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밀레니엄을 전후로 종이를 떠나 ‘웹(Web)’으로 향한 작가들이 있었다. 이들은 출판과 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매체에서 실험적인 창작을 시도했고, ‘공감툰’, ‘감성툰’과 같은 전에 없던 장르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비교적 가벼운 그림체로 표현한 자캐(자기 캐릭터)를 통해 자신의 일상과 상념을 묘사한 작품들은 독자들의 마음을 얻었고, 하나의 경향으로 자리 잡았다. 마치 오늘날의 일상 유튜버와 비슷하달까.
나의 일기는 숙제로 남지만 ‘난중일기’는 작품으로 남는 것처럼, 모든 일상이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의미가 더해져 비일상적인 특별함으로 다가올 때 일상은 비로소 독자들의 관심을 얻는 작품이 된다. 해서 ‘일상툰’은 쉽지 않다. 삼시세끼 먹는 밥이 잘하기 제일 어렵다.
2006년 데뷔한 김환타 작가는 20년째 꾸준히 ‘일상툰’을 그린다. 최근에 ‘쓱 보면 쏙 이해되는 밈 고사성어’를 출간한 김환타 작가를 삼복더위가 한창인 8월 신촌의 마라 전문점에서 만났다.

트렌드를 좇다 만난 ‘내 음식’
마오쩌둥의 작은 불꽃이 중국 들판을 불태웠다면, 마라(麻辣)의 맵고 얼얼한 맛은 한국인의 입안에 불을 질렀다. 언론 기사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마라는 2019년쯤부터 유행이 시작한 듯한데, 대만 카스텔라, 탕후루, 두쫀쿠 등이 짧게 반짝한 데 비해서 마라는 여전히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인의 매운맛”과는 결이 다른 마라의 매운맛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제는 이색적인 먹거리의 수준을 넘어 우리 일상에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인다.
김환타 작가도 이런 유행을 좇아 마라에 도전했다고 한다. “제가 콘텐츠 업자니까, 트렌드에 민감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탕후루 유행하면 가서 한 번 먹어봐야 하고. 마라도 그래서 시도해봤는데 마라샹궈(麻辣香锅)가 제 입맛에 맞더라고요. 한국 매운맛과 달라서 신기해하다 이제 스트레스 좀 받으면 ‘마라샹궈 먹으러 가자!’ 하게 됐죠.” 작가로서의 자신을 ‘콘텐츠 업자’라고 툭 말할 때, 자신의 창작이 신비와 권위의 단상 위에 놓이기보다 일상의 직업적 행위로 비치길 바라는 마음이 읽혔다.

