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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의 소울푸드
세상 향해 ‘장도리’ 날리는 박순찬 작가의 냉면

정치인 조롱하기보단 시사문제로 독자 눈 이끌어 “그들은 우리 비추는 거울”

[비즈한국] 맛을 결정하는 식재료나 요리 포인트를 ‘킥(Kick)’이라고 한다면 신문에서의 ‘킥’은 한 칸 만평이나 네 칸 시사만화가 아닐까. ‘대한민보’ 창간호에 실린 한국 최초의 만화 이도영의 ‘삽화’로부터 ‘고바우영감’, ‘왈순아지매’, ‘두꺼비’, ‘야로씨’, ‘한겨레그림판’에 이르기까지 시사만화는 독자 대중이 세상을 보는 창이었고, 그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창구였다. 

신문의 백미로 칸칸이 이어온 그 한끝에 틀을 깨는 발상과 묘사로 정평이 난 박순찬 작가의 ‘장도리’가 있다. ‘장도리’는 1995년 2월 6일 ‘경향신문’에 연재를 시작해 2021년 5월 24일까지 스물여섯 해 동안 이어갔다. 스물다섯 살 청년 작가가 중년이 됨직한 시간이었다. 이후에는 표현의 제약이 덜한 온라인으로 자리를 옮겨 풍자와 해학이 가일층 된 촌철살인을 선보이고 있다. 

대중의 시선에서 ‘높은 곳에 임하신’ 분들에게 거침없이 장도리 ‘한 방’을 날려 온 박순찬 작가를 교외선 원릉역 근처의 한 냉면집에서 만났다.

박순찬 작가의 소울푸드 냉면을 먹는 ‘냥도리’. 그림=작가 제공

함흥에서 평양을 거쳐 지금에 이른 ‘냉면 유람’

줄이 늘어서는 시간을 피해 이른 저녁을 먹을 요량으로 찾은 냉면집은 같은 마음을 먹고 찾아온 이들로 이미 북적였다. 아버지 보시던 신문을 뒤적여 만화를 찾듯 ‘맛집’은 외딴 곳에 있어도 찾아가는 법이다.

작가의 단골집인 이곳은 4칸 만화처럼 길게 채 썬 오이와 배를 수북이 쌓은 칡냉면을 내는 곳인데, 오이의 향과 아삭한 식감이 ‘킥’이었다. 예의 칡냉면처럼 면이 질기거나 과한 양념으로 맛이 쨍하지 않고, 적당히 쫄깃한 면의 식감이 듬뿍 담긴 깨, 오이, 배와 어울려 시원한 감칠맛과 함께 묵직한 한 방을 날렸다. 박순찬 작가는 칡냉면이 유행하면서 맵고 단 자극적인 맛의 냉면을 곁들이로 파는 곳이 범람했는데, 이 집은 맛의 균형을 잘 찾아 완성도가 높다고 평했다.

면을 좋아하는 작가가 처음 접한 냉면은 서울 종로구 예지동 시계골목의 함흥냉면이었다. 옛날집, 함흥곰보냉면이 나란히 있던 그곳은 매콤새콤 달콤한 냉면 맛도 일품이지만 뜨끈한 온육수 같은 골목의 정취도 멋이 있었다. 그 매력에 빠져 한동안 시계골목을 찾던 작가는 1990년대 초반, 연희동에서 평양냉면을 처음 맛보았다고 한다. 이북 출신으로 보이는 노인들이 많이 찾던 유명한 식당이었지만, 작가의 입맛에는 영 맞지 않았다. 식초, 설탕을 넣어 어찌저찌 먹긴 했지만 ‘뭐 이런 걸 먹나’ 싶은 생각이 먹는 내내 들었다고 한다.

