영업점에 게시하는 것과 더불어 고령층을 위한 모바일·인터넷 뱅킹 사용법 교육이 포함됐다. 지정된 담당 직원이 점포에 상주하면서 내점 고객을 대상으로 사용법을 안내하는 식이다. 그동안 저축은행의 점포 폐쇄는 내점 고객 감소 등 일정 조건을 맞춰 저축은행중앙회에 신고했는데, 가이드라인에 점수표가 들어가면서 허가제에 가까워진 셈이다.
다만 이 같은 방식이 실질적으로 감소 속도를 늦출지는 미지수다. 업계 관계자는 “저축은행중앙회의 승인을 받아야 내부 결재를 받을 수 있으니 실무선에서 까다로워진 것은 맞다”면서도 “회사마다 점포 폐쇄를 오래 계획해서 결정할 텐데 폐쇄 자체에 영향을 미칠지는 의문”이라고 짚었다.
고령층 교육은 이미 현장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반기 중 점포를 폐쇄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여러 저축은행이 이전부터 고령층·장애인을 위한 전용 창구를 운영하거나 앱을 단순화하는 등 소비자 보호 지원책을 실행해왔다”며 “설령 지원책이 없더라도 다른 점수 기준을 충족하면 되니 필수 조건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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