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퇴근을 한 시간쯤 앞둔 시간 지하철 4호선이 삼각지역을 무정차 통과한다는 안내 문자가 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이동권 보장 시위의 여파이다. 지하철 통근족은 아니라 그들의 시위에 큰 영향을 받지는 않지만, 출퇴근길 무작위로 벌어지는 전장연 시위로 4, 5호선을 주로 이용하는 팀원 한 명은 아침 출근 시간에 조금 늦겠다는 문자를 종종 보내온다.
지하철 운행지연으로 시민들이 입은 피해를 시간당 노동생산성 가치로 따져보면 사회적 손실비용이 수천억 원이라는 언론보도를 보았다. 하지만 팀원 1명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늦는다고 회사에 엄청난 일이 벌어지지도 막대한 손해가 생기지도 않는다. 정말 중요한 회의나 보고가 예정된 경우에는 다른 팀원의 도움을 받아 업무를 먼저 처리한다. 그러라고 팀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용자 관점에서만 보면 부수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노동이 전가되고, 그 시간만큼의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평소보다 늦게 모습을 나타낸 팀원에 대해 그 누구도 지각을 탓하거나 거슬려하지도, 눈살을 찌푸리지도 않는다. 어떤 분이 얘기하는 것 처럼 평화를 깨뜨렸다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1년 중 며칠쯤 조금 늦을 수도, 조금 불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원치 않아도 비자발적으로 수십 년의 세월을 불편해 왔을 테니 그 정도는 감수할 만하다. 적어도 정기적으로 장애인 특별채용을 진행하고, 장애인 의무 고용률을 관리하는 우리 팀원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장애인 특별채용을 할 때는 지원자에게 면접장까지 어떻게 왔는지, 어떤 교통수단을 사용해서 왔는지, 누구의 도움을 받았는지, 혼자서 왔는지, 집에서부터 회사까지 얼마나 걸렸는지를 반드시 묻는다. 안전하게, 그리고 정시에 출근하는 것부터가 근로의 시작인데 비장애인에게는 아주 당연한 출퇴근길이 그들에게는 엄청난 도전이고 고행길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예상 소요 시간보다 최소 1시간 정도의 여유를 두고 움직인다고 답한다. 계단이 아닌 엘리베이터는 먼 곳에 있기 마련이고, 휠체어 리프트를 사용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저상버스도 매번 오는 게 아니다. 그래서 이들은 채용이 확정되면 정식 출근을 하기 전에 일주일 정도 출퇴근 연습을 하기도 한다.
요즘은 장애인고용공단이나 여러 복지시설에서 다양한 분야의 직업재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아예 기업과 협업하여 직무발굴 컨설팅을 실시하기도 한다. 젊은 세대 중에는 높은 학력과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도 많아 생각보다 괜찮은 인적자원들도 꽤 된다. 그런데도 장애인 채용이 정말 어려운 이유는 그들에게 적합한 직무를 세부적으로 발굴하는 것이 어려워서라기보다는, 기존 구성원들의 부정적인 인식이나 반발 때문이다. 열심히 연습까지 해가며 남들의 두 배의 노력과 시간을 들여 힘들게 출근했는데 회사의 그 누구도 자신을 반기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라. 장애인 직원을 채용하고 부서 배치하는 과정에서 인사팀 직원들은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과 평소 겪었을 괴로움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 된다.
평소 고양이 손이라도 좋으니 제발 인력 좀 보충해 달라며 마주칠 때마다 애걸하던 팀장들도 왜 하필 우리 팀이냐며 손사래를 친다. 어떤 사람인지 어떤 능력을 갖췄는지는 묻지도 않고, 그저 장애인이라는 낯선 단어가 주는 심적 부담감 때문에 심한 경우 부적절한 말을 하거나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이들의 반발심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완벽한 스펙과 배경의 신입사원이 부서 분위기를 망치는 끔찍한 고문관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장애를 가진 직원이라고 해서 끝도 없이 도움의 손길 만을 필요로 하는 부적응자라는 법도 없다. 그래서 장애인 직원을 배치할 때는 그의 과거 경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하되, 여러 차례 면담을 진행하면서 적합한 직무와 부서를 찾는 데 많은 공을 들이는 편이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국내 등록 장애인은 전체 인구의 5% 남짓. 20명 중 1명에 달하는 비율이다. 하지만 일상생활 중에, 특히 직장 내에서 장애를 가진 이들을 마주치는 경험은 생각보다 드물다. 전체 장애인의 90% 이상이 집에 머물며 살아가는 재가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 직장에, 사회 곳곳의 일터에 휠체어를 포함해 다양한 형태의 보조장치 도움을 받으며 일하는 동료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한다.
그들의 이동권 보장 시위나 다양한 형태의 사회활동을 단순히 시간가치나 돈으로만 환산하여 ‘경제손실’, ‘민폐행위’ 라는 단어로 덧씌우지 않았으면 한다. 함께 일하면서 겪는 소소한 불편함이나 느린 속도는 그들이 그동안 겪어온 불편함의 아주 작은 일부분을 나눠 갖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조금 기다려 줄 수 있는 여유를 갖길 바란다. 장애라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월요일 출근길의 고난함도 금요일 퇴근길의 즐거움도 누구나 당연히 누릴 수 있는 일상이 되었으면 한다.
필자 김진은? 정규직, 비정규직, 파견직을 합쳐 3000명에 달하는 기업의 인사팀장을 맡고 있다. 6년간 각종 인사 실무를 수행하면서 얻은 깨달음과 비법을 ‘알아두면 쓸데있는 인사 잡학사전’을 통해 직장인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김진 HR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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