마라탕(麻辣烫)이 육수에 재료를 넣고 끓인 국물 요리라면 마라샹궈는 재료를 마라 소스와 기름에 볶아낸 볶음 요리다. 통상적인 마라 집에서는 손님이 고기, 채소, 면 등 원하는 재료를 그릇에 담으면 주방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조리해서 내어주는데, 다소 생소한 이 방식이 종종 재미난 해프닝을 만들기도 한다. 작가도 처음에 마음에 드는 재료들을 이것저것 그릇에 담았다가 조리된 음식 양이 너무 많아 당황했다고 한다.
어릴 적 고우영 시리즈를 탐독하며 중국사를 섭렵한 작가는 이제 중국 고사를 다루는 ‘밈 고사성어’를 그렸다.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화제가 자연스럽게 중국 음식으로 이어졌는데, 작가는 시안을 여행했을 때 맛보았던 중국식 쫄면 격인 량피(凉皮)와 햄버거 비슷한 러우자모(肉夹馍)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얼얼한 혀도 달랠 겸 탄산음료를 주문하면서 내친김에 작가에게 내내 궁금했던 필명 ‘환타’에 관해 물었다. 짐작한 바대로 음료 환타에서 필명을 따왔다는 작가에게 이번에는 환타의 어떤 맛을 좋아하는지 물으니, 환타의 근본은 오렌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요즘 같았으면 유튜버가 됐을 텐데”
작가는 고등학교 때부터 만화를 그렸다. 대학 때는 코믹월드와 같은 행사에서 동인지를 내다가 출판 관계자들의 눈에 띄어 일러스트레이션 외주 및 단편 만화를 맡게 되었다. 2000년대 초중반은 만화잡지를 발행하던 출판사들이 아직 남아 있던 시절이었다.
살인적인 출판 만화 스케줄을 견디기 힘들어 대학 졸업 후 영어 강사로 일했지만, 그때도 틈틈이 자신의 블로그에 만화를 올렸다. 그걸 묶어낸 작품이 ‘환타스틱 코스메틱’이다. 온라인 공간에 게재된 콘텐츠들이 한창 책으로 엮여 나오던 때였다. 작가는 요즘 같았으면 유튜버가 되었을 것이라며, 젊은 세대가 영상 콘텐츠에 빠져드는 것도 온전한 자기 의지라기보다는 특정 매체 경험 같은 사회적 요인도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덧붙였다. 시류 변천에 민감하게 대응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놓치지 않고 해낸 작가다운 통찰이었다.
일상 응축한 김환타식 콘텐츠
화장품 제품 정보나 관련한 콘텐츠가 풍부하지 않던 시기에 작가가 어렵게 구한 정보들이 ‘환타스틱 코스메틱’의 소재가 되었던 것처럼, ‘빈둥빈둥 환타스틱 유럽여행기’, ‘유부녀의 탄생’과 같은 작품들 또한 작가의 경험과 관찰 결과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내가 고생해서 알았으니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홍익인간의 마음이 창작 동기가 되었다. 배워서 남 주냐는 세상의 질타에 대한 김환타 작가의 응수다.
‘밈 고사성어’ 또한 마찬가지다. 작가는 아이가 유튜브를 통해 신조어와 줄임말 배우는 것을 보고, 밈을 비롯한 요즘 말의 압축적인 조립 방식이 고사성어와 닮았다는 것을 알아채고 자녀를 위한 학습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지원사업에 선정되며 창작에 대한 자신감과 추진력을 얻었다. 엄마이자 선생님이기도 했던 작가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김환타 작가가 자신의 일상적 경험을 만화로 재현하는 과정에 필수적인 요소가 익히는 시간이다. 한 예로 ‘유부녀의 탄생’은 현실과 작품 사이에 2년여의 시차가 있다. 경험과 표현 사이에 숙성의 시간을 두는 창작 태도는 생중계에 가까운 ‘일상툰’의 일반화된 방식과 차이가 있다. 열기와 같은 달뜬 감정들을 가라앉혀 편하면서도 깊이를 내보이는 김환타 작가만의 특징이다.
AI 시대, 인간 경험 듬뿍 담긴 마라탕 같은 만화를…
유행에 관한 이야기 끝에 만화계에서도 한창 화두인 AI(인공지능) 이야기도 나왔다. 작가는 AI 흐름을 거부할 수 없겠지만, 그럴수록 인간이 직접 경험하는 것의 의미가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보았다.
“얼마 전에 남편이랑 설악산에 다녀왔는데, 처음에 가기 싫어서 투덜거렸거든요. 그런데 산에서 내려오면서 제가 등산화 좋은 걸 찾고 있는 거예요. 해보니까 좋았던 거죠. 이 이야기를 PD에게 했더니 그게 콘트롤 프릭(Control Freak, 통제광) 특징이라면서 이런 사람들은 직접 경험을 해야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 경험이 요즘 세상에서 꼭 필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간접 경험은 너도나도 쉽게 할 수 있는 시대니까, 내가 직접 경험해서 깨닫게 되는 인간적인 인사이트가 중요해지지 않을까요?”
작가의 말을 들으며 AI가 인간의 감정을 묘사해낸다고 해도 인간이 그 감정을 느껴본 적 없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문제의 답을 경험에서 얻을 수는 없겠지만, ‘인간적임’을 구성하는 큰 부분은 여전히 경험이 아닐지. 그래서 인간적인 인사이트를 끌어내는 것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인간의 몫으로 남지 않을지. 만화를 봐와서 만화를 그렸고, 경험하고 알게 된 것을 나누고 싶어서 만화를 그리는 작가에게 배운다.

다음 작업은 영어 단어를 소재로 한 학습만화라고 김환타 작가가 귀띔한다. 영어 강사였던 이력이 떠오르는데, 작가 자신도 뭔가의 유니버스가 자기를 이쪽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웃는다. 중국어를 공부하면서 외우기 어려운 한자 때문에 고생한 기억에 한자 부수 등을 소재로 한 작업도 함께 하고 있단다. 자신의 경험이 아이와 독자에게 즐거움으로, 또 새로운 경험으로 이어지길 바란다는 작가의 바람이 그들에게 꼭 가닿길 바란다.
인터뷰를 정리하는데 작가가 한마디 덧붙인다. “그런데 제 만화, 마라탕 같지 않은가요? 다양한 경험을 가져와 끓여내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일상의 재료들로 맵고 얼얼한 특별한 맛을 내는 만화, 김환타 작가의 만화다.
2006년 메이크업 노하우를 담은 만화를 연재한 것이 계기가 되어 데뷔, 이후 ‘환타스틱 코스메틱’(학산문화사, 2008), ‘환타스틱 코스메틱 포 맨’(학산문화사, 2011), 유럽 여행 경험을 그린 ‘빈둥빈둥 환타스틱 유럽 여행기’(중앙북스, 2013), 혼인부터 출산·육아·가족생활에 이르는 과정을 담은 ‘유부녀의 탄생’(카카오웹툰, 2014~2026) 등을 꾸준히 그렸다. 최근에는 고사성어 교육 만화라 할 수 있는 ‘쓱 보면 쏙 이해되는 밈 고사성어’(2026)를 인스타툰으로 연재 후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인스타그램 계정은 @kimfanta이며 근황과 새 작품 소식, 개인 작업 등을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