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K팝은 대한민국 최고의 수출품이 됐다. 그러나 화려함 뒤에는 그늘도 깊다. K팝의 상징인 아이돌은 이른 나이에 발탁돼 혹독한 연습생 시절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노동권과 인권은 무시되기 일쑤다. 데뷔조차 못 한 무수한 연습생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비즈한국은 ‘K팝: 이상한 나라의 아이돌’ 시리즈를 통해 K팝이 성장하는 동안 외면했던 문제점을 짚고, 다각도로 대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K팝을 만드는 이들이 건강해져야 K팝을 즐기는 사람들도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특정 산업이 급성장하면 늘 ‘우선순위’ 논쟁이 벌어진다. 하나는 육성이고, 다른 하나는 규제다. 현업에서는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며 육성 정책을 요구하고, 이를 지켜보는 주변에서는 성장 과정에서 놓치기 쉬운 문제들에 대해 적절한 규제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실 이 둘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규제 역시 장기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육성책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K팝 산업 역시 마찬가지. 학계에선 한국 엔터산업의 질적 성장을 위해 현행 표준계약서의 문제점과 불투명한 정산 구조를 개선하는 등 아이돌과 연습생의 권리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반면 엔터산업 종사자들은 K팝 산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한다.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가 주관하고 비즈한국이 후원하는 ‘음악산업의 법·정책적 현안 학술세미나’가 지난 5월 22일 서울 강남구 법무법인 화우 연수원에서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한국 대중음악 산업의 현황을 분석하고 관련된 법적 쟁점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오지헌 법무법인 원 변호사가 ‘음악저작물 사용료의 법률적 쟁점‘을, 허유정 중앙대 문화예술경영 박사과정 연구원이 ‘케이팝(K-POP) 스타시스템 분석–하이브·어도어 사태를 돌아보며’를 주제로 발표했다.
허유정 연구원은 주제 발표에서 한국의 엔터산업이 아티스트를 ‘소유물’로 여긴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획사가 에이전시와 매니지먼트가 합쳐진 시스템으로 인해 아티스트의 발굴, 트레이닝, 프로모션, 매니지먼트 등 모든 과정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우선 현행 ‘표준계약서’의 문제점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허 연구원은 “각각의 회사나 여러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무조건적인 7년 계약 기간은 아티스트에게 큰 부담이 된다. 특히 청소년기에 데뷔하는 아이돌의 경우 개인적인 성장과 자유가 제한될 수 있으며 이는 창작 활동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습생 계약서와 불투명한 정산 구조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소속사가 연습생에게 사용한 비용의 회계내역을 매년 두 차례 통보하는 제도가 있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다는 것. 허 연구원은 “2022년부터 약 2년간 약 50명의 연습생들을 인터뷰한 결과, 비용 내역을 통보 받은 연습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특히 표준계약서를 무력화하는 ‘부속합의서’를 규제하는 법적장치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실제 표준계약서는 권고 수준의 가이드라인일 뿐 강제성이 전혀 없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 바 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나의연 파도엔터테인먼트 매니저, 신대철 바른음원 대표, 한정수 미스틱스토리 뮤직부문 대표,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김종우 뮤직카우 IP전략실장, 노혜란 브레이브걸스 전 멤버 등 음악산업의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토론자들이 참여했다.
엔터업계 종사자들은 표준계약기간이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주장했다. 한정수 미스틱스토리 뮤직부문 대표는 “연습생 혹은 연예인이 계약이 끝나자마자 나가면 그만이다. 빚은 오로지 회사에 남아 있기 때문에 리스크를 대비하기 위해 표준계약이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산업 발전을 위해 규제 완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한정수 대표는 “K팝의 위상이 올라갔지만 실제 규제가 너무 많다. 한 팀을 키우는 데 인건비가 많이 소모돼 막대한 비용을 회사가 짊어지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규제보단 R&D 투자처럼 산업 활성화 방안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토론자들은 연예기획사 설립 요건과 관련해서도 서로 다른 목소리를 냈다.
허유정 연구원은 연예기획사 등록 요건이 허술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중문화예술기획업에 등록된 회사에서 관련 매니저, 스타일리스트, 혹은 아르바이트만 했어도 직종에 상관없이 대중문화예술인의 훈련·지도·상담을 할 수 있는 경력으로 인정된다. 온라인 시험으로 대체하면 더 편하게 등록할 수 있다. 40시간 교육 이수하고 10만 원만 내면 누구나 연예기획사를 차릴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에이전시나 매니지먼트의 전문성을 무시한 채 우후죽순 설립된 회사들이 어린 연습생들에게 비인격적인 대우를 하거나 무책임한 관리로 희생양을 만드는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엔터업계 종사자들은 기획사를 설립하는 것이 어렵다며 정반대의 주장을 펼쳤다. 나의연 매니저는 “기획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업계에서 2년 이상 종사한 ‘경력자’만이 할 수 있다. 혹은 정부 공인 교육과정을 듣고 시험을 봐야 한다“며 불량 기획사 설립이 사실상 어렵다고 설명했다. 실제 대중문화예술기획업(연예기획사)를 등록하려면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제26조 및 동법 시행령 제6조에 따라 관련 종사경력이 2년을 증명하는 서류가 필요하다. 혹은 문체부령으로 정하는 시설에서 일정 교육과정을 이수해야만 한다.
연습생 육성 제도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신대철 바른음원 대표는 아이돌 연습생을 북한 ‘무용수’와 유사한 시스템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K팝의 아이돌 육성 시스템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었는데, 최근 한 방송을 보고 비슷한 것을 찾았다. 바로 북한 무용수다. 둘 다 어릴 때 부터 돈도 안 받고 나라(기획사)에서 혹독한 연습과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다. 심지어 칼군무에 화려한 댄스까지 참 똑같다. 현대 사회에서 말도 안 되는 비합리적인 시스템”이라고 꼬집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연예기획사 스스로 자율 규제를 만들어 아이돌 육성 시스템이 건강히 개선 될 수 있도록 자구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티스트를 위한 환경 개선도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왔다. 노혜란 브레이브걸스 전 멤버는 “대부분 아이돌은 꿈을 이루기 위해 연습생이 됐다. 제도나 교육과 관련된 내용을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가 활동할 수 있는 토대를 엔터 관계자들이 건강한 환경으로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음 편에는 틴탑 전 멤버 방민수 작가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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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전현건
기자
rimsclub@bizhankook.com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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