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AI 기반 스마트글래스는 스마트폰보다 내부 공간이 훨씬 좁고, 얼굴에 장시간 착용하는 특성상 무게와 발열 관리가 중요하다. 배터리를 크게 넣을 수 없는 상황에서 카메라와 마이크, 각종 센서는 물론 AI 연산까지 동시에 수행해야 하다 보니, 결국 초소형화·경량화·저전력화가 과제다.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면 관련 부품업계에도 새로운 수요와 함께 공급망 재편의 기회가 생길 수 있다. 다만 아직 초기 시장이 열리는 단계인 만큼 국내 부품업계의 수혜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스마트폰보다 훨씬 작은 폼팩터와 제한된 전력 안에서 성능을 구현해야 하는 기술 장벽이 있는 데다, 중국 업체들이 이미 상당한 제조 공급망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AI 안경이 새로운 전자부품 시장으로 자리 잡으려면 국내 기업들도 기존 스마트폰 중심의 공급망과는 다른 경쟁력을 입증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초소형·저전력’ 새 수요
카메라 분야에서는 카메라모듈과 이미지센서가 새로운 수요처로 떠오른다. AI 안경에서 주변 환경을 보고 이해하는 AI의 ‘눈’ 역할은 카메라가 맡는다.
스마트폰처럼 고화소 경쟁을 벌이는 것보다 제한된 공간과 전력 안에서 실시간 이미지 인식에 적합한 성능을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으면서도 전력 소모를 낮춘 카메라모듈과 이미지센서의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한상열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 가상융합연구실 책임연구원은 AI 스마트글래스의 기술적 과제로 배터리 성능 개선과 경량화, 광학 기술 고도화 등을 꼽으면서 “카메라·배터리·반도체 등을 안경이라는 제한적 구조 안에 모두 집약시켜야 하는 만큼, 무게를 20~50g 수준의 일반 안경에 근접하게 줄이는 물리적 경량화와 심미적 완성도를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국내 전자부품 업계의 사업 환경도 AI 안경이라는 새로운 수요처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AI 서버와 반도체 투자 확대에 따라 고부가가치 기판·패키징 수요가 늘어나는 반면, 스마트폰을 비롯한 기존 IT 기기 시장은 성숙기에 접어들면서다.
실제로 LG이노텍은 올해 상반기 반도체 패키지기판 라인 가동률이 94%를 기록하며 카메라모듈 라인(85.2%)을 앞서는 등 기존 사업 사이에서도 수요 온도차가 나타났다. AI 인프라와 반도체 관련 사업의 성장세가 두드러지는 반면 전통적인 IT 부품 사업은 새로운 수요처 확보가 과제로 떠오른 셈이다.
반도체 쪽에서는 저전력 AI 연산과 패키징이 관건이다. 클라우드에 모든 작업을 맡기기 어려운 만큼 온디바이스 AI와 저전력 반도체의 역할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배터리도 초소형·고밀도화가 요구되는데, 무게와 사용시간이 직접적인 ‘트레이드오프’ 관계에 있는 만큼 기존 웨어러블 배터리 경험을 보유한 기업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한상열 책임연구원은 “카메라·비디오 기능과 실시간 번역, 사물 인식 등 AI 기능이 활성화될수록 소비 전력이 급증하는 반면 머리에 착용하는 기기 특성상 대용량 배터리를 넣기 어렵다”며 “무선 연결과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AI 프로세싱을 자유롭게 쓰려면 배터리 사용 시간 확보가 근본적인 과제”라고 짚었다.
다음 단계 시장은 ‘디스플레이형’…디스플레이·광학이 승부처
현재 시장을 주도하는 제품은 음성 AI와 카메라 기능 중심의 비(非)디스플레이형 AI 안경이다. 하지만 업계가 궁극적으로 바라보는 시장은 사용자 눈앞에 정보를 직접 띄우는 디스플레이 탑재 스마트글래스다. 이 단계에서는 카메라와 반도체뿐 아니라 초소형 디스플레이와 광학 부품의 중요성이 한층 커진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글로벌 AI 스마트글래스 시장은 2025년 510만대에서 2026년 1000만대로 늘어난 뒤, 2030년에는 3500만대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스마트 애널리틱스 글로벌(SAG)은 이보다 빠르게 2028년부터는 디스플레이 탑재 AI 안경이 음성 전용 제품을 앞지를 것으로 내다봤다.

