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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의 소울푸드
‘만화로 수행’ 지찬 스님의 손두부

출가 직후 순두부로 먹는 어려움 달래…만화로, 달리기로, 철인 삼종으로 공부와 수행 ‘함께’

[비즈한국] ‘만행(萬行)’은 구도를 위한 만 갈래의 수행이다. 지극한 깨달음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선방을 벗어나 산천을 떠도는 것부터 머슴살이, 거지 생활까지 모두가 만행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탱화 대신 만화를 그리고, 소 대신 자전거를 타고 달려서 삼매에, 헤엄쳐 피안에 닿고자 하는 지찬 스님의 독특한 수행 또한 만행이라 이를 만하다. 만화 캐릭터 ‘어라’의 작가로, “승복 입은 러너”, “철인 삼종 스님”으로 알려진 지찬 스님을 경기도 양주의 고즈넉한 손두부 집에서 만났다.

만화 캐릭터 ‘어라 스님’의 작가이자 ‘승복 입은 러너’인 지찬 스님은 소울푸드로 두부를 꼽았다. 사진=필자 제공

스님의 단백질원, 두부

살생을 금하는 불가에서 두부는 귀한 공양물이자 최고의 단백질 공급원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전래한 두부는 사찰을 중심으로 제조 기술이 발전했고, 조선시대에는 왕실과 능원 제사에 쓰이는 두부를 공급하는 서른다섯 개 사찰을 ‘조포사(造泡寺)’로 따로 두었을 만큼 불교와 인연이 깊다. 국수, 떡과 더불어 스님을 웃게 만드는(僧笑) 세 가지 음식에 꼽히기도 하니, 지찬 스님이 소울푸드로 두부를 꼽는 것은 인연생기의 귀결이라 할 만하다.

출가 직후, 한동안 설악산 백담사에서 머물던 스님은 수행과 체질상의 이유로 가리는 음식이 많아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중 치과 치료차 나선 길에 우연히 들른 사하촌 한 식당에서 주인 할머니가 만든 순두부를 먹고는 그 맛에 반해 이후에도 도반(불도를 함께 수행하며 깨달음을 구하는 벗 또는 동료)과 함께 그 가게를 종종 찾았다고 한다.

실제로 할머니 손맛이 뛰어났는지, 속가 것이라 절간 두부보다 맛있게 느껴졌는지 모를 일이나 외출 나온 군인 심정으로 그 집을 찾았다고 하니 그때마다 치과가 번다하고 치료가 더뎌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백담사 인근은 순두부 외에도 황태와 손칼국수가 유명한데, 할머니가 직접 반죽을 치대는 손칼국수 집도 스님이 순두붓집만큼이나 즐겨 찾던 곳이었다. 할머니 관절 건강이 좋지 않아 이내 문을 닫았다는 스님 말씀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출가 직후 음식 때문에 어려움을 겪던 지찬 스님을 구해준 것이 순두부였다. 사진=필자 제공

절집 음식 이야기

손두부를 앞에 놓고 시작한 순두부 이야기는 자연스레 절집의 음식 이야기로 번져갔다. 소박함과 정갈함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사찰 음식’이 아니라 투박하고 단출한, 있는 그대로의 절집 음식 이야기였다.

스님이 봉암사에 있을 때, 노스님들이 산책길에 따온 능이를 이따금 주시면 국이나 라면에 넣어 먹곤 했는데, “1능이 2송이 3표고”라는 말답게 그윽한 그 향취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스님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능이의 묵직하면서 깊은 향과 쫄깃한 식감이 떠오르니 말맛으로 이르는 이심전심의 경지다.

스님은 ‘승보사찰(僧寶寺刹)’로 이름난 송광사에서 수계를 받았는데, 아침 공양으로 나오는 죽 맛 또한 일품이었다고 했다. “스님들에게 ‘죽 끓여드릴까요’ 물으면 아무도 대답하지 않지만, ‘국수 삶아드릴까요’ 물으면 모두가 대답한다”라는 불가의 유명한 일화도 있지만, 1970년대 이후 전통으로 자리 잡은 송광사의 죽만은 예외라는 것이다. 송광사에서는 아침마다 잣죽, 야채죽, 고구마죽, 좁쌀죽, 옥수수죽, 시금치죽, 무죽, 연근죽, 땅콩죽, 누룽지죽 등을 매번 바꿔 내는데 죽이 얼마나 맛있는지, 발우 가득 담아 먹고도 한 그릇 더 뜨던 미국인 행자도 있었다고 한다. 고단한 수행의 상징인 죽이 절집 생활의 소박한 낙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하지만 모든 절의 형편이 이 같은 것은 아니다. 규모가 작거나 스님 혼자 머무는 암자에서는 끼니를 챙기는 것이 쉽지 않다. 다른 절의 스님과 신도들이 챙기기도 하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은 수행처들이 있다. 수행도 엄연한 현실 위에 선 화두라는 사실이 와닿는다.

