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사건이 많아진 걸까, 한 건당 투입하는 시간이 길어진 걸까. 아니면 사회 전반적으로 워라밸을 추구하는 경향이 생긴 탓일까.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최근 민사 소송에서 재판에 소요되는 기간이 상당히 늘어났다. 필자가 변호사를 처음 시작한 2009년에는 ‘소송을 제기하면 최소 6개월이 소요된다’는 말이 있었다. 2022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민사사건 1심 본안사건의 소요일수는 평균 364.1일로 거의 1년이 걸린다고 한다.
민사사건에서 상대방이 다투지 않아 무변론 자백간주 판결을 선고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이런 사건까지 포함해 민사사건의 기간이 평균 1년이 소요된다는 것은, 다툼이 있는 사건의 재판은 수년이 걸린다는 말과 같다. 법원마다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2023년 10월 24일 기준 소를 제기한다면 최초 변론기일은 2024년 1~2월, 혹은 봄에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재판이 지연되거나 법원의 사건처리 기간이 늦어지는 것은 변호사에게 좋은 일이 아니다. 사건 접수 이후 판결 선고가 신속하게 이뤄져 빨리 회전해야 부담이 덜한데, 3~4년 전 사건이 지금까지 이어지니 수임 건수는 적어도 업무 부담은 가중되기 때문이다.
물론 변호사의 업무 부담이 늘어난다고 한들, 재판이 늦어질수록 고민이 가장 깊은 사람은 사건을 의뢰한 당사자일 것이다. 소송의 당사자가 회사라면 그나마 다행이나, 개인이라면 수년간 소송 수행을 지원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원고 입장에서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재판부 증원, 법원 규모 확대 등을 통한 해결은 예측 불가능한 일이고 당사자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현재의 제도 안에서 현실적인 대응 수단을 찾자면 유효적절한 가압류, 가처분 등 보전처분을 받음으로써 조기에 권리를 확보하거나 채무자의 재산처분을 막는 것이다.
가압류, 가처분 등의 결정을 내리면 청구가 인용되는 효과를 얻거나(단행적 가처분 등), 채무자가 재산을 처분할 수 없으므로(가압류 등), 재판이 장기화해도 원고 입장에선 급할 것이 없다. 그리고 피고 또는 채무자 입장에서 가압류, 가처분 결정은 존재만으로 상당한 압박이 돼 본안소송에서 화해·조정에 응해 조기에 사건을 종결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번 글에서는 보전소송 중 금전채권 청구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채무자의 재산을 보전하는 가압류에 대해서 살펴본다. 지금 살펴볼 내용, 즉 채무자의 재산을 어떻게 가압류 할 것인지는 기초적인 법률상식이다.
그리고 유효적절한 가압류 결정을 조기에 받기 위해서는 채무자의 재산상황, 영업형태와 같은 정보가 매우 중요하고, 재야에는 이러한 정보를 전문적으로 찾아내는 고수가 숨어 있기도 하다. 따라서 아래의 내용을 기초로 실제 가압류에 착수한다면 전문가와 반드시 상담을 받아야 한다.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가압류는 채무자의 부동산을 가압류하는 것이다. 부동산은 부동산등기부 등을 통해 존재와 권리관계를 확인하므로 서식에 따라 가압류 신청서를 작성하면 되고, 재산을 특정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또한 가압류 신청 시 항상 담보제공 방법이 문제가 되는데 부동산 가압류 시에는 공탁보증보험증권 제출로 현금공탁을 갈음하는 경우가 많아 담보제공의 부담도 덜하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자기 명의로 부동산을 보유하면서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개인이든 법인이든 간에 재산을 다른 곳으로 빼돌리고 사업을 해, 상대방이 부동산을 보유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설령 상대방이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선순위 근저당권이나 다른 가압류가 쌓여 있다면 새로 가압류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한편 옛날 영화나 소설을 보면 ‘집안 살림살이에 빨간 딱지가 붙었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채무자가 점유한 물건을 가압류하는 것으로서 ‘유체동산 가압류’라고 한다. 유체동산 가압류는 결정을 받더라도 집행관을 대동해 집행하는 불편함이 있다. 그리고 유체동산은 재산적 가치가 높지 않아 차후 본압류 및 경매를 하더라도 변제받을 수 있는 돈이 적다. 그럼에도 굳이 유체동산 가압류를 신청하는 이유는 변제보단 채무자에게 망신을 주고 심리적으로 강력하게 압박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처럼 부동산 가압류는 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고, 유체동산 가압류는 특별한 의도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실무상 가압류는 채무자의 채권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예를 들어 예금채권, 공사대금채권, 임금·퇴직금채권, 임대차보증금채권, 대여금채권, 물품대금채권, 보험금채권, 요양급여 비용청구채권, 배당금채권, 부가세환급반환채권, 신탁수익금채권, 카드매출채권, PG사에 대한 매출채권 등을 가압류하는 것이다.
채권은 부동산과 달리 등기부와 같은 공시수단이 없어 존재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 그리고 변호사가 법률 전문가라곤 해도 채무자가 채권을 어디에 깔아 놓고 있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래서 채권의 존재 및 규모에 관한 정보는 의뢰인이 직접 탐문해 발견하거나 숨은 고수의 도움을 받는데, 정보만 확실하다면 가압류 신청은 물론 채권까지 수월하게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채무자가 직장인인 경우 임금·퇴직금채권의 일부를 가압류하는 것이 강력한 압박수단이 된다. 직장인은 회사 인사팀, 재경팀의 눈치가 보여서라도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려 한다. 채무자가 하청업체인 경우 원청에 대한 공사대금채권을 가압류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청업체는 항상 원청의 눈치를 보므로, 어떻게든 가압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예금채권과 카드매출채권은 약간 복잡하다. 채무자가 예금을 예치한 금융기관이나 카드매출이 쌓인 카드사를 정확히 알고 있다면 해당 금융기관과 카드사를 제삼채무자로 한 가압류로 채무자에게 압박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가 없다면 바닷가에 그물을 던지듯이 4개 시중은행과 주요 카드사를 전부 제삼채무자로 지정해야 하는데, 이 경우 청구채권의 금액이 제삼채무자별로 분할돼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
결론적으로 채무자의 영업정보, 거래처 등을 많이 알수록 보다 적절한 가압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이러한 정보를 캐는 작업은 사람에 따라 상대방의 약점을 찾는 것 같아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실무를 하면서 채무자가 재판의 장기화를 이용해 재산을 빼돌리고, 의뢰인이 사전에 방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변호사를 원망하는 사례를 너무나 많이 봤다. 이에 감히 극언을 하자면, 앞서 말한 불편한 감정은 ‘송양지인(宋襄之仁·제 분수도 모르면서 남을 동정하는 어리석은 어짊을 일컬음)’과 다를 바 없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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