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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데이]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와 순정남 조 디마지오

세기의 연인을 진심으로 사랑한 메이저리그의 전설

2017.06.26(Mon) 06:00:00

[비즈한국] ​“여러분, 조 디마지오가 누군지 아세요?”​

 

경영대학 학부 시절, 5월 어느 날의 ‘마케팅 원론’ 강의 내용을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날 채 아무개 교수는 학생들에게 앞의 질문을 던졌다. 어떤 학생이 손을 들고 “미국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야구선수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채 교수의 강의가 이어졌다.

 

“맞아요. 그런데 지금은 마케팅 원론 시간이니 경영학적 관점에서 조 디마지오를 얘기해볼까 합니다. 그는 마릴린 먼로의 전 남편으로 지금도(당시 조 디마지오는 생존해 있었다.) 먼로의 무덤에 수십 년간 장미를 바쳐 미국 사회에서 순정파 남자의 대명사로 불립니다. 여기에 주목한 미국 광고업계는 가전제품이나 주부를 소비층으로 하는 제품에 그를 모델로 기용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본의 아니게 미국 광고계의 블루칩으로 떠오르기도 했어요….” 

 

조 디마지오와 마릴린 먼로의 사랑이 대체 어쨌기에 사랑이나 인문과 동떨어져 딱딱하기 이를 데 없는 경영대학 학과 강의에까지 등장한 것일까. 이제 두 사람의 얘기를 시작해 보고자 한다. 

 

조 디마지오와 마릴린 먼로. 사진=joedimaggio.com


마릴린 먼로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20세기 최고의 섹스 심벌(성적 매력을 통해 인기를 얻는 사람)이다. 그녀의 매력은 동시대에 함께 전성기를 구가하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의 그것과 분명히 달랐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예술로까지 승화된 이목구비와 독특한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완벽한 미인이지만 그 기품 있고 귀족적인 미모는 때로는 도도하고 차가운 이미지를 형성하기도 했다. 그녀의 절세미모에서 풍기는 아우라는 일반인들의 접근을 금할 만큼 신비함 그 자체였다. 

 

반면 마릴린 먼로의 이미지는 그녀의 하얀 피부를 더욱 하얗게 도드라지게 하는 실버 블론드, 사람을 뇌쇄시키는 반쯤 감은 눈, 살짝 치켜든 턱, 새빨간 립스틱을 칠한 붉은 입술과 뭔가를 갈구하듯 벌린 입 등으로 상징된다. 이런 요소들은 그녀로 하여금 강렬한 섹스 어필을 가능하게 했다. 

 

동시에 그녀는 활짝 잘 웃는 따뜻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남성의 무릎베개에 자신의 머리를 맡겨올 것 같은 귀엽고 애교 넘치는 이미지도 강했다. 약간 허스키하고 나긋나긋한 저음의 목소리는 그녀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했고 가수로서 활동도 가능하게 했다. 흔히 테일러는 세기의 미녀로, 먼로는 세기의 연인으로 자주 일컬어지는 이유다. 

 

뭇 남성들의 사랑을 차지한 그녀였지만 인생은 매우 불우했다. 먼로는 192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정신장애가 있는 모친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태어날 당시 이름은 노마진 모텐슨이다. 아홉 살에 고아가 돼 양부모 집으로 입양되면서 노마진 베이커로 성이 바뀌었고 양아버지에게 반복적으로 성폭행을 당하는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는 현실 도피를 위해 불과 16세 되던 해인 1942년 짐 도허티란 청년과 결혼하지만 그의 입대 등으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가지 못했고 두 사람은 1946년 이혼했다. 그녀는 이혼 후 생활이 어려웠고 임대료와 자동차 할부를 지불하지 못하자 누드모델을 하기도 했다. 

 

이혼한 해 그녀는 미국의 메이저 영화사 20세기 폭스사의 카메라 테스트에 합격해 연예계에 데뷔하는데, 노마진 베이커란 이름도 지금의 마릴린 먼로로 개명했다. 예명의 유래도 흥미롭다. 먼로는 그녀의 친어머니 성이었고 마릴린은 1920년대 브로드웨이 연극무대의 미녀 배우였던 마릴린 밀러에서 따왔다고 한다. 

 

먼로는 자신의 이미지 변경을 위해 코와 턱의 성형을 택했다. 그녀의 원래 머리색깔은 붉은 색 기운이 도는 밤색이었는데 염색을 통해 탐스러운 금발로 바꾸었다. 다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그녀의 본래 얼굴도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성형 전 그녀의 사진들을 보면 대중에게 각인된 섹시한 이미지를 찾기 어렵다하더라도 매우 청순하고 귀여운 얼굴의 빼어난 미인이었다. 

 

단역을 전전하던 그녀는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만개했다. ​먼로는 1948년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 부사장 조니 하이드를 만나 1950년 ‘아스팔트 정글 (The Asphalt Jungle)’에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차츰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헨리 해서웨이 감독의 1953년작 ‘나이아가라(Niagara)’에서 악녀 로즈 역할을 맡아 대박을 터뜨리며 스타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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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아가라’에서 먼로는 육덕진 몸매로 허리와 엉덩이를 묘하게 흔들며 걷는, 이른바 ‘먼로 워크’를 선보여 뭇 남성들의 간장을 녹였다. 또한 같은 해 개봉한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Gentlemen Prefer Blondes)’에서 섹시한 외모에 노래까지 부르는 맹활약을 보이며 대박 행진을 이어갔다. 