박순찬 작가는 냉면 양념은 너무 달지도 맵지도 않는 균형점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시사만화도 마찬가지. 사진=필자 제공

그런데 몇 해 지나다 보니 어느 순간 자신이 슴슴한 평양냉면에 스며들어있더란다. 평양냉면의 한 계파를 대표하는 의정부 노포까지 찾아갈 정도로 심취했는데, 그 무렵에 서울 목동에서 인생 평양냉면을 만났다. 작가는 그 집 평양냉면이 이북과 가장 유사한 맛이 아닐까 생각했다며 역시나 평양냉면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두 필자에 꼭 가볼 것을 당부했다.

평양냉면 마니아였던 작가는 이제 냉면 그 자체를 편하게 즐긴다. 함흥에서 평양으로 다종다양한 계파의 면옥들을 유람하듯 다닌 끝에 ‘냉면’의 본질에 다다른 듯하다. 이곳의 칡냉면처럼 한여름 별미로 마음도 발걸음도 가볍게 찾는 평상심이야말로 작가가 도달한 진정한 냉면의 세계 아닐까.

본질 사라지고 스타일만 남은 세태 아쉬워

3대, 4대 이어가는 오래된 식당들을 말하다 보면 자연스레 사라진 곳들에 관한 이야기로 흐르게 된다. 맛이 이어지지 못한 집들에 대한 아쉬움이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장도리’를 연재하던 경향신문 앞 중국집 이야기를 꺼냈다. 큼지막한 감자를 넣은 수타면을 잘하던 곳이었는데, 주인 할아버지 건강이 안 좋아져 문을 닫았다. 동대문 근처의 해장국집도 마찬가지다. 간장으로 맛을 낸 국물에 우거지와 등심을 푸지게 넣어주던 그 집은 할머니 기력이 쇠하며 장사를 접었다.

사람이 나고 가는 것처럼 식당의 성쇠 또한 당연한 이치겠지만, 이토록 아쉬움이 남는 것은 손 많이 가던 음식의 빈자리를 손쉬운 음식이 채워버린 탓이다. 본질에 대한 고민 대신 겉모양만 그럴싸하게 흉내 낸 스타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함흥냉면으로 시작해 평양냉면에 맛을 들였다. 평냉의 참맛은 나이가 들고서야 알게 됐단다. 사진=필자 제공 

사라진 음식점들에 대한 작가의 짙은 아쉬움이 만화로 번졌다. “한국 만화가 무엇인지 정의하기 어려워요. 일본은 우키요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장르나 화풍 사이에서 연속성을 찾을 수 있어요. 그에 비해 우리는 전쟁도 겪고 하다 보니 어떤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 안타까운 점들이 많죠.”

식민지와 전쟁, 급속한 공업화를 겪으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기질을 발전시킨 것은 K컬처의 빛나는 성취지만, 피난 보따리에 담지 못하고 두고 온 것들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맛과 칸의 단절이 남긴 아쉬움에서 문화 본질에 관한 성찰과 계승, 축적의 과제에 대한 고민이 비롯된다.

“풍자하는 이유는 시대마다 다르거든요. 옛날에 오노레 도미에(1808~1879, 초기 유머러스한 현실 풍자만화의 기틀을 다진 풍자 화가)가 풍자만화를 그리던 시대하고 지금은 다르잖아요. 그때는 이미지로 볼 수 없는 존재들을 까발려서 보여주는 것 자체에 의미 있었지만, 지금은 이미지가 너무 많죠. 지금의 접근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봐요. 그래야 이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재미있게, 의미를 갖고 작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단순하게 까는 건 잠깐 재미있을 수 있지만, 오래 하기는 힘들어요.”

‘장도리’의 매력은 모멸과 조롱의 유희에 빠지지 않고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것이다. 풍자와 조롱, 해학과 비웃음의 경계를 넘지 않아 신랄하면서 담백하다. 작가에게 선을 넘지 않는 풍자의 비결을 물으니, 정치인을 사람들의 어떤 욕망과 성향이 응집된 것으로 보고 만화를 그릴 때 우리 모습을 거울로 보듯이 그린다고 답한다. 술을 강권하는 전 대통령의 모습을 그릴 때는 그와 닮은 주변의 사람들이 반성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린다는 것이다. 특정한 권력자가 물 위로 솟은 빙산의 일각이라면 ‘장도리’는 그에 대한 단편적인 분노를 쏟아내기보다 수면 아래 감춰진 거대한 구조의 욕망을 형형하게 응시한다.

