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헤이 메타(Hey Meta), 오늘 바람은 어때?”
안경을 쓴 채 말을 걸면 인공지능(AI)이 답한다. 버튼을 누르면 사진과 영상을 찍을 수 있고, 보이는 게 뭔지 물어보거나 통역을 요청할 수도 있다. 지난 5월 국내 출시된 메타의 AI 안경 ‘레이밴 메타’의 사용 방식이다.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고도 AI를 이용하는 컴패니언 기기를 앞세워 메타가 시장을 선점한 가운데 삼성전자와 구글도 하반기에 첫 제품을 들고 추격에 나선다. 스마트폰 다음 폼팩터를 둘러싼 빅테크의 경쟁이 ‘안경’으로 옮겨붙었다.

삼성·구글도 출격 준비…‘화면 없는 AI 안경’부터
삼성전자와 구글은 지난해 12월 젠틀몬스터·워비파커와의 협업을 공식화한 뒤 올해 5월 구글 I/O에서 안드로이드 XR 기반 AI 글래스 실물 디자인 2종을 처음 공개했다. 7월 갤럭시 언팩에서는 디자인 2종을 추가하면서 총 4종의 디자인이 공개된 상태다.
현재까지 공개된 제품 제원 정보에 따르면 연내 출시가 예정된 ‘인텔리전트 아이웨어(가칭)’에는 12MP 카메라와 초소형 센서, 지향성 마이크, 오픈이어 스피커, 촬영 상태 표시 LED 등이 탑재된다. 무게는 약 50g으로 일반 안경 수준을 목표로 했다.
흔히 ‘AI 스마트 안경’을 떠올렸을 때 연상되는 ‘렌즈가 곧 화면’인 단계는 아직 아니다. 초기 모델에는 디스플레이를 넣지 않았다. 대신 제미나이를 음성으로 호출해 길 안내와 번역, 메시지 전송, 사진 촬영 등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스마트폰을 대체하기보다 스마트폰을 꺼내기 불편한 순간에 AI 기능을 대신 수행하는 보조 기기에 가깝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갤럭시 AI의 활용 범위를 넓힐 새로운 접점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AI 탑재 기기를 지난해 4억 대에서 올해 8억 대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삼성전자는 이 제품을 “스마트폰을 대체하는 독립형 기기가 아니라 모바일 AI 경험을 화면 밖으로 확장하는 보완형 기기”라고 설명한다. 갤럭시뿐 아니라 다른 안드로이드폰과 아이폰까지 연동 범위를 열되, 갤럭시 워치·버즈와 함께 사용할 때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한다는 전략이다.
‘레이밴 메타’, 국내 판매 본격화
메타는 먼저 시장을 넓히고 있다. 레이밴·오클리 브랜드를 보유한 에실로룩소티카와 협업한 ‘레이밴 메타’와 ‘오클리 메타’는 지난 5월 국내 공식 출시된 이후 지난달부터 통신 3사를 통해 유통되고 있다. 이와 별개로 국내 총판은 메타의 디바이스 제품군 총판사 신세계아이앤씨가 맡아 레이밴과 오클리 자체 판매 채널을 제외한 국내 온·오프라인 채널에서 판매한다. 레이밴 메타는 69만 원부터, 오클리 메타는 90만 원 선이다.
메타는 올해 1분기 글로벌 스마트 안경 시장의 약 69%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스마트 안경 시장은 전년 동기보다 3배 이상 성장했다. 아직 시장 규모 자체는 초기 단계지만 메타가 먼저 제품을 내놓고 유통망을 확대하면서 후발 업체가 진입할 수 있는 소비자 시장을 만들고 있다는 평가다.

