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요즘 예능 뭐 봐?”라고 물었을 때 요즘처럼 답하기 곤란할 때가 또 있을까. ‘무한도전’을 보는 게 주말의 루틴이었고, ‘나 혼자 산다’와 ‘한끼줍쇼’를 꼬박꼬박 챙겼고, ‘신서유기’에 포복절도하던 때가 있었다. 요즘은 레거시 미디어에서 챙겨 보는 예능이 거의 없다. 대신 유튜브의 몇몇 채널들을 본다. 유튜브 채널에서 보이는 얼굴들도 기존 TV에서 보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그럼에도 TV에서 보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활기가 넘친다. 대표적인 이가 뜬뜬 채널 속 토크 콘텐츠 ‘핑계고’에 등장하는 유재석이다.
뜬뜬 채널은 유재석의 소속사 안테나가 여러 분야의 크리에이터들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독립 예능 스튜디오인 안테나 플러스에서 운영하는 채널이다. 2022년 10월 개설돼 현재 구독자 수 200만 명을 넘어선 채널로, 그중 ‘유재석이 별의별 핑계로 좋아하는 친구들과 자유롭게 수다를 떠는 토크 콘텐츠’인 웹예능 ‘핑계고’는 뜬뜬의 킬러 콘텐츠. 첫 화에서 유재석이 친한 형 지석진과 함께 공원 길바닥에서 ‘수다를 떨어재끼는’ 것으로 시작한 이 코너는 이제 인기 정상의 K팝 그룹과 글로벌 스타인 이정재, 예능 프로그램에서 얼굴을 볼 수 없었던 배우 송강호까지 출연하는 어마무시한 코너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핑계고’는 홍보에 목마른 스타들이 선택하는 인기 예능의 대체물이 될 것 같진 않다. 중심에 있는 유재석이 즐거워야 하는 것이 이 웹예능의 최우선이기 때문.
지난 6월 22일 공개된 ‘여름나기는 핑계고’ 편을 보자. 영화 ‘탈주’ 홍보를 위해 주연배우인 이제훈과 구교환이 게스트로 출연했고, 지석진이 이날의 보조 MC로 등장했다. 이제훈과 구교환 모두 유재석이 진행하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적이 있어, 친분이 있는 편이지만 이날 나온 대화들은 작품 홍보를 위해 예능에 출연한 이들에게서 들을 수 없었던 대화가 주를 이루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유재석이 이제훈에게 자라난 출신 동네를 물었고, 이제훈이 의정부 쪽이라 답했다가, 이를 지석진이 받으면서 개봉 영화가 의정부 쪽이 가격이 좀 저렴해서 학생 땐 그쪽으로 가서 영화를 봤다고 답했다가, 구교환이 조조할인과 옛날옛적 ‘TTL 할인’을 언급했다.
그리고 이제훈이 이 편의 하이라이트이자 사이다 발언을 내놓는다. “통신사 할인도 조금씩 더 박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 발언이 나오면서 ‘조심스레 내보는 목소리’라는 자막이 뜨지만, 이어지는 이제훈의 발언은 시원시원하다. “아, 이게 요금은 요금대로 내고 있는데 해마다 혜택이 왜 이렇게 줄어들지? 그 포인트를 쓸 데가 너무 없으니까.” 여기에 유재석과 지석진이 목소리를 얹고, 이제훈이 다시 자신은 번호이동없이 25년간 (통신사에) 배신하지 않고 이 충성을 바쳤는데 돌아오는 게 없다며 화룡점정을 얹는다. 통신사 장기고객과 멜론 장기고객이라는 유재석의 ‘찐 호응’이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과 같았다는 건 당연하고.
한 번 물꼬를 튼 이들의 대화는 통신사 할인 혜택에서 음원서비스 앱 장기 고객에 대한 혜택이 미비한 것에 대한 서운함으로 이어지고, 그 와중 서로의 음원서비스 앱에 대한 장단점 토론이 얹혀지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각자의 성격과 취향이 보여지는, 한 편의 실생활 콩트 같은 대화로 흘러갔다. 이 ‘찐 감성’의 대화에 대한 대중의 호응도 열화와 같다. ‘진짜 통신사들 반성 좀’ ‘대단한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4명이 진짜 평범한 얘기로 공감을 주고 웃게 하니까 너무 좋음’ ‘이번 핑계고 최고의 홍보였음. 저 두 분이랑 한 시간 떠들고 영화관 약속장소에 나가야 될 거 같어’ 등등 댓글창도 이들의 케미에 ‘찐으로’ 스며들었다.