“폼 잡으면 거기서 끝나”

박순찬 작가는 온라인으로 지면을 옮기면서 색다른 시사 풍자의 방식을 적용한 ‘장도리 연속극 시리즈’를 선보여 주목받았다. ‘윤도리’, ‘간도리’, ‘진격의 수색대’, ‘용산대형’, ‘왕짜의 게임’ 등은 4컷에서 끝나는 신문 연재와 다른 호흡을 보여주었는데, 전형적이지 않은 인물 묘사가 큰 웃음을 준다.

물론 ‘장도리’는 신문 연재 당시에도 대중문화 패러디를 비롯해 ‘신문 시사만화’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시도를 해왔다. 정상외교 수행 중에 성추행을 저지른 고위 공무원을 ‘진상의 거인’으로 꼬집은 2023년 5월 14일자 ‘장도리’는 풍자의 백미로 지금도 회자한다. 당시 화제작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을 패러디한 장면은 말 그대로 파격이었다.

“만화는 편하게 접근해서 독자와 적절하게 만나야 하는 건데, 폼 잡으면 거기서 끝나는 거죠. ‘시사만화’라는 말로 구분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아요. 그냥 만화라고 부르면 되는데 굳이 수사를 붙이는 건 불필요한 권위를 부여하는 거예요. 한 칸이나 네 칸의 신문 만화 형식도 편집 효율 면에서 정해진 측면이 있는데, 이제는 굳이 거기에 국한될 필요 없죠. 독자들이 안 보는데도 신문 만화로서의 권위가 있으니까 반드시 연재돼야 해, 이런 건 이제 없는 겁니다.”

박순찬 작가는 “만화라는 건 정말 편하게 들어가 독자와 적절하게 만나야 한다, 폼 잡으면 거기서 끝난다”고 말한다. 사진=필자 제공

이제는 만화가 매체의 형식에 국한될 필요도 없고, 불필요한 권위에 갇혀서도 안 된다는 작가의 지론은 박순찬 작가와 그의 만화가 어떤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고 비춰왔는지를 압축적으로 나타낸다. 그는 자신의 만화 또한 “그냥 만화로 부르면 끝나는 것”이라며 만화가 매체와 형식에 구애될 필요 없는 오늘날, 만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의 논평이 독자의 관심과 호응을 끌어낼 수 있는 가치를 갖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환쟁’과 그 이후, 완전한 창작을 향해

이전에 고 백무현 작가와 함께 ‘만화 박정희’를 출간하기도 했지만, 그가 오롯이 홀로 작업한 첫 장편은 한국의 첫 만화가 관재 이도영 선생을 주인공으로 삼은 ‘환쟁’이다. ‘환쟁’은 작가가 독립운동가를 만화로 옮기는 ‘독립운동가 웹툰 100인 프로젝트’에 참여해 그린 작품으로, 일제와 그림으로 싸운 이도영 선생을 다룬다. 이도영 선생은 ‘대한민보’ 창간호부터 만화를 연재하며 민족의 현실을 조명하는 것은 물론 이완용 같은 매국노에게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옥황상제까지 불러 앉혀놓고 혼내는 선생의 만화는 외세에 국권을 침탈당한 민중의 분노를 담아낸 것이었다.