 

이후 ‘돌아오지 않는 강(River Of No Return·1954​)’, ‘7년 만의 외출 (The Seven Year Itch·​1955)’​, ‘뜨거운 것이 좋아(Some Like It Hot·​​1959)’​ 등 출연하는 영화마다 공전의 히트를 치며 할리우드의 최고 인기 여배우로 등극했다. 

 

개인적으로 먼로의 작품 중에서 ‘돌아오지 않는 강’을 최고로 꼽는다. 이 영화에서 먼로는 섹시함을 넘어 청바지와 소박한 차림을 해도 감출 수 없는 빛나는 미모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압권은 그녀가 주제가 ‘River Of No Return’을 맛깔스럽게 부르고 남 주인공인 로버트 미첨이 그녀를 보쌈하는 마지막 장면이다. 

 

먼로는 금발의 백치미인이란 콘셉트로 성공했지만 실제로 독서를 매우 좋아하고 지적 수준이 상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러한 모습과 유사한 성격의 배역을 한번도 맡지 못했다. 대중은 그녀에게서 백치미를 원했기 때문이다. 

 

당대의 이지적인 미모의 배역은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레이스 켈리, 오드리 햅번 등의 몫이었다. 먼로는 대중이 원하는 바를 알게 되면서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특유의 표정과 행동으로 백치미 연기를 했다고 한다. 그녀에게는 영화 바깥의 생활에서도 ‘메소드’ 연기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먼로는 1954년 1월 조 디마지오와 결혼했다. 디마지오가 1914년생이고 먼로가 1926년생이니 우리식으로 따지면 두 사람은 띠동갑 부부였다. 두 사람 모두에게 재혼이었다. 디마지오는 1939년 여배우였던 도로시 아놀드와 결혼해 아들을 낳았지만 이혼했다, 은퇴 후 은둔 생활을 하다 먼로를 만났고 샌프란시스코 시청에서 화촉을 밝혔다. ​

 

디마지오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의 9남매 중 8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그는 선해 보이는 호남형 마스크와 당시 야구선수로서 매우 큰 188cm 키에 날씬한 체형을 소유해 선수 시절 실력 외에 외모로도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디마지오는 1936년 뉴욕 양키스에 입단한 후 선배인 베이브 루스와 루 게릭의 공백을 메운 팀의 간판이었다. 1943년부터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참전하면서 1951년 은퇴할 때까지 불과 13시즌만 뛰었지만 수위타자, 홈런왕, 타점왕을 각각 2회씩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선수 시절 양키스에게 무려 9번이나 월드시리즈 우승을 안겨줬다. 

 

야구사에서 무엇보다 디마지오 이름을 각인시켜 온 것은 56게임 연속안타 기록이다. 그는 1941년 5월 15일부터 시작해 7월 17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시합을 마지막으로 불멸의 기록을 달성했다. 세계 어느나라 프로야구 1군 리그에서 이 기록을 경신하는 선수는 물론 50게임 연속에 근접한 기록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 기록은 사이영의 511승, 놀란 라이언의 5714 탈삼진 등과 함께 앞으로도 경신이 어려운 불멸의 기록으로 꼽히고 있다. 

 

두 사람의 결혼 시점을 보면 불화 발생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시기였다. 먼로는 오랜 무명생활 끝에 탑스타 자리에 막 오른 시점이었고 디마지오는 은퇴한 전설이었을 뿐이었다. 

 

‘대부(The Godfather)’ 시리즈 등 이탈리아 사람들을 그린 영화들을 보면 아내이자 어머니는 남편과 자식에게 헌신하고 가족들의 사고 수습까지 하는 현모양처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탈리아의 피가 흐르고 보수적인 성격의 디마지오는 먼로에게 이러한 여성상을 원했다.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을 포함해 9남매를 돌보던 어머니의 모습을 먼로에게 투영했을 것이다. 

 

그러나 먼로는 자유분방했고 자신 앞에서 열광하는 대중을 보면 희열을 느끼는 여자였다. 이런 먼로의 모습을 디마지오는 이해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신혼 초기부터 부딪혔다. 그들은 결혼 후 3주간 일본에서 신혼여행을 보냈는데 디마지오는 일본 도시들을 순회하며 야구 지도를 하면서 먼로에게 현장에 오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야구 지도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히로시마에서 먼로는 남편의 당부를 어기고 지도 현장을 방문했다. 그녀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현장으로 팬들이 쇄도했다. 당연히 그날 디마지오의 야구지도 일정은 엉망이 됐다. 