디스플레이 핵심 기술로는 올레도스(OLEDoS)와 레도스(LEDoS)가 꼽힌다. 올레도스는 실리콘 기판 위에 OLED를 증착하는 초소형 디스플레이 기술로, 좁은 면적에 높은 해상도를 구현할 수 있어 XR 기기에 적합한 기술로 평가된다. 현재 삼성 갤럭시XR에는 4K 올레도스 기술이, 애플 비전프로에는 올레도스와 올레드 온 실리콘 기술이 적용됐다.
삼성디스플레이는 2023년 미국 이매진을 인수하며 RGB 올레도스 기술을 확보했다. 삼성디스플레이의 첫 해외 기업 인수 사례로, 당시 업계는 이를 XR 기기에 적용할 RGB 올레도스 기술을 확보해 미래 시장을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것으로 봤다.
LG디스플레이도 XR용 초소형 디스플레이 연구를 확대하며 관련 전시회에서 올레도스 기술을 선보인 바 있다.
문대규 순천향대 디스플레이신소재공학과 교수는 “아직 디스플레이형 스마트글래스 시장이 열리지 않았지만, 국내 업체들이 스마트글래스 관련 기술에 관심을 두고 개발해왔고 특히 올레도스는 현재 해상도 기준으로 5000PPI 이상 개발되는 등 기술적으로 상당히 진척했다”고 말했다.
반면 레도스는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준비가 덜 된 분야로 지목된다. 문 교수는 “레도스의 경우 국내에 LED 전문 기업 저변이 넓지 않아 아직 약한 편이지만 스마트모듈러센터 구축과 연구개발(R&D) 지원 등을 통해 기반을 키우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관건은 완제품 대기업의 발주 물량이 실제 국내 부품사로 이어지느냐다. 기존 스마트폰 협력사 기반의 공급망을 AI 안경 시장에서도 그대로 이어갈지도 주목된다.
특히 중국 OEM·ODM 업체와의 가격 경쟁력 확보가 관건으로 꼽힌다. 중국은 완제품뿐 아니라 부품을 빠르게 조달하고 조립하는 제조 생태계를 이미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샤오미와 화웨이는 AI 기반 스마트글래스를 글로벌 시장에 선보였고, TCL 계열 스타트업들도 입지를 넓히는 중이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도 BOE·CSOT·티엔마 등이 주요 XR 기업에 패널을 공급한다. 스마트폰과 웨어러블 기기 제조를 거치며 규모의 경제를 확보한 중국 업체들이 초기 시장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

제품 경쟁력은 개별 부품의 성능뿐 아니라 반도체·디스플레이·광학·배터리 업체가 얼마나 긴밀하게 협업해 완성도 높은 초소형 부품을 통합해내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올레도스를 만들려면 실리콘 웨이퍼 위에 OLED를 구동시키는 CMOS 회로, 즉 백플레이트를 반도체 공장에서 먼저 제작한 뒤 그 위에 디스플레이 패널 업체가 OLED 화소를 형성하고 패키징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 때문에 현재는 반도체 업체와의 협업이 필수적이고 단가도 높아지는 구조다.
문 교수는 “원가를 낮추기 위해 실리콘 웨이퍼 대신 유리 기판 위에 TFT 백플레이트를 만드는 시도가 진행 중”이라며 “이 경우 향후 디스플레이 패널 업체가 자체적으로 제작할 가능성도 있고, 광학 업체와의 협력 역시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업계는 디스플레이형 스마트글래스, 상용화 시점을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예전보다 관심이 커진 만큼 지나치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최재인 삼성전자 MX사업부 부사장은 지난 7월 영국 런던에서 개최한 ‘AI 글래스’ 제품설명회에서 연내 출시 예정인 첫 AI 글래스를 두고 “시작점”이라고 언급하며 향후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차세대 모델이 나올 가능성도 시사했다.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아직 시장이 가시화하지 않아 본격적인 제품화 단계는 아니다”라면서도 “시장이 열리고 수요가 구체화하면 그에 맞춰 대응할 수 있는 기술 자체는 계속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