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펜벤다졸 복용량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루에 1g(그램) 기준으로 섭취하다가 복용량을 올려보세요.” “다른 암은 복용량을 살짝 올리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조 티펜스 씨의 방법대로 CBD 오일(칸나비디아 오일·대마 오일)을 함께 먹는 게 좋죠. 오일을 구하기 어려우면 들기름이나 올리브유도 괜찮아요.”
병원이나 약국에서의 대화가 아니다. 암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모인 텔레그램과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오가는 이야기다. 폐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미국인 조 티펜스 씨가 펜벤다졸 성분이 함유된 독일 제약사 머크사의 동물용 구충제 ‘파나쿠어C’를 먹고 완치했다는 이야기가 지난 9월 유튜브를 통해 전해진 이후, 환자 및 보호자들이 의사와 약사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이들은 서로의 상태를 진단해 조 티펜스 씨의 복용법을 토대로 복용량을 제시해준다.
암 환자와 보호자들은 주로 조 티펜스 씨가 제시한 치료요법을 따르고 있다. 펜벤다졸과 비타민 E, 그리고 오일을 함께 섭취하는 방법이다. 3일 연속 복용 후 4일째는 복용을 중단하는데 이를 8~16주 반복한다. 펜벤다졸 성분 동물용 의약품 중에서도 조 티펜스 씨가 복용한 파나쿠어C를 선호한다. 그러나 과립 형태인 파나쿠어C는 국내에서 시판되지 않는다. 때문에 펜벤다졸 성분 국내 허가 의약품에 관한 관심도 높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파나쿠어정, 옴니쿠어 등 42개의 펜벤다졸 성분 동물용 의약품이 시판 중이다.
처음에 환자와 보호자들은 동물병원이나 동물용 의약품을 파는 약국에 돌아다니는 등 발품을 팔았다면, 지금은 어느 정도 요령을 터득한 모습이다. 이들은 주로 해외 직거래 사이트를 이용하거나 해외 거주민들의 대리 구매를 활용한다. 아버지가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은 이 아무개 씨(29)는 “제주도에 있는 동물용 의약품을 파는 약국까지 찾아가 파나쿠어정을 구했다”며 “지금은 전국적으로 거의 구매가 불가능해서 추가로 약을 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지난 7월 폐선암 4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를 보살피는 조 아무개 씨(35)는 “약을 구하는 건 오히려 쉬웠다. 이베이나 아마존에서 주문하면 쉽게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살 수 있다면 부작용이 두렵겠나”
치료 대상이 되어야 할 암 환자나 보호자들이 치료 주체가 된 데는 그만한 사정이 있다. 펜벤다졸 성분 의약품의 경우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은 ‘동물용 의약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병원이나 약국에 찾아가도 복용 지도를 받을 수 없다. 환자들이 의사로부터 펜벤다졸 처방을 받기 위해서는 펜벤다졸 성분 의약품이 특정 암을 앓는 국내 환자를 대상으로 항암 효과에 대한 임상시험을 거친 후 의약품 허가가 나야 한다.
식약처와 대한의사협회, 대한수의사회, 대한약사회 등 정부 기관과 전문가 집단은 ‘검증되지 않았으니 복용하지 말라’는 일관된 입장이다. 펜벤다졸의 항암 효과는 세포와 동물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이므로 사람에게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주관부서인 농림축산식품부는 동물용 의약품을 동물 진료 없이 판매하면 불법이라고 강조했다. 약사법에 따라 동물용 의약품은 사람용 의약품과 마찬가지로 병원이나 약국에서만 판매해야 한다.
그러나 환자들과 보호자들은 ‘부작용’보다도 펜벤다졸을 먹지 못하는 상황이 올까 봐 두렵다고 말한다. 앞서의 조 아무개 씨는 “병원에서 임종까지 얘기하는 상황이었는데 펜벤다졸을 먹고 3일 만에 상태가 좋아졌다”며 “통관이 안 되게 막는 등의 조치만 안 했으면 좋겠다. 본인의 선택이지 않나”고 반문했다. 식약처는 동물용 구충제 대신 사람에게 항암효과를 나타낸 의약품 복용을 권고한다. 하지만 기존의 약이나 항암치료가 듣지 않는 말기 암 환자들에게 펜벤다졸은 ‘실낱 같은 희망’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말기 암 환자를 중심으로 펜벤다졸 요법이 확산됐다면, 지금은 초기 암 환자도 복용하는 상황이다. 동생이 자궁경부암 2기인 박 아무개 씨(35)는 “펜벤다졸이 꼭 말기 암에만 효과가 있을까. 동생이 자궁을 적출할 상황인 데다 다른 환자들의 후기에서 큰 부작용이 나오지 않아 써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다만 교모세포종 등 뇌종양 환자들이 모인 카페에서는 펜벤다졸에 다소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뇌종양은 재발하면 끝이라 모험을 안 하려 하는 것 같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식욕 증진 VS 발열…제약사 임상시험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
여러 관련 커뮤니티의 환자와 보호자들의 펜벤다졸 ‘자가 임상’ 결과를 종합해보면, 효과와 부작용 모두 나타났다. 다만 아직은 긍정적인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식욕이 증진됐다는 이야기가 많았고 암세포 크기가 줄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다만 복통과 열감을 호소한 환자들도 적잖았다. 설대우 중앙대 약학대학 교수는 “암 환자들에 대한 펜벤다졸의 항암 작용에 대한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기는 하지만 약효는 사람 특성에 따라 다를 수 있다”며 “진통제를 예로 들면, 어떤 사람은 타이레놀이 잘 맞고 누구는 잘 들지 않는다. 또 플라시보 효과가 작용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환자들 사이에서는 항암 효과가 속속 증명되고 있는데 왜 국내 제약사가 임상시험에 뛰어들지 않는지 의문을 표하는 이들도 적잖다. 하지만 환자들이 진행하는 자가 임상 결과를 토대로 펜벤다졸 성분 동물용 구충제를 사람용 의약품으로 허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약품 임상시험은 대상 환자와 작용 기전을 정해놓은 아주 통제된 상황에서 철저하게 이뤄지는 반면 환자들이 거치는 자가 임상의 경우 복용 기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정식으로 임상 절차를 밟겠다는 제약회사 역시 아직까지 없다. 효과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없으면 임상시험에 투입되는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감내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또 펜벤다졸은 발명된 지 40년이 되어 특허가 만료된 상황이라 어느 제약사나 개발할 수 있어서 경쟁력이 약하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특정 질병에 효과가 있는 물질이 발견됐다 하더라도 바로 임상시험에 들어갈 수 없다. 효과에 대한 근거 평가, 약물의 독성, 안정성 등의 검토가 완료돼야 실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의약품을 허가하는 기관인 식약처가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임상시험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한다. 그러나 식약처는 약의 임상을 거치는 기관이 아니며,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정부 기관이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해당 의약품에만 특혜를 준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다. 따라서 결국 공익적 목적으로 임상시험을 할 제약사가 나오거나 학회와 정부에서 임상시험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는다.
식약처 관계자는 “개 구충제에 항암 효과가 있다고 하지만 환자들이 다른 의약품과 병용해 먹은 경우가 많고 플라시보 효과가 강하게 작용했을 수 있다. 결국 제약회사가 임상시험을 거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며 “환자들의 고충을 이해한다. 다만 식약처는 임상기관이 아니다. 국내 펜벤다졸 성분 의약품을 시판 중지하거나 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동물용 의약품은 농림축산식품부 소관이다”고 답했다.
김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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