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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나들이] 진범이냐 진교냐 사연 많은 꽃 '흰진범'

흰진범(미나리아재비과, 학명 Aconitum logecassidatum Nakai)

2017.09.05(Tue) 14:41:05

[비즈한국] 입추, 처서가 지나고 백로가 다가온다. 무더운 더위가 한풀 꺾이고 갑자기 산들바람 불어 가을이 성큼 왔나 싶은 9월 초 화악산을 올랐다. 하지만 아직도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는데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화악산은 경기도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최고봉인 신선봉이 해발 1468m이다. 예로부터 화악산, 운악산, 관악산, 송악산, 감악산을 경기 5악이라 불렀다고 한다. 화악산 정상 주변은 군사지역으로 출입이 금지되어 접근이 어렵다. 

 

꽃쟁이들이 출입금지 지역을 굳이 찾는 이유는 뭘까? 금강초롱과 닻꽃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남보라 빛깔 선명한 금강초롱꽃이 있다. 더하여 여름에서 가을로 건너가는 이맘때쯤이면 가는 세월 아쉬워 잡아두려는 듯 산 정상 부근에 닻꽃이 다투어 꽃을 피운다. 지난해 이 칼럼에서 소개한 바 있지만, 금강초롱과 닻꽃은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꽃이 아닌 매우 귀한 식물이다.

 

진범은 꽃이 연한 자주색으로 피고, 흰진범은 꽃이 연한 노란빛을 띤 흰색으로 피므로 ‘흰진범’이라 했다. 사진=필자 제공


화악산 산등성이에 흰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시원한 바람이 한 번씩 산기슭을 훑고 지나가면 온갖 풀들이 물결 흐르듯 누었다가 오롯이 몸을 일으킨다. 꽃줄기에 매달린 꽃들은 벌, 나비 유인하는 듯 살랑살랑 설레발 춤을 춘다. 꽃도 가는 세월의 아쉬움에 조급한 마음이 드는 것일까? 넓은 길을 벗어나 산등성이 오솔길로 접어드는데 푸른 숲속에 한들거리는 하얀 꽃 무더기가 눈길을 잡는다. 늘어진 긴 줄기의 가녀린 가지 끝에 올망졸망 붙어 있는 하얀 꽃송이였다. 상아나 옥으로 깎아 만든 것처럼 하얗고 은은한 빛깔의 정겹고 귀여운 오리 새끼들 모양이다. 바로 흰진범이다. 

 

흰진범의 잎은 손바닥처럼 3~7개로 깊게 갈라지고 갈래 조각엔 끝이 뾰족한 치아 모양의 톱니가 있다. 산지의 깊은 숲속 습한 곳에서 주로 자란다. 꽃은 원줄기 끝과 잎겨드랑이에 총상꽃차례로 핀다. 꽃잎 앞쪽은 보라색이 나는 것도 있고 흰색이 나는 것도 있다. 길게 원통형을 이루는 꽃받침 뒷부분이 위로 올라가 구부러져 있어 오리 주둥이의 형상에 가까운 모습이다. 연한 황백색 꽃 여러 송이가 모여 마치 새끼 오리가 머리를 맞대고 다정히 수군대는 모습이다. 꽃차례와 꽃잎에 잔털이 많이 있다. 꽃이 완전히 활짝 피었을 때 보면 꽃받침 안에 2개의 꽃잎이 들어 있다.

 

흰진범과 잎, 줄기 그리고 꽃 모양이 거의 같은 진범이라는 식물이 있다. 다만 꽃 색깔이 다르다. 진범은 꽃이 연한 자주색으로 피고, 흰진범은 꽃이 연한 노란빛을 띤 흰색으로 피므로 ‘흰진범’이라 했다. 

 

꽃 이름 ‘진범’과 ‘진교’, 이름과 관련하여 말이 많은 산들꽃 중의 하나이다. 백과사전이나 식물도감에도 두 이름을 함께 적기도 하고 둘 중 한 가지만 쓰기도 한다. 이유가 뭘까? 

 

흰진범은 연한 황백색 꽃 여러 송이가 모여 마치 새끼 오리가 머리를 맞대고 다정히 수군대는 모습이다. ​사진=필자 제공


‘진교’와 ‘진범’에 얽힌 구구절절한 사연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다. 진범의 어원은 진교(秦艽)이다. 진나라(秦)에서 생산되고 뿌리가 그물처럼 서로 얽혀 있다는 뜻의 교(艽)를 써서 진교(秦艽)라고 했다. 한방에서는 지금도 약재(藥材) 이름을 진교라 부른다. 그런데 원래의 이름, 진교(秦艽)를 옮겨 쓰면서 비슷해 보이는 한자 艽(교)를 芃(풀 무성할 봉)으로 잘못 적어 秦芃이 되었고 이를 다시 읽는 과정에서 범(凡)자 획에 끌려 ‘봉’이 ‘범’으로 잘못 읽혀 ‘진범’이 되었다는 설이다. 진범이든 진교든 현재는 진범이 표준으로 등록되었으니 표준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한방에서는 진범의 뿌리를 진교라 하여 약재로 사용하는데 맹독성 식물이므로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강한 소염효과가 있어 관절염을 억제하며 항종양, 해열, 진통, 경련 완화 작용이 있다고 한다.

 

진교니 진범이니 이름에 사연도 많고 다툼도 많지만, 꽃은 가녀린 한 줄기 가지 끝에 다정하게 붙어 핀다. 마치 오순도순 사이좋게 머리 맞대고 정겨운 속 이야기 나누는 듯하다. 말 많고 다툼 많은 우리네 세상사도 흰진범 꽃송이처럼 서로 머리 맞대고 곰살맞게 속내 터놓고 정겹게 살 수는 없는 것일까?​ 

박대문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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