그런가 하면 천하의 유재석을 들었다 놨다 하는 재기 발랄함을 톡톡히 보여주고 가며 웃음을 안긴 편도 있다. 신재평, 이장원 2인 밴드인 페퍼톤스가 출연한 지난 4월의 ‘미니 핑계고’ 같은 경우. ‘핑계고’는 초대 게스트의 일정과 성격에 따라 평일에 공개되는 30분짜리 ‘미니 핑계고’와 주말에 선보이는 기존의 ‘핑계고’로 구성되는데, 이 짧은 30분짜리 ‘미니 핑계고’도 종종 1시간짜리로 편성해도 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 환상의 수다 토크를 보여주곤 한다. 데뷔 20주년 앨범을 홍보할 목적이 있었지만 대중이 주목한 것은 조곤조곤 깐족깐족한 어투로 유재석과 기묘한 호흡의 ‘티키타카’를 선보인 페퍼톤스의 대화법. ‘나이가 드니까 잘 삐진다’는 전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뒷목을 잡는 유재석을 보는 게 이토록 재미있다니! 일명 ‘유재석 뒤집개’로 등극한 이들의 활약을 보면서 댓글창은 ‘유재석 뒤집개 특집’을 해달라는 성원으로 뒤덮이는 모습을 보였다.
여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홍보를 위해 게스트가 등장하면 어느 정도 짜인 질문의 포맷이 있고, 잠깐 딴 소리로 샌다 해도 결국 홍보하기 위한 작품의 이야기로 돌아오는 흐름이 있다. 유튜브에서 진행하는 웹예능들도 기존 방송보다 이야기의 소재와 주제와 형식이 자유로운 편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스타들도 시간을 들여 출연한 만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게 눈에 보인다. ‘핑계고’는 작품 이야기도 하지만 정말 게스트들의 일상을 이야기하다 보니 곁들여지는 느낌으로 편안하고 자연스럽고 홍보가 이뤄진다. 참여한 게스트들의 일상과 취향을 시시콜콜 묻다 보니 질문도 대중이 없고, 그에 응하는 게스트의 마음도 열리면서 정말 인간적인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 것.
또한 ‘핑계고’는 국민MC로 어느 정도 틀에 갇혀 있는 듯한 모범생 유재석이 자신의 다양한 면모를 대중에게 보여주는 매력이 크다. 유재석 하면 모두가 아는 인물이지만, 여기선 까도 까도 새로운 속살이 나오는 양파 같은 매력이 있달까. 사실 ‘언제까지 유재석이냐’는 반응이 나온지 꽤 되었고, 유재석 스스로도 새로운 모습을 보이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에 도전했지만 신통찮은 성적을 거둔 적도 많았다. ‘핑계고’를 보다 보면 우리가 유재석을 ‘유느님’이라 부르며 스스로를 틀에 가두도록 종용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페퍼톤스와 대화하며 너무 즐겁고 짜증나고 어이가 없어서 수시로 ‘컹컹’ 돼지 콧소리를 내는 유재석을 보라고. ‘핑계고’에선 수다와 춤을 즐기고, 누군가를 놀리는 깐족 케미에 능한 유재석의 텐션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웹 기반의 뉴 미디어가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력을 능가한지 꽤 되었다. 지난해 ‘핑계고’에 여러 차례 출연하며 제1회 핑계고 시상식에서 대상을 차지한 배우 이동욱은 물론 ‘학벌 개그’로 큰 반응을 낳았던 배우 이동휘 등 ‘핑계고’로 화제를 모은 인물들만 몇인가. 지석진, 홍진경 등 기존 방송에서 많이 찾지 않던 이들을 이렇게 잘 활용할 수 있다고 보여준 것도 ‘핑계고’ 같은 웹예능의 장점이다. 아무쪼록, 밥 먹을 때 기본 곁들임 반찬처럼 틀어놓는 이 웹예능이 계속 공감대 있는 웃음을 보여주길! 그나저나 정말 통신사 장기 고객 할인 혜택 어떻게 안 늘어나나요? 저도 KT 25년 장기 충성 고객인데 말이죠.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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