 

신혼여행 중 디마지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사건은 또 있었다. 한 미군 장교가 부부를 찾아와 먼로에게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들을 위문해 달라고 요청하자 디마지오는 정중하게 신혼여행 중임을 밝히며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군 장교는 디마지오에게 “저는 부인께 물어본 겁니다”라고 말했다. 먼로는 “예스”라고 답한 뒤 디마지오를 일본에 홀로 놔두고 한국에 갔다.

 

영화 ‘7년만의 외출’ 중 유명한 환풍기 신.


두 사람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결정적인 계기는 ‘7년만의 외출’이었다고 한다. 영화 역사에서 전설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지하철 환풍기 바람에 먼로가 날리는 치마를 추스르다가 살짝 그녀의 속옷까지 노출되는 장면이 나오는 바로 그 영화다. 당시만 해도 이런 장면은 매우 파격적이었다. 아내를 따라 촬영장에 간 디마지오는 촬영 장면을 보고 매우 못마땅해 했고 먼로와 심하게 다투었다고 한다. 

 

벌어진 두 사람 사이의 간극은 디마지오에게 먼로를 상습 폭행하게 하는 계기가 됐고 심지어 폭행에 야구배트까지 동원되기도 했다. 먼로는 이 기간 선글라스를 쓰거나 짙은 화장으로 상처를 가리기 일쑤였다고 한다. 결국 먼로가 “당신에게 폭행을 당할 이유가 없다”며 이혼을 요구했고 디마지오가 매달렸으나 두 사람의 결혼은 10개월도 채 안된 274일 만에 파경을 맞았다.

 

당시만 해도 가정 폭력에 대한 개념도 없었고 가족이나 남녀 간 일은 당사자끼리 알아서 해결하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던 시기였다. 그렇다 해도 디마지오가 저지른 가정 폭력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운동선수 출신의 타고난 완력을 가진 그가 연약한 여자를 폭행했다는 사실은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디마지오를 순정남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혼 후 그가 보여준 먼로에 대한 진심어린 사랑 때문이다. 그가 사망할 때까지 수십 년간 먼로를 생각하며 보여준 행동들은 불순물을 찾을 수 없는 순정 그 자체였다. 디마지오는 성정이 악한 사람은 아니었고 이혼 후에도 먼로와 연락하며 친구로서 지냈다.

 

먼로는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으로 유명한 극작가 아서 밀러와 1956년 결혼했다. 먼로는 밀러가 매카시즘에 휘말리면서 불행한 결혼생활을 이어가다 1961년 이혼했다. 그리고 1962년 의문사할 때까지 존 F. 케네디 대통령, 로버트 케네디 법무부 장관 형제와 염문설에 휩싸이기도 했다. 

 

디마지오는 먼로가 사망하지만 않았다면 그토록 원했던 그녀와 재결합을 이룰 수 있었다. 재결합하자는 디마지오의 거듭된 제안에 먼로가 응했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디마지오의 진심을 알고 그를 사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재결합을 불과 사흘 앞두고 그녀는 자택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불과 36세. 아직 한창의 나이였다. 

 

당시 그녀의 사인은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인한 자살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드러난 여러 정황들로 미루어 최근엔 그녀가 타살을 당했다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그 당시 그녀는 자살할 이유가 없었다. 대표적으로 마피아나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개입해 그녀를 살해했다는 설이 끊이지 않으나 아직 증명된 것은 없다. 


먼로의 장례식을 주관한 것도 디마지오였다. 그는 장례식 내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짐 도허티, 아서 밀러, 케네디 형제는 장례식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디마지오는 먼로와 이혼 이후 결혼하지 않고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디마지오를 상징하는 말 중에 ‘장미’가 있다. 그는 먼로 사후 매주 세 번씩 그녀의 무덤을 찾아 장미를 바쳤다. 장미는 먼로가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꽃이었다. 그는 먼로의 묘에 가지 못할 때에는 남한테 부탁해서라도 정해진 날에 그녀의 무덤을 꽃으로 장식했다. 이런 행동은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수십 년간 지속됐다.  

 

 

 

디마지오는 1999년 85세의 나이에 폐암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제 먼로를 다시 볼 수 있겠군.” 디마지오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순정은 무슨. 디마지오는 가정 폭력 가해자일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을 보란 듯이 만나고 다니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 고인의 묘에 당신은 디마지오처럼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일주일에 세 번씩 찾아가 헌화할 수 있을까. 

 

우리는 평생을 두고 사랑한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나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깨닫고 내 마음에도 그(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알게 됐지만 현세에서 다시 사랑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디마지오와 먼로의 사랑이 그랬다. 

 

먼로의 미스터리한 죽음은 그녀의 마지막까지 비극적인 신화로 만들었다. 불우한 삶과 애정결핍, 자신을 아름다운 육체로만 보던 대중의 시선 때문인지 그녀는 자신을 알아주고 이해해주려던 사람들에게 매우 친절했다고 한다. 그녀가 삶의 마지막에 디마지오와의 재결합을 선택했던 것도 이런 연유로 보인다. 전성기 시절 ​먼로는 ​뭇 남성의 연인이었지만 진심으로 일관한 유일한 남자는 그녀를 평생 잊지 못한 디마지오밖에 없었다. 이런 면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한때 얼룩졌다하더라도 종말은 위대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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