박순찬 작가는 기록으로 많이 남지 않는 이도영 선생의 짤막한 행적을 만화적 상상력으로 이어내면서 현재적 의미와 연결하고자 했다. 작가는 ‘대한민보’ 1면 한가운데 실린 이도영 선생의 만화가 친일파를 거침없이 비판하는 모습을 보고 당시 사람들이 받았을 충격을 오늘날 유튜브 같은 뉴미디어의 등장과 겹쳐서 생각했다고 한다. 작중 인물들이 이도영 선생의 만평을 천박하게 여겨 욕하는 모습은 현재 레거시 매체들이 유튜브 등의 신매체를 욕하는 것을 빗댄 것이다. 역사물은 과거의 단순한 재연이 아니라 현재성과 연결 짓는 재현을 통해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감하게 해야 한다는 작가의 철학이 작품에 잘 녹아 있다.

작가는 학습만화의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독자들이 ‘환쟁’에서 재미와 의미 모두를 느낄 수 있게 하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한국의 첫 만화가’를 만화적 재미로서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박순찬 작가에게 이후 작품 계획을 물었더니, ‘만화 박정희’와 ‘환쟁’ 모두 실존 인물을 다룬 것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오리지널 스토리와 캐릭터를 지닌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한다. 아직 장르까지 구체적으로 정하지는 않았다고 하는데, ‘한 방’이 있는 그의 작품이 기대된다.

박순천 작가의 작품들.
박순찬 작가는
1969년생으로, 1989년 연세대 천문대기과학과에 입학해 학내 만화 동아리 ‘만화사랑’에서 활동했다. ‘만화사랑’은 6월 항쟁 당시 최루탄에 맞아 사망했던 이한열 열사가 활동한 동아리여서 그 의미가 깊다.
박순찬에게 만화는 천직이다. 이미 초등학교 2학년 때 320여 쪽의 만화를 그려 친구들을 독자로 만들었는데, 그때부터 만화를 그리지 않으면 밥을 안 먹은 것 같았다고 한다.
천문학에도 SF 만화에도 관심이 있어 천문학과에 진학했고, 데뷔 전 잠시 문하생 생활을 하다가 경향신문 공채에 합격해 1995년부터 ‘장도리’를 그렸다. 26년 동안의 연재분을 ‘삽질 공화국에 장도리를 날려라’, ‘나는 99퍼센트다’, ‘세월의 기억’, ‘헬조선에 장도리를 던져라’, ‘굿바이 사이비 전성시대’, ‘빛은 어둠을 넘어’ 등 ‘장도리의 대한민국 현재사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엮었다. 퇴사 후에는 온라인으로 공간을 옮겨 작품 활동을 이어왔고, 작품들을 ‘도리도리’ ‘용산대형’ ‘내란 본색’ 등으로 묶어냈다. ‘장도리’ 외에 고 백무현과 함께한 ‘만화 박정희’와 관재 이도영을 소재로 한 ‘환쟁’이 있다. 그 밖에도 논술 지도사 박홍순과 함께 만든 인문학 도서 ‘고양이 맙소사, 소크라테스!’, 그림 입문서인 ‘냥도리의 그림 수업’ 등도 출간했다.
2008년 제1회 올해의 시사만화상을, 2013년 ‘나는 99%다’로 부천만화대상 우수만화상을 수상했다.

서찬휘 만화칼럼니스트

필자 서찬휘는 만화 칼럼니스트로 만화와 그 주변 문화들의 흐름과 연결고리를 역사적 맥락에서 탐색하고 정리해왔다. 1998년부터 만화 정보 커뮤니티 ‘만화인’을 운영했고 한겨레신문, 일요신문, 인천일보, 국방일보 등 여러 매체에 글을 썼다.

iam@seochanhwe.com
송하원 대안만화 전문서점 홈통 공동대표

필자 송하원은 공공문화개발센터 유알아트 대표로 대안만화 전문서점 ‘홈통’을 운영하고 있다. 문화기획자이자 만화 연구자이며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금천문화재단 이사 등을 맡고 있다. 두 사람은 ‘만화가의 소울푸드’에서 한국 대표 만화가들이 사랑하는 음식을 통해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함께 들여다보고자 한다.

solchan198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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