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일상을 가장 낯설게 만드는 작가가 소울푸드로 치킨을 꼽았다. 기발한 상상력과 표현력으로 일상을, 만화라는 형식 자체를 낯설게 하는 최인선이기에, 새롭지 않은 그의 답이 도리어 낯설었다. 그도 그럴 것이, 1997년 이후 외식 메뉴 1등을 놓친 적 없는 치킨은 ‘대한민국 치킨전’을 쓴 정은정의 말마따나 이미 “한국인의 소울푸드”가 아니던가. 자기 색깔을 놓지 않는 작품 활동과 활동 공간에 대한 탐색을 병행하며 ‘작가주의’ 작가로 정평이 난 최인선의 치킨 이야기는 ‘월급날 아버지가 품에서 꺼낸 따뜻한’으로 시작하는 흔하디흔한 레퍼토리와는 다르지 않을까. 치킨이 된 ‘닭돌이’의 영혼이 트림과 방귀로 나와 승천하는 최규석의 단편 만화 ‘사랑은 단백질’을 떠올려보기도 하며, 반세기 넘게 문 열어온 영등포구의 한 치킨집을 찾았다.

못 먹으면 몸살 냈던 그 시절의 치킨
최인선 작가가 고등학생 때, 한국식 브랜드 치킨 프랜차이즈들이 태동했다. 그때도 이미 전기 구이를 비롯한 ‘통닭’이 큰 인기를 끌고 있었으나 ‘후라이드’와 ‘양념’의 출현은 이전의 것들을 치킨의 사전(事前) 형태로 만들 만큼 센세이셔널 것이었다. 작가는 살던 곳 근처에 있던 흑석동 시장의 수제 순대도 좋아했지만, 그 무렵 치킨에 댈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치킨 맛에 눈떴어도 부모님이 사 주지 않으면 치킨 구경은 요원하던 시절에 작가는 열흘이나 스무날쯤 치킨을 먹지 못하면 몸살이 났다. 그렇게 앓아누울 때마다 치킨이 생겼으니, 그때의 몸살은 병이 난 것인지, 작가가 스스로 낸 것인지 모를 일이다.
어쩌다 치킨 먹을 일이 생겨도 남매가 넷이다 보니 날개나 다리 같은 인기 부위는 경쟁이 치열했고, 평소에도 우유와 요구르트를 독점해온 아들과 그것을 몰래 훔쳐먹어야 했던 딸들의 경쟁은 애당초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그때부터 작가의 소원은 ‘내돈내산’ 치킨이었다.
스물다섯, 단편 ‘뫼비우스의 띠’로 데뷔하자마자 작가는 첫 고료를 받아 들고 집 앞 치킨집으로 향했다. 멕시코와 별 인연은 없지만 그 이름을 딴 집에서 경제적, 심정적 독립을 만끽하며 치킨 반 마리를 주문해 혼자 먹었다. 그러고서는 남은 돈과 앞으로 다달이 들어올 고료에 기대어 고급 책상을 12개월 할부로 샀다. 연재는 잡지사가 갑자기 문 닫으며 두어 달 만에 끝났고, 열 달 치 할부금만 찬밥처럼 남았다. 그래도 그 책상을 삼십 년 넘게 잘 쓰고 있어 다행이다.
아프지 않아도 먹을 수 있게 된 이후로 예전만큼 치킨을 좋아한다고 할 수 없다면서도, 마주한 치킨 앞에서 설렘이 묻어난 듯한 표정을 보니 작가가 여전히 치킨을 좋아하는 것은 맞다.

“우리 이렇게만 있으면 안 되지 않겠니?”
작가가 국민학교 5학년 때 반에서 그림을 제법 그린다고 소문이 났는데, 옆 반에서 연화라는 친구가 찾아왔다. 그림을 정말 잘 그리는지 확인한 연화는 다른 반에 소개해줄 사람이 있다며 손을 잡아끌었다. 연화의 손에 이끌려 만난 친구가 훗날 ‘개똥이’, ‘MANA’, ‘안녕 자두야’를 그린 이빈 작가다. 그렇게 뭉치게 된 셋은 그날부터 연화네 집 다락방에 모여 앉아 한동안 만화를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연화가 문득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가 이렇게만 있으면 안 되지 않겠니?”
