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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지우기' 마무리 수순? 도시재생 상징 창신동 '봉제역사관' 폐관

서울시 "방문객 적고 연 7억 원 운영비 들어 비효율적"…일부 주민 반대 서명 나서

2023.02.21(Tue) 18:11:32

[비즈한국] “한국 근대화, 봉제 산업의 역사를 오롯이 느끼고 왔습니다. 도슨트 선생님들도 열정적이시고요. 폐관 소식이 진심으로 안타깝습니다. 기억하고 기록하고 보존해야 할 공간인데….”

 

서울 종로구 창신동 봉제 골목에 위치한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을 찾은 방문객들은 역사관이 폐관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역사관은 의류 봉제업의 역사와 가치를 소개하는 역사문화공간이다. 여성복, 남성복, 의류 부자재 등 빌라와 주택 칸별로 봉제공장이 쉬지 않고 돌아가는 1호선 동대문역 뒤쪽 길목에 자리 잡고 있다. 작은 규모지만 지하 1층~지상 4층 건물에 전시관과 봉제체험시설, 단추가게, 야외전망대 등으로 알차게 구성돼 있다. 창신동 일대의 가파른 경사 탓에 전망대에 오르면 동대문 패션 타운과 DDP 건물, 흥인지문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위)이 2월 28일 문을 닫는다. 갑작스러운 역사관 폐관 소식이 알려지면서 홈페이지에 예약 관련 안내문이 걸리기도 했다. 사진=강은경 기자, 봉제역사관 홈페이지


역사관 폐관 소식은 1월 26일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알려졌다. 역사관은 오는 2월 28일을 끝으로 운영이 종료된다. 봉제역사관 교육을 진행하는 ‘창신숭인 도시재생 협동조합(CRC)’의 한 관계자는 “서울시가 운영진에게 폐관을 통보했다”며 “공문 등으로 따로 알린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폐관과 관련한 사전 논의나 의견 수렴 절차가 있었냐는 질문에는 “문을 열 당시에는 주민들, 봉제업 종사자들과 함께 논의했는데 폐관 시에는 그런 과정이 없었다”고 답했다.

 

갑작스러운 폐관 통보의 흔적은 곳곳에 남았다. 4월까지 진행될 예정이었던 ‘창신양장점’은 마지막 전시가 됐다. 홈페이지나 공식 SNS에는 전시기간이 폐관일인 이달 말까지로 수정됐지만, 기존 일정이 새겨진 공식 포스터가 역사관 건물 곳곳에 붙어 있었다. 

 

소식이 알려지자 수도권 지역 커뮤니티에는 문 닫기 전 전시관과 체험관을 방문해보라는 게시글들이 올라왔다. 포털 예약 후기에는 “그 당시 미싱공으로 일했던 엄마, 이모들이 떠올랐고 그 장소가 이렇게 단정하게 기억되고 있어서 감동했다” 등의 호평과 함께 “2월 폐관소식이 안타깝다. 홍보가 덜 돼서인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보석 같은 곳”이라는 아쉬움도 묻어났다.

 

4월까지 진행될 예정이던 창신양장점 전시는 이 역사관의 마지막 전시가 됐다. 사진=이음피움 봉제역사관 제공


#재계약 갱신 미루다가 운영 종료…도시재생 연계 시설 대폭 축소될까

 

‘국내 최초 봉제역사관’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이곳이 ‘운영 5년’도 채우지 못하고 씁쓸한 결말을 맞이하는 것은 도시재생을 밀어내는 서울시의 기조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역사관은 동대문 패션타운의 배후 생산기지인 창신동의 봉제 산업을 보존하고 재생을 이끈다는 취지로 건립된 창신·숭인 도시재생 마중물사업 중 하나다. 국비와 시비를 합쳐 약 32억 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이 ‘박원순식 도시재생 사업’을 뒤로하고 개발과 정비 중심 도시재생을 띄운 후 이 역사관에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5월 초 역사관 위탁 계약 종료를 앞두고도 계약이 연장되지 않았고 담당 직원들의 거취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지 않았다. 앞의 CRC 관계자는 “운영 기한은 다 돼가면서 서울시가 계약을 갱신하지 않고 끝낼 수도 있겠다고 예상은 했다. 폐관 후 약 2개월 남은 계약 종료일까지 직원들에게 정산 업무 등 마무리 작업을 시킨다고 했다”고 전했다.