만화 만행

지난 2016년에 출간된 ‘어라, 그런대로 안녕하네’는 ‘어라’라는 귀여운 스님 캐릭터를 중심으로 수행 생활의 경험을 담아낸 만화다. ‘생활, 수행 종합 분투기’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 책은 지찬 스님이 블로그에 게시했던 만화를 엮은 첫 작품으로, 스님은 기술적으로는 아쉬움이 남지만 오랜 작업이 응축되어 남다른 애착이 있는 책이라고 말했다. 2017년에 나온 ‘어라의 라이프 카툰’ 또한 수행자의 일상에 담긴 희로애락을 그려냈는데, 첫 작품의 긴장으로부터 한껏 자유로워진 작가의 여유가 독자를 포근하게 감싸안는다.

스님은 선방 생활을 하면서 일본의 하이쿠처럼 짧은 문장 안에 응축된 의미를 담아내는 방식에 관심을 가졌는데, 그 무렵 고이즈미 요시히로의 만화 ‘우리는 모두 돼지’를 접하고 만화에 뜻을 두게 되었다고 한다. 불자도 아닌 작가가 네 칸 만화 안에 불교 철학을 재치 있게 묘사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수행 생활을 만화로 표현해보기로 한 것이다.

스님이 그린 ‘어라 스님’ 캐릭터를 인형으로 직접 만들었다. 사진=필자 제공

2011년 성신여대 사회교육원의 만화창작 과정에 등록했는데, 8등신 캐릭터가 나오는 순정 극화 만화에 뜻을 두고 미려한 인물 묘사를 능숙하게 하는 사람들 틈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고 한다. 스님은 그곳에서 카투니스트 똥개 김동범 작가를 만나 카툰 형식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한 칸 안에 의미를 압축해 넣는 카툰이 선화(禪畵)와 비슷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스님의 대표 캐릭터 ‘어라 스님’도 이즈음 탄생했다. 8등신 인체를 표현하는 것이 어려워 상대적으로 그리기 쉬운 2등신 캐릭터에 감정을 담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당시 명랑만화, 생활툰 같은 2등신 캐릭터를 그린 만화들이 유행했는데, 신체 묘사가 줄어든 대신 표정 변화와 감정 표출을 확장하는 작화 스타일의 영향을 ‘어라 스님’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금은 EDM부터 댄스, 굿즈까지 불교가 ‘힙스터’가 됐지만, 스님이 출가할 때만 해도 자유로운 만화적 표현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았다. 이제는 다양한 형태로 수행하는 스님들이 늘어나고, 미형 캐릭터로 소통하는 버추얼 유튜버까지 등장했으니, 격세지감을 느낄 만하다.

“자기 좋아서 하는 게 무슨 수행이냐고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오랫동안 하다 보면, 머물다 보면 삶 속에서 완벽한 것은 아니어도 자기만의 어떤 깨달음이라든지, 녹아나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자신감으로 내가 공부한 것들을 만화에도 녹여낼 수 있을까.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거예요. 우연히 처음 접한 것이 만화여서 만화를 하게 된 거죠.”

‘어라 스님’ 캐릭터를 인형으로 만들기 위해 양말공예 자격증도 땄다. 사진=필자 제공

변화하는 세태에 발맞춰 스님도 꾸준히 활동 반경을 넓혀갔다. 양말공예 자격증을 따서 어라 스님 캐릭터를 인형으로 만들어보고, 종교 캐릭터라는 이유로 여러 차례 반려됐지만 끝내 어라 스님 캐릭터를 활용한 이모티콘도 내놨다. 근래에는 수영과 달리기 등에 매진하느라 전만큼 만화 작업을 못 하지만, AI를 활용한 어라 스님 캐릭터 계정을 인스타그램에 개설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때때로 공부의 부족함과 능력의 한계도 느낀다는 스님에게 어떻게 마음을 챙기는지 물었다. “모두가 상위에 오를 수는 없는 거니까. 그게 욕심이 될 때도 있고, 상처가 생기고, 한계를 느끼면 거기서 ‘내려놓음’이 되는 거죠. 그런 과정에 나도 똑같이 놓여 있는 거예요.”

