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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나들이] 가을 산행길 목마름 달래주는 산앵도나무

진달래과, 학명 Vaccinium hirtum var. koreanum

2017.09.19(Tue) 15:26:53

[비즈한국] 가을이 부쩍부쩍 깊어간다. 무덥고 찌뿌둥한 날씨가 언제였던가 싶다. 조그만 기온 차와 날씨 차이에 체감의 정도가 민감한 것일까? 흐르는 시간의 궤적이 빨라 기억의 잔상이 따라가지 못한 탓일까? 9월이 되자마자 산천의 풀과 나무가 가을꽃으로, 가을 색깔로 금세 변해간다. 

 

한계령에서 가파른 계단을 올라 설악산 서부능선의 삼거리 고갯길을 오른다. 긴 가뭄과 무더운 여름에 축축 늘어진 풀꽃들이 늦여름에 내리쏟았던 빗줄기와 서늘한 가을바람에 생기가 넘쳐흘렀다. 팍팍한 산길을 오르느라 무거운 몸도 길섶의 꽃들을 보면 고단함을 잊는다. 서부능선 삼거리 고갯길에 이르자 시원한 바람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송알송알 맺힌 땀방울이 시원한 청량감을 남기고 바람과 함께 증발한다. 동시에 용아장성 암벽 능선이 파노라마 화면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이 상쾌함을 무엇에 비길까? 이런 맛에 들꽃 나들이를 하는가 보다.

 

잎도 붉고 열매도 붉고. 설악산에서 만난 산앵도나무는 벌써 가을빛을 머금었다. 사진=필자 제공


삼거리길에서 방향을 좌로 틀어 귀때기청을 오른다. 한 발 한 발 너덜겅 바위를 탄다. 줄타기 곡예처럼 움찔움찔 균형을 잡으며 모난 돌, 둥근 돌, 뾰족한 돌을 건너뛴다. 어렵사리 한 발 한 발 뛸 적마다 설악의 하늘이 내려앉고 멀리서 아득히 손짓하던 귀때기청이 점점 다가온다. ​

 

너덜겅을 아슬아슬 건너 좁은 산길에 접어들자 곱고 다정스러운 꽃이 반긴다. 바람에 한들거리는 쑥부쟁이, 산구절초 꽃대 너머로 아스라이 펼쳐지는 가리봉, 주걱봉이 맑은 하늘 아래 가까이 서 있다. 풍광에 취해 멀리, 높이 보다가 길섶을 보니 벌써 가을을 재촉하는 듯 붉은 단풍 빛이 짙어져 가는 키 작은 관목이 있다. 높은 산지의 비탈진 등산로 가장자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산앵도나무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새빨간 열매도 달고 있다.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붉은 잎새 사이에서 옹골차게 잘 익은 산앵도나무 열매가 기특하다. 올해의 소명(召命)을 무사히 마치고 성숙한 열매를 맺어 후대(後代)를 남겼다. 새빨간 열매에 한 삶을 바치고 조용히 한 해를 마무리 짓고 단풍 빛깔 짙어지는 무성한 잎을 보니 아! 가을인가 싶다. 봄 무르익어가는 계절, 높은 산 양지바른 숲길에 고개 숙여 눈길 주면 살포시 맞이하는 야리야리한 산앵도나무 꽃망울이 얼마나 귀엽고 깜찍했던가? 엷은 초록빛 도는 분홍 꽃망울에서 금세라도 달랑달랑 방울 소리가 울려 퍼질 것만 같았던 그 여린 꽃망울이 벌써 새빨갛게 익어 요염을 떨며 산새를 유혹하니 세월의 흐름을 한눈에 보는 것 같았다. 

 

봄에 방울 소리가 나는 듯, 초록빛 돌던 분홍의 여린 꽃망울이 벌써 새빨개졌다. 사진=필자 제공


산앵도나무는 높은 산 중턱 이상에 자라는 높이 약 1m 정도인 키 작은 관목이다. 멀리 앞만 보고 산을 오르면 쉽게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그 꽃은 이파리 뒤에 가려져 있어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꽃이다. 잎은 양 끝이 뾰족하고 조그마하며 잎 가장자리에는 안으로 굽은 잔 톱니가 있고 잎자루가 짧다. 꽃은 양성화로 엷은 분홍빛으로 피고, 묵은 가지에서 자라는 총상꽃차례에 아래를 향하여 망울망울 달린다. 화관은 종처럼 생기고 끝이 얕게 5개로 갈라진다. 열매는 장과로서 둥글고 열매 끝에 꽃받침조각이 왕관처럼 남아 있어 독특한 모습을 보인다. 

 

앵두나무 열매는 봄에 익고 끝이 매끈한데 산앵도나무는 9월에 붉게 익고 끝에 왕관 모습의 꽃받침 흔적이 남는다. 또 열매가 익으면서 바로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비교적 단풍이 빨리 드는 관목이다.

 

열매는 먹을 수 있다. 가을 산행길에 목마르고 지루할 때 열매를 따 먹으면 새콤달콤하여 맛도 좋고 입안에 침이 사르르 고여 목마름도 달랠 수 있다. 우리나라 각처 높은 산에서 만날 수 있다. 민가에서 뿌리나 껍질을 여름에 채취하여 말려서 장염, 당뇨에 달여 먹고, 열매는 설탕에 재워서 효소를 만든 뒤 물에 타서 마시면 천식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한국특산식물이며 열매가 앵두처럼 생겼고 산에서 자란다 하여 산앵도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박대문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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