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서울시 역세권 활성화 사업이 문턱을 크게 낮춘다. 지하철역 반경 250m였던 ‘역세권’ 기준은 반경 350m로 넓어지고 그동안 제외됐던 구역도 사업을 시행할 수 있게 됐다. 도서관이나 보육시설, 공영주차장 같이 생활 사회간접자본(SOC) 시설 등이 부족한 곳에서는 공공임대주택 비율도 줄 것으로 보인다. 역 인근 개발에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해 역세권 기능 강화에 속도를 올리기 위한 조치로 풀이되는데, 고밀복합 개발에 탄력이 붙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역세권 넓어지고, 존치지구도 사업대상 포함
정비업계, 지자체 등에 따르면 서울시는 최근 자치구를 대상으로 역세권 활성화 사업 운영 기준 개정 사항을 안내하는 설명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 설명회에서는 8월 24일 서울시의회가 개정한 ‘서울특별시 역세권 활성화 사업 운영 및 지원에 관한 조례’의 내용이 자치구 소속 담당자에게 안내됐다. 지난달 29일 강북권 자치구를 대상으로 한 차례 설명회가 열렸고, 9월에는 한강 이남 자치구에서도 진행될 예정이다.
역세권 활성화 사업은 노후 시가지나 활용도가 떨어지는 역세권 등을 중심으로 복합 개발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주거와 상업 용도가 뒤섞인 부지를 하나로 묶어 대규모 개발을 하면 자동차 교통량을 늘리지 않으면서도 토지 이용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 도입됐다. 민간 사업자가 용도 지역을 변경해 고밀 개발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대신 공공기여를 받아 공공임대주택과 보건소, 체육시설 등 다양한 생활 서비스 시설을 확보하는 형태다.
현재 총 34곳에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2019년 스타트를 끊은 1호 사업지 지하철 7호선 공릉역 일대가 대표적인 사례다. 공릉역 일대는 종상향으로 약 600%의 용적률이 적용되며 연내 착공에 들어간다. 지하 6층, 지상 28층 건물에 공공주택(공공임대 42세대 포함 397세대)부터 공공업무·문화 기능이 복합된 주민센터, 방과 후 돌봄교육을 위한 키움 센터와 지역 내 부족한 체육시설 등이 들어선다.
개정된 조례를 살펴보면 진입장벽을 낮춘 점이 눈에 띈다. 우선 역세권의 범위와 경계를 조정했다.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역세권 범위가 최대 350m까지 확대되는 점이다. 지하철 노선이 2개 이상 지나는 환승역이나 도심·광역·중심지의 역은 기존 250m에서 100m 더 넓은 범위가 역세권으로 설정된다. 지하철역 주변지역 중에서도 거점 역할을 하는 곳은 폭넓게 역세권으로 인정하겠다는 취지다. 통상 초당 이동거리가 1.2m인 것을 고려하면 역에서 3~5분 거리의 지역에 해당한다. 역세권 청년주택이나 시프트(장기전세주택)와 기준을 비슷하게 맞춰 형평성을 높이는 차원이기도 하다. 비중심지에 위치한 단일노선 역은 원래대로 승강장 경계로부터 250m 이내의 가로구역에 적용된다.
역세권의 정의도 변했다. 간선도로변과 재정비촉진지구(뉴타운) 내 존치관리구역, 정비구역 해제지역도 사업대상지에 포함됐다.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하고 개발 잠재력이 높은 간선도로 인근도 사업 진행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존치관리구역은 뉴타운 안에서 노후도가 양호해 아직 개발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는 곳으로, 지정 이후 수년간 개발이 막혀 정체된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개정된 조례에서 역세권은 ‘역세권 등’으로 표현이 수정됐고, 정의에도 “간선도로변 등 대중교통 이용이 용이한 지역 중에서 시장이 별도로 정한 가로구역”이라는 뜻이 추가됐다.
#‘공공주택 30% 이상’ 의무사항 풀렸다
공공주택 의무 기준 역시 느슨해졌다. 역세권 활성화 사업은 용도지역 상향에 따라 늘어난 용적률 중 절반은 공공기여를 하는 구조다. 기존에는 이 중 30% 이상을 반드시 공공주택으로 마련해야 했는데, 이번 개정으로 공공주택 확보는 의무가 아닌 권장 사항이 됐다.
서울시는 개정된 운영기준에 “전체 공공기여량 중 공공임대주택은 30% 이상 설치를 권장하고, 한 가지 유형의 시설은 50%를 초과해 설치하지 않는 것을 권장한다”고 명시했다. 지역 여건에 따라 SOC 시설이 더 필요하면 공공주택 비율을 축소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에 따르면 앞으로는 공공임대주택 없이 공공시설만 갖춘 사업지도 나올 수 있다.
이승주 서경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는 “역 중심으로 일상생활이 이뤄지도록 만들겠다는 게 사업의 기본 취지이기 때문에 주택 공급보다는 생활에 필요한 시설을 갖추는 방향으로 보완됐다”며 “역세권 대형 주상복합의 미분양 문제 등을 고려하면 사업 리스크를 줄여주는 효과로 전보다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단 사업 추진 지역에서는 이러한 변화에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역세권 활성화사업을 추진 중인 강북의 한 구역 관계자는 “아직 변경 논의는 없었다”면서도 “공공 오피스를 추가로 확보하거나 기존에 구상하고 있던 어린이 시설 규모를 키우는 안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다만 공공기여 비중 조정에 명확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김진유 경기대학교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역세권 공공임대는 교통편의가 필요한 청년들의 주거 공간을 확보하는 취지가 있다. 임대주택 비율이 낮아져 사업성이 개선되면 주택 공급량 확대에 도움이 되지만 청년 주거 측면에서는 한계가 생긴다. 더블 역세권 등 업무 기능이 강조되는 곳인지, 주거지 역할이 중요한 곳인지 지역 특성에 따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아직까지 공공주택 비율을 줄일 수 있는 기준은 구체화되지 않았다. 이 같은 지적은 조례 개정 전 검토보고서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한 자치구 관계자는 “개발부지 주변에 공공 기여 시설이 충분히 있을 경우에 한해 적용되는 것으로 안다”며 “관할 구와도 협의를 하지만 최종 결정은 서울시가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4~5년간 제도를 운영하며 공공기여 비중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게 현실에 맞지 않다는 판단 하에 현장마다 탄력적으로 적용하려는 목적이다. 관할 자치구와 함께 논의해 지역 현안 여건에 맞는 시설을 확보하도록 할 것”이라고 전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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