기획력과 실천력이 뛰어난 연화는 고등학생인 자기 언니의 친구이자 나중에 ‘기민’이라는 필명으로 ‘비’, ‘해바라기 연가’를 그린 임은미 씨의 사당동 집으로 친구들을 데리고 갔다. 벽마다 책장에, 꽂혀 있는 만화책이 천여 권은 족히 되었다는 임은미 씨의 방은 이들에게 지상낙원이었다. 서로 만나기도 하고, 편지로 안부를 전하기도 하며 그렇게 일 년쯤 지났을 때, 이번에는 그 무렵 이명신 만화가의 문하생이 된 임은미 씨가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만 있으면 안 되지 않겠니?”
이들은 모임을 확장해 동아리를 만들기로 했고, ‘우주인’을 그린 이향우 작가, ‘엄마는 요술쟁이’의 문계주 작가, 그 언니인 문혜란 작가 등이 여기에 합류했다. 모두가 작가로 데뷔하기 전, 중고등학생이거나 갓 성인이 된 때였다. 최인선 작가가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즈음 결성한 이 동아리가 바로 ‘KGB’, ‘PAC’, ‘아람’과 함께 한국 아마추어 만화 동아리 역사에서 그 이름을 빼놓을 수 없는 ‘결’이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에서 ‘결’이라 이름을 짓고, 동인지(회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데스크톱 퍼블리싱 같은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시절에 충무로를 찾아가 하나하나 배워가며 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작가는 솜씨가 뛰어났던 임은미 씨에게 ‘망까기’, ‘돌려치기’ ‘대치기’와 같은 펜 만화 기법을 배웠던 것을 회상하며 식당 주인에게 얻은 메모지에 선을 겹쳐 그려냈다.

이때의 아마추어 동아리들에는 오리지널 창작 활동을 중심으로 프로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실제로 적지 않은 이들이 1990년대 이후 잡지 만화의 주역으로 데뷔했다. 창립회원 대부분이 작가로 등단한 ‘결’은 그 같은 당시의 흐름을 잘 보여준다. ‘결’은 3~4개월에 한 호씩 동인지를 발행했는데, 1980년대 후반에는 서울 강남의 갤러리에서 동인 최초로 단독 전시 ‘겨울입문’을 개최했다.
‘결’에서 일 년 정도 활동한 최인선 작가는 미술대학 진학을 준비하면서 동아리 활동을 접었다. 비슷한 시기에 이빈 작가는 동인지에 실었던 작품 ‘마지막 사람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동인 ‘이즘(Ism)’에 스카우트되었다. 작가는 당시 ‘이즘’의 에너지가 언더그라운드 잡지 ‘MIX’로, 이후에는 ‘나인’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최인선 작가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자신과 이빈 작가는 “한 자리에서 깊이 파고 들어가는 사람”이어서 둘을 만나게 한 연화, ‘결’의 결성을 제안한 임은미 씨처럼 새로운 지향점으로 이끌어주는 사람이 필요했다고 했다. 이제 누구의 도움 없이 목표를 정하고 자신을 스스로 추동해야 하는 중견 작가가 되니, ‘만화가로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끝나지 않을 고민을 이어오고 있다고. 여러 갈래의 책을 읽으며 길을 모색하는 중에 최근에는 융 심리학을 탐독하게 되었다. 작가는 융이 자기 내면에 깊게 파고들면서도 그 안에 갇히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점에 주목했다. “개인적인 상상을 극대화하지 않으면서 자기 안의 신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잘 설명하는 것 같아요. 나도 그렇게 나의 세계관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기 안의 세계, 그리고 ‘백백백 프로젝트’
최인선 작가는 국민학교 때 “나는 왜 태어났으며, 왜 내가 되었고, 왜 내가 보이지 않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했고, 그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해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존재와 인식에 관한 질문이 펼쳐낸 무수한 칸을 연필로 채우기 시작한 것이 ‘뫼비우스의 띠’(1995)로, 단편집 ‘속 보이는 놈’(1998)으로, ‘너를 그리며’(2022)로 이어졌다. 그는 심연의 물음이 열어젖힌 세계를 만화로 그렸다. 영화 ‘그랑블루’로 널리 알려진 프리다이빙처럼, 자기 숨만 가지고 심연의 깊이를 헤아려갔다. 이미지와 디테일에 대한 고민이 긴 적막으로 이어졌다가 참았던 숨처럼 터지길 반복하며 그의 세계는 천천히 깊어져 갔다.