만화에서 달리기와 철인삼종경기로,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하여

스님이 쓴 에세이 ‘스님의 달리기’ 서문에서 ‘수행자라 해도 육신은 중생입니다’라는 제목이 말하듯, 40대 후반을 지나며 스님에게도 갱년기 증상이 찾아왔다. 몸의 근육이 빠진 자리에 우울감이 틈입했다. 우울을 떨쳐내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한 스님은 쉰이 되던 해에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스님들이 수행을 통해 마음으로 깨달아가지만 몸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직접 겪어야만 알 수 있더란다. 고승들도 더러는 노년에 몸이 아픈 것을 견뎌내기 어려워했는데, 어릴 때 깨쳤어도 몸으로 평생 깨쳐야 할 게 남아 있었던 것이다. 몸으로 하는 수행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달리기 시작했고, 이제 마라톤을 거쳐 철인 삼종에 다다랐다. 스님은 달리다 보니 러너스 하이와 또 다른 캄 다운(Calm Down) 상태를 경험했는데, 마음이 고요히 집중하는 상태에 놓이는 근접 삼매와 비슷한 감각이라고 한다.

지찬 스님은 마음과 더불어 몸의 수행을 위해 달리기 시작했고, 마라톤을 거쳐 이제는 철인 삼종에 다다랐다. 사진=어라스님 인스타그램, 유튜브 채널 캡처

스님은 인터뷰를 한 10월에도 킹 코스(수영 3.8km, 자전거 180km, 마라톤 42.195km)를 완주했다. 전 UFC 선수 김동현 씨가 했다는 그것이다. 최종 목표는 600km가 넘는 국토 종주인데, 이를 마치면 다시 좌선 수행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사람들이 ‘기록’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스님은 ‘완주’ 자체에 뜻을 둔다. 스님 스스로 생사해탈의 깨달음은 아니어도 마음속 충만함을 얻기 위한 시험을 치르는 중이다.

어찌 보면 스님에게 만화와 운동은 그 자체가 수행인 동시에 공부한 것을 삶과 현실에서 녹여내는 방법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현재 목표로 하는 수중라이프가드 자격을 취득하면, 그 과정도 창작의 소재가 될 듯하다. 에세이만이 아니라 만화로도 계속 활동을 이어가주길 청했다. ‘어라 스님’이 등장하는 다음 만화를 보고 싶다.

지찬 스님은 나중에 강화도 같은 곳에 마당과 작은 부엌이 있는 수행처를 마련하고 싶다고 했다. 커피, 책, 운동과 같은 취미를 매개로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아보는 따듯한 공간 안에서 ‘어라 스님’처럼 웃고 있을 스님의 모습이 기대된다.

지찬 스님은
동국대학교 선학과 졸업. 육군 병장 만기제대 후 2003년 행자승 과정을 거쳐 대한조계종 송광사에서 수계를 받았다. 이후 국내 선원 수선안거 및 미얀마, 태국 수행처를 다니며 정진하였다. 2011년 성신여대 평생교육원 만화창작 과정을 수료 후에 만화를 시작해 2016년 카툰집 ‘어라, 그런대로 안녕하네’, 2017년에 ‘어라의 라이프 카툰: 그림으로 놀고, 그림으로 수행하는 스님의 재미난 일상’을 냈다. 2020년까지 법보신문, 불교 카툰신문 ‘만만한 뉴스’ 창간 등 다양한 만화 활동을 통해 대중을 만났다. 양말공예 자격증을 따서 어라 캐릭터를 이용한 봉제 인형을 만들기도 했다. 2026년엔 갱년기로 인한 몸의 변화를 마주하고 달리기를 시작한 이래 느낀 점을 담은 에세이 ‘스님의 달리기: 승복 입은 러너의 11,450킬로미터 마음 수행기’를 출간했다.

서찬휘 만화칼럼니스트

필자 서찬휘는 만화 칼럼니스트로 만화와 그 주변 문화들의 흐름과 연결고리를 역사적 맥락에서 탐색하고 정리해왔다. 1998년부터 만화 정보 커뮤니티 ‘만화인’을 운영했고 한겨레신문, 일요신문, 인천일보, 국방일보 등 여러 매체에 글을 썼다.

iam@seochanhwe.com
송하원 대안만화 전문서점 홈통 공동대표

필자 송하원은 공공문화개발센터 유알아트 대표로 대안만화 전문서점 ‘홈통’을 운영하고 있다. 문화기획자이자 만화 연구자이며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금천문화재단 이사 등을 맡고 있다. 두 사람은 ‘만화가의 소울푸드’에서 한국 대표 만화가들이 사랑하는 음식을 통해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함께 들여다보고자 한다.

solchan198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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