메타의 강점은 기존 안경과의 거리감을 줄였다는 점이다. 다양한 프레임과 도수 렌즈를 선택할 수 있어 현재 출시된 AI 안경 가운데 일반 안경에 가장 가까운 형태라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국내에 출시된 제품군은 디스플레이형이 아니기 때문에 도수 렌즈도 스마트 안경 전용이 아닌 일반 선글라스나 안경에 넣는 도수 렌즈와 같다. 도수를 맞추려면 일반 안경원을 찾아 렌즈를 교체하면 된다.
다만 전자기기로서의 한계도 드러난다. 레이밴 메타를 판매하는 서울 종로구의 안경원 관계자는 “안경테 내부가 기계장치로 채워져 있어 일반 안경처럼 다리를 데워 피팅하기는 어렵다”며 “장시간 착용하면 피로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매장에서 개봉한 뒤에는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로 취급돼 반품·환불이 안 된다는 점을 미리 고지하고 판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 기능과 카메라를 안경에 넣는 데는 성공했지만, 일반 안경처럼 개인의 얼굴에 맞춰 자유롭게 조정하고 매일 착용하는 단계까지는 아직 거리가 있다는 얘기다. 특히 서양인 얼굴 골격에 맞춰 설계된 해외 브랜드 제품 특성상,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착용감 측면에서 아쉬운 평가를 받고 있다.

본질은 ‘AI 접점’ 선점 경쟁
시장조사기관 옴디아는 글로벌 AI 스마트 글래스 판매는 올해 1000만 대를 넘어서고 2030년에는 3500만 대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 메타와 삼성·구글이 AI 안경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단순히 새 하드웨어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스마트폰과 함께 AI를 이용자가 가장 자주, 자연스럽게 접하는 인터페이스를 누가 선점할 것인가의 문제에 가깝다.
삼성·구글 진영은 역할을 나누는 전략을 택했다. 삼성은 하드웨어와 갤럭시 기기 간 연결 경험을, 구글은 안드로이드 XR과 제미나이를, 젠틀몬스터와 워비파커는 안경 디자인과 판매 경험을 맡는다. 호환 범위는 넓게 열어두면서 갤럭시 생태계 안에서는 스마트폰·워치·버즈와의 연속적인 사용 경험을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메타는 반대로 자체 AI와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통합된 경험을 구축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스마트 안경으로 확보되는 사용자 시선 기반의 영상 데이터가 향후 로봇 학습 등 다른 사업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을, 두 진영 모두 염두에 두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현지에서는 디스플레이 탑재형 고급 모델도 이미 출시된 상황이다. 메타는 지난해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상위 모델 ‘레이밴 메타 디스플레이’를 공개하고 판매에 나섰다. 손 움직임으로 렌즈 안 화면을 조작해 메시지를 보내고 번역과 각종 AI 기능을 이용하는 방식인데, 기능이 늘어난 만큼 배터리는 최대 6시간으로 일반 모델보다 짧고 무게는 69g으로 약 35% 무거워졌다. 공개 이후 수요가 몰리면서 해외 출시 일정도 늦춰진 상태다. 삼성·구글 역시 디스플레이형 모델을 순차적으로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화면과 연산 기능을 안경 안으로 더 많이 옮길수록 배터리와 무게, 발열이라는 물리적 한계도 커진다. 여기에 얼굴에 카메라를 상시 착용하는 데 대한 거부감과 사생활 침해 논란, 가격 저항선도 남아 있다.
스마트워치가 시계를 차지 않던 사람까지 끌어들이며 대중화에 성공한 것과 달리, 안경 분야에서는 이런 흐름이 아직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AI 음성 비서와 실시간 번역, 상황 인식 등 활용성이 과거 스마트 안경보다 크게 넓어진 지금, 이 격차를 좁힐 수 있을지가 시장 확대의 관건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최재인 삼성전자 MX사업부 XR개발팀 부사장은 지난달 런던 브리핑에서 “기술이 들어갔다기보다 원래 쓰던 안경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며 “많은 기업이 AI 글래스를 만들 수 있지만 사람들이 일상에서 매일 착용하고 사용하고 싶어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도전”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