질문은 지금까지 이어져 작가의 사유는 시간 속에 공간으로 남았고, 공간에는 사유의 시간이 새겨져 있다. 안팎의 구분 없는 ‘뫼비우스의 띠’(작가의 데뷔작 제목이기도 하다)처럼 사유의 시공간이 이어진다. 띠를 따라 걸으며 설명하던 작가가 “근데 어쩔 수 없어”라고 말했을 때, 문득 아서 단토의 ‘철학하는 예술’이 생각났다. 철학하는 만화가 이런 것일까. 그의 만화가 ‘독특한 감성’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성을 자아내는 까닭을 새삼 깨닫게 된다.
존재론적 사유에서 길어낸 모호한 이미지와 감각을 오랫동안 곱씹어 단편의 형식으로 표현하는 작가는 출판만화 기세가 한풀 꺾인 2000년대 이후 작가로서의 존재마저 위협받고 있다. 주 단위로 연재해야 하는 상업 웹툰이 중심이 된 만화 생태계에서 상업적 성과를 내지 못하는 저자는 롤랑 바르트의 기대와 달리 독자의 탄생 없이 죽기만 하는 것이다. 새로운 형식과 가치를 지향하며 자본의 재생산보다는 의미의 생산을 추구하는 만화들이 쏜살같이 흐르는 시장의 조류에서도 휩쓸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게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인디음악, 인디영화가 굳어진 대중예술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던 것처럼, 대안 만화들이 의미를 덧대고 깊이를 만들며 만화 시장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제도가 개선되기만을 손 놓고 기다릴 수 없는 최인선 작가가 구상한 자구책은 이름하여 ‘백백백 프로젝트’다. 백 페이지 만화, 백 권을 백만 원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물론 이 계획 어디에도 살림살이에 관한 내용은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전시, 교육, 창작 지원사업을 바삐 오가는 살 궁리가 따라붙어야 한다. 하지만 밥벌이에 마모되지 않고 작가로서 살기 위한 그의 이야기에서 힘이 나고 신이 났다. 작가는 이제 이끌어주는 이 없이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나아갈 바를 찾기 시작한 듯했다. “우리 이렇게만 있으면 안 되지 않겠니?” 작가의 진화를 서서 반긴다.
작가주의에 속하는 작가이면서도 2003년 플래시 동영상 ‘작은방’을 비롯해 인스타그램에 공개 중인 일상 연작들에 이르기까지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2022년 10월, 1인 출판사 INSUNNY를 만들어 첫 단행본 ‘너를 그리며’를 출간했고, 독립운동가 웹툰 시리즈로 ‘정화’를 연재했다. 2014년 프랑스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 공개작인 일본군 위안부 만화 ‘우린 어디로 가고 있는가?’는 공개 직후 소셜미디어 등지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밖의 단편 연재작으로 2009년 부천국제만화축제 출품작 ‘시작합니다’, 2016년 부천국제만화축제 출품작 ‘늙은 만화가 이야기’, 2018년 네이버 1990년대 데뷔작가 특별전 ‘한국만화 1990’ 출품작 ‘달거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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