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인공지능(AI) 투자 확대가 국내 건설업의 수주 지형을 재편하고 있다. 주택사업 성장세가 둔화하는 사이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이를 뒷받침할 전력 인프라가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했다. 대형 건설사들도 기존 시공 역량을 바탕으로 개발·투자와 발전·에너지 분야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주택사업 빈자리 메울 데이터센터…기술 진입장벽 높아
건설사들이 새 일감 확보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주택사업 외형 축소가 있다. 올해 상반기 국내 주요 건설사의 주택 수익성은 공사비 급등기에 착공한 고원가 현장이 빠져나가면서 정상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반면 주택 매출은 여전히 줄고 신규 분양도 당초 목표에 못 미치는 곳이 많았다(관련기사 5대 상장 건설사 상반기 영업익 25% 늘었다…‘고원가 현장’ 줄어든 효과).
그 빈자리를 메울 사업으로 AI 데이터센터가 부상했다. 정부는 SK·GS·네이버와 함께 2029년까지 8.4GW 규모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2035년까지 전체 규모를 18.4GW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와 별도로 통신·IT서비스 기업들도 자체 증설계획을 내놓고 있다. 개별 데이터센터가 100MW 안팎으로 대형화하는 가운데 여러 시설을 묶은 GW급 클러스터 조성도 추진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건설시장 규모도 크다. LS증권은 10일 국내 주요 기업이 발표한 장기 AI 데이터센터 증설 목표를 토대로 관련 건설시장 규모를 100조 원 수준으로 추산했다. IT 부하용량 기준 MW당 공사비를 120억~130억 원 수준으로 적용한 결과다. AI 데이터센터는 기계·전기·배관(MEP)이 공사비 70~80%를 차지하고 냉각 배관과 고밀도 배전 설계도 복잡해 진입장벽이 높은 시장으로 꼽힌다.
이규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주택 시장이 많이 어려워지다 보니 새로운 미래 먹거리로 여러 업체들이 데이터센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다만 AI 데이터센터는 특정 상위 기업들이 주로 진행하고 있어 향후 시장이 어느 정도 규모가 될지, 전체 건설시장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실제 공사를 수행할 인력도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데이터센터 실적은 GS건설과 현대건설이 앞서 있다. GS건설과 계열사 자이C&A는 데이터센터 준공 실적이 총 17곳으로 가장 많다. 현대건설은 준공 용량 기준 1위로 추산된다. 현재 자이C&A는 파주와 세종에서 각각 3200억 원, 5260억 원 규모 공사를 진행하고, 현대건설도 인천 가좌와 안산에서 5000억~8000억 원 규모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다.
다른 대형 건설사들도 수주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물산은 안산과 용인 덕성, 국가AI컴퓨팅센터 등 국내외 5곳에서 약 2조 원 규모 데이터센터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DL이앤씨는 3600억 원대 김포 데이터센터 사업을, 자회사 DL건설은 1268억 원 규모 부천 데이터센터 사업을 맡았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3500억 원 규모 강남 데이터센터를 준공하고 후속 수주에 나섰다.

시공 넘어 개발·투자까지…전력 인프라도 새 먹거리
시장 확대와 함께 건설사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삼성물산은 현재 시공 중인 안산 글로벌 클라우드센터에 투자자로 참여했다. 착공 전 설계와 공사비, 공사기간 등을 검토하는 프리컨스트럭션 서비스(PCS)를 제공한 뒤 본공사까지 수주했다. GS건설도 안양 에포크 데이터센터를 시공하면서 지분을 투자했다. 공사를 수주해 짓는 데 그치지 않고 사업 초기부터 투자와 설계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데이터센터 대형화로 전력 인프라 확보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일반 데이터센터보다 전력 사용량이 많은 데다 24시간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LS증권은 3대 메가프로젝트에 따른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각각 6.3GW와 18.4GW, 총 24.7GW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발전원과 송변전망 확충이 현실화하면 대형원전과 SMR 등도 건설사의 새 수주처로 떠오를 수 있다.
데이터센터와 발전사업을 연계하는 시도도 나타난다. 삼성물산은 2024년 스웨덴에서 SMR 발전 전력을 데이터센터에 직접 공급하는 사업모델 개발에 나섰고, 올해는 ‘데이터센터(DC)+발전 통합 사업’을 신규 사업모델로 제시했다. GS그룹도 발전소와 인접한 강원 동해 북평 제2일반산업단지에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AI 산업 확산과 글로벌 빅테크의 투자 확대에 따라 국내외 AI 데이터센터 시장은 중장기적으로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대규모 전력 인프라와 고효율 냉각 기술 등이 요구되는 만큼 관련 역량을 갖춘 건설사의 사업 기회도 확대될 것”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