 

동대문역 북측 창신동 일대는 봉제산업의 거점으로, 빌라와 주택 곳곳에 봉제 공장이 늘어서 있고 좁은 골목 곳곳에 배송 오토바이가 오간다. 사진=강은경 기자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도시재생과 연관된 시설과 인력에 대해 재계약을 미루다가 결국에는 계약을 해지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축소하고 있다. 서울시도시재생지원센터는 2022년 말 업무가 종료됐고, 도시재생 광역센터와 현장센터 역시 줄줄이 문을 닫았다. 오 시장 취임 직전인 2020년 선정돼 비교적 신규 대상지에 해당하는 5단계 서울형 도시재생활성화 지역들의 경우 독산2동 센터의 폐지를 끝으로 현재 지원센터를 운영하는 지역은 한 곳도 없다. 도시재생의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기, 1호 사업지에 조성된 이 역사관에도 운영 중단 통보가 떨어지면서 올해 다른 도시재생 연계 시설에 대한 사업 축소도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선도지역서 물러나는 도시재생…‘개발’ 대 ‘도시재생’ 구도 속 주민 혼란 가중 

 

서울시는 목표치 대비 미흡한 방문객 수와 서울시 평가 등을 종합한 판단이라고 폐관 결정의 배경을 밝혔다. 서울시 경제정책실 관계자는 “민간 위탁 평가, 재정 평가 등에서 점수가 미달해 센터의 민간 위탁을 종료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며 “관람객 ‘연 10만 명’이 초기 목표였지만 실제론 만 명도 되지 않는 사정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역사관 운영에는 매해 7억 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지난해 용역 등 시설 운영 비용은 총 6억 5000만 원가량으로, 계속 운영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결론 내렸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역사관 측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서울시 방침에 따라 방역을 위해 시간당 방문객을 5명으로 제한했는데 이런 결정이 나와 매우 아쉽다”며 주민 주도의 폐관 반대 온라인 서명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도시재생 사업 후 계단길(아래) 등이 정비됐지만 주민들이 체감하는 변화는 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강은경 기자


도시재생 사업의 흔적을 하나둘씩 지워가는 서울시를 지켜보는 주민들의 시선은 엇갈렸다. 남산성곽길 언덕에서 만난 주민 A 씨는 “도시재생 사업으로 편의가 크게 개선된 건 없다. 체감하는 건 계단길이 정비됐다는 점 정도”라고 말했다. 반면 지난주에 자녀들과 체험관을 방문했다고 밝힌 주민 B 씨는 “몇 년 전 방문했는데 곧 폐관한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방문했다. 프로그램 내용도 좋고 시설도 새 것인데, 정책이 바뀌었으니 문을 닫겠다는 결정은 아쉬움이 남는다. 폐관 반대 ​온라인 ​서명에도 참여했다”고 밝혔다.

 

재생과 개발 사이에서 대안을 찾기보다 도시재생 지우기에 나서는 서울시 행보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주민 C 씨는 “창신동은 서울시장이 바뀔 때마다 뉴타운에서 뉴타운 구역 지정 해제로, 도시재생에서 개발로, 매번 진통을 겪고 있다. 도시재생이 동네에 엄청난 변화를 이끌지는 못했지만 봉제공장들이 늘어선 지역의 특수성도 고려해야 한다. 도시재생이 부족했다면 기존 제도를 보완하는 방법도 있을 텐데 또 다시 개발하겠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동네 분위기도 뒤숭숭하고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우려했다.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선정돼 1호 사업지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던 창신동 일대 9구역과 10구역은 지난해 말 서울시 신통기획 재개발 2차 후보지역으로 추가 선정됐다. 창신9구역은 약 35%, 창신10구역은 약 42%의 동의율을 확보한 상태다. 공모 요건(30%)은 넘겼지만 사업 진행에 필요한 주민 동의율(66.7%)에는 모자라 진통이 예상된다.   

 

채석장 전망대(사진) 등 재계약이 미뤄지는 시설이 있어 도시재생 시설 축소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창신숭인 도시재생 협동조합 제공

 

창신동에도 개발 기조가 확대되면서 앞으로 시설 축소는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운영기간이 내년 8월까지인 회오리마당, 수수헌 등은 올해에도 운영이 계속될 전망이지만, 이미 공식적인 운영 기한이 종료된 채석장 전망대의 경우 종로구청에서 운영자를 다시 뽑겠다는 명분으로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서울시 경제정책실 관계자는 “민간 계약을 종료할 때 사전에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의무 사항은 아니다. 아쉬워하는 주민들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서울시가 운영하는 사업 전반을 고려하면 더 나은 활용법이 있다는 판단”이라며 “역사관 건물은 인근에서 운영 중인 서울시패션제조지원센터 앵커시설의 이전 부지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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