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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나들이] 봉선화는 외래종, 물봉선이 진짜 우리 꽃

봉선화과, 학명 Impatiens textori

2017.09.13(Wed) 11:12:27

[비즈한국] 계절의 변화는 어김없고 산들꽃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억척스럽게 생명줄을 이어간다. 제자리에 붙박이인 식물은 모든 변화와 어려움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감수해야만 한다. 피할 수 없는 여건 변화 속에서도 저버리지 못한 한 가지 소명(召命)은 꽃 피워 열매 맺어 대를 이어가는 것이다. 그 과정을 보면 눈물겹도록 애처롭다. 이들을 볼 적마다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느낀다. 

 

한참을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 애타도록 목마르게 했던 봄 가뭄이었다. 찜통더위에 불가마 같은 여름이었다. 한 번 내리기 시작한 비는 거의 재앙 수준으로 퍼부었다. 기상 변화가 무쌍했다. 이 속에서도 끈질기게 버티어내고 때가 되면 꽃을 피우는 산들꽃도 ‘살아난다’는 것이 고통인지도 모를 일이다. 

 

비 온 뒤 산들거리는 초가을 바람 속에 계곡 길을 걷는데 그늘 속에 올망졸망 연분홍 꽃이 한창 피어 있었다. 물봉선이었다. 간밤에 내린 비 탓인지 꽃잎이 많이 상해 있었다. 물봉선은 날씨가 한창 더워지기 시작하면 피기 시작하여 초가을까지 피고 지는 꽃이다. 여름꽃과 가을꽃의 경계가 모호한 꽃이기도 한 물봉선은 꽃 이파리가 매우 연약하여 빗방울에 쉽게 찢기고 상한다. 산골짜기의 물가나 습지 그늘에서 무리 지어 자라는데 꽃대도 연약하여 애잔한 감이 드는 여린 꽃이다. ​

 

봉선화 꽃을 닮아 물봉선으로 부르지만, 봉선화는 외래종이고 물봉선이 우리 땅에 자생하는 우리 꽃이다. 사진=필자 제공


봉선화 꽃을 닮아 물봉선이라 이름을 얻었지만, 어린 시절 흔히 화단에서 보았던 외래종 봉선화하고는 달리 우리 땅에 자생하는 우리 꽃이다. 그런데도 그늘진 계곡에서 숨은 듯 자라는 청초하고 여린 물봉선을 보면 봉선화가 생각나고 홍난파의 가곡 ‘봉선화’의 노랫말이 떠오른 것은 어인 까닭일까?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심금을 울렸던 가곡이 ‘봉선화’였다. 홍난파 작곡, 김형준 작사의 ‘봉선화’는 민족 수난 시절의 설움과 역경에 굴하지 않는 민족정신을 상징하는 꽃이었다. 어린 시절 손톱에 빨갛게 물들이던 추억의 꽃이고 향수의 꽃이었다. 하지만 그 봉선화는 우리 꽃이 아니다. 언제, 어떻게 국내에 들어왔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동남아, 인도, 중국 원산의 꽃으로 오랜 세월 이 땅에 함께 살아왔다. 우리 생활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친근한 꽃이었고 일제강점기에 우리 조상들이 망국의 한을 노래했던 꽃이기도 하다.

 

가곡 봉선화의 노랫말과 배경은 이러하다. 평소 교분이 두터웠던 홍난파와 김형준은 곧잘 “우리 신세가 봉선화 꽃 같다”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홍난파가 1920년에 펴낸 ‘처녀혼’이라는 단편집 앞부분에 ‘애수’라는 곡을 실었는데, 나중에 김형준이 그 곡에 ‘봉선화’ 가사를 붙였다고 한다. 

 

이렇게 탄생한 가곡 ‘봉선화’가 전국에 퍼지고 만인의 심금을 울리게 된 것은 20년이 지난 1940년대에 소프라노 가수 김천애의 덕분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평남 출신으로 일본 음악학교에서 성악을 공부했다. 1942년 봄, 동경의 히비야공회당에서 열린 ‘전일본 신인음악회’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우레 같은 청중의 앵콜 요청에 답송으로 홍난파의 ‘봉선화’를 불렀다고 한다. 이 노래를 들은 청중석의 교포들은 너무도 감격하여 모두 눈물을 흘렸고 노래가 끝난 후 그녀를 붙들고 하도 울어 하얀 치마저고리가 눈물에 흠뻑 젖었다고 한다. 그 후 귀국한 김천애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소복 차림으로 이 노래를 계속 불러 민족혼을 일깨우고 심금을 울려 이 노래가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물봉선은 우리나라 곳곳의 산골짜기 물가나 습지에서 무리 지어 자란다. 꽃말은 봉선화와 같이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이다. 사진=필자 제공


그래서인지 산 계곡 습지에서 물봉선을 볼 적마다 시골집 화단의 봉선화가 연상되고 가곡 ‘봉선화’의 노랫말이 생각난다. 한여름에 피었던 아름다운 꽃이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처량한 낙화가 되고 북풍한설에 형체는 없어져도 다시 화창한 봄날의 환생을 꿈꾼다는 것이 가곡의 노랫말이다. 봉선화의 한 삶을 노래한 것이지만, 평화로운 조국이 일제강점기의 설움에 잠기고 그 상황에서 바라는 애절한 민족의 염원을 처절하게 절규한 것이기도 했다. 물봉선을 바라보며 되새겨보는 봉선화 연정은 지울 수 없는 아픔이고 슬픈 과거이기도 하다.

 

물봉선은 우리나라 곳곳의 산골짜기 물가나 습지에서 무리 지어 자라는 우리 꽃이다. 줄기는 곧게 서고, 많은 가지가 갈라지며, 높이는 40~80cm이다. 꽃은 봉선화를 닮았지만, 꽃 뒤에 달린 꿀주머니의 끝이 비단결 머리채를 돌돌 말아 올려 비녀 꽂은 새색시 머리 모양새처럼 깜찍하다. 도르르 말린 백옥 같은 꿀주머니의 끄트머리가 단정하고 이쁘다. 그러나 봉선화는 꿀주머니 끝이 말리지 않고 그냥 뾰족할 뿐이다. 꽃도 봉선화는 잎겨드랑이에서 2~3개가 나와 줄기 따라 아래로 매달리듯 달리지만, 물봉선은 줄기 끝의 가지 윗부분에 총상꽃차례를 이루며 꽃이 달린다. 꽃 색은 붉은색, 흰색, 노란색, 미색, 자주색 등으로 다양하다. 꽃 색깔에 따라 물봉선, 흰물봉선, 노랑물봉선, 미색물봉선, 가야물봉선 등으로 불린다. 열매는 삭과이고 익으면 터지면서 종자가 튀어나온다. 

 

한국, 일본, 중국 동북부에 분포하는데, 전초(全草)를 가을에 채취하여 햇볕에 말려 약용한다.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하며 통증을 완화하여 종기나 상처 등에 치료제로 쓰기도 한다. 꽃말은 봉선화와 같이 씨방을 건들기만 해도 터지기 때문에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이다.​ 

박대문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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