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롯데헬스케어가 스타트업 알고케어의 제품 아이디어를 도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논란의 신제품은 롯데가 미국 CES 2023에서 처음 공개한 영양제 분배기 ‘필키(Fillkey)’다. 알고케어는 롯데가 1년여 전 미팅 자리에서 획득한 자사 헬스케어 플랫폼 ‘나스(NaaS)’의 사업 정보를 토대로 신제품 필키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롯데는 알고케어와의 만남 이전부터 개인 맞춤형 헬스케어 사업 추진 방안을 수립했다고 반박했지만, 임원 녹취록 등에서 이와 상반되는 발언이 확인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알고케어 측이 법적 대응을 예고한 가운데 중소벤처기업부는 롯데의 기술침해 여부를 따지기 위해 양 사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앞으로 두 기업이 제품 간 유사성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롯데의 ‘카피캣’ 논란이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지난 5~8일(현지시각)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에 마련된 롯데헬스케어와 스타트업 알고케어 각 사 부스에는 신제품 영양제 분배기가 각각 공개됐다. 롯데헬스케어의 필키와 알고케어의 나스다. 필키는 롯데헬스케어가 오는 4월 오픈베타 서비스 출시 8월 정식 론칭을 계획하고 있는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플랫폼 ‘캐즐(CAZZLE)’의 영양제 디스펜서다. 필키와 나스 모두 밀봉된 영양제 카트리지를 기기에 넣으면 개인에 맞게 자동으로 영양제가 배합돼 나오는 방식이다. 각진 형태(필키)-원형(나스), 태블릿 부착 여부 등의 외관상 차이가 있지만 ‘카트리지’형 알약 분배기라는 기본 원리는 유사하다. 카트리지는 프린터에 끼우는 잉크 용기나 카메라에 넣는 필름처럼, 비타민 등 영양제를 나눠서 담은 장치를 가리킨다.
당시 캐즐은 롯데의 건강관리 서비스의 종합 플랫폼이 될 것이라는 호평을 얻었다. 건강-의료-유통 등 그룹 사업을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이끌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다. 하지만 CES가 끝난 직후 롯데는 역풍을 맞고 있다. 알고케어가 핵심 아이디어 탈취 의혹을 꺼내들면서다. 양 사는 2021년 롯데의 선제안으로 투자 및 사업 협력을 논의했다. 알고케어는 사업 모델의 기술력을 인정받아 3년 연속 CES에서 혁신상을 받은 바 있다. CES 현장에서 캐즐의 실제 모습과 작동원리 등을 처음 확인한 알고케어는 롯데가 비즈니스 모델을 도용했다는 공식 입장문을 내놨다.
#“똑같이 만들 생각 없다”던 롯데, 스타트업 제품으로 사업 규제 문의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는 “롯데헬스케어가 투자를 제안한 뒤 사업 정보를 요구하다가, 자체 제품을 제작하겠다고 말을 바꾸고 아이디어를 탈취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 대표에 따르면 2021년 9월, 알고케어가 개발 중이던 영양제 분배기 ‘뉴트리션 엔진’과 관련해 투자와 제품 기용을 제안한 롯데헬스케어는 몇 차례의 미팅을 통해 사업 전략 정보를 확보했다. 투자 논의 과정에서 롯데헬스케어가 알고케어에 요구한 사업 정보는 △나스의 작동원리 및 구조 △카트리지 등 고유 구성품목의 구조 △관련 의료법, 건강기능식품법 등 규제 검토 내용 △영양제 생산방식과 생산처, 유통기한 등 △특허 등 지식재산권 △카피캣 방어 전략 등이다. 당시 사업을 담당하던 롯데지주 상무가 메일을 보내 “이번에는 허락하시면 방문해 시제품을 구경해 봐도 좋겠다”고 의사를 표했고 9월 29일 실제로 롯데 측은 시제품을 확인했다. 3시간 이상의 미팅이 세 차례 진행됐지만 알고케어가 브랜드명 유지를 고수하면서 최종적으로 협력 논의는 무산됐다.
하지만 논의 종료 이틀 뒤인 10월 27일, 알고케어는 롯데헬스케어가 국민신문고에 해당 사업 모델이 규제에 위반하지 않는지 등을 문의한 사실을 인지했다. 이때 롯데 측은 알고케어 제품 사진도 함께 게시했다. 이전부터 알고케어와 관련 규제 문제를 논의하고 있던 대한상공회의소와 식약처 등 관계기관이 동일한 제품 사진을 보고 알고케어 직원의 문의로 오인해 직접 연락한 것이다.
정 대표는 당시 롯데 측이 카피캣 제품을 만들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정 대표가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롯데지주 상무는 “카트리지 형태로 해서 알고케어의 경험을 깨거나 이러지는 않을 것”이라며 구상 중인 제품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롯데헬스케어 관계자는 비즈한국에 “협력 논의 당시 알고케어 브랜드명도 가능하고 코브랜드(Co-brand)도 가능하다고 말했다”며 “식약처 질의는 ‘리필방식’에 대한 규제 여부를 묻는 것이었다. 현 시점에서는 규제가 없으나 향후 규제가 생길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아 위생적으로 분배, 관리할 수 있도록 개별 포장 형태를 도입한 것”이라고 밝혔다.
#롯데 “해외에선 정수기처럼 흔하다” 반박
롯데헬스케어는 알고케어가 핵심 기술 도용 의혹을 공식적으로 띄운 직후 입장문을 내놓으며 반박에 나섰다. 해외에서 ‘필 디스펜서(알약 분배기)’를 활용해 영양제를 섭취하는 모델은 ‘정수기’처럼 일반적인 개념이며 시중 약국에서 사용하는 ‘전자동 정제분류 및 포장시스템 기계’를 참고해 기기와 카트리지를 제작했다는 게 핵심이다.
카트리지에 ‘메모리 반도체 칩’을 넣는 알고케어와 달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RFLD 스티커’를 사용한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알고케어의 칩에는 영양제의 양이나 원산지, 교체시기 알람, 자동 배송, 냉장 제습, 밀봉 기능 등이 담겨 있는 반면 롯데는 유통기한과 제품 성분 등만 간략히 넣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알고케어는 △기기의 기능 및 구조 △영양제 분배기 관련 현행 규제와 규제 우회 방안 △영양제 보관 및 공급 방법 등 세 가지 핵심 영업비밀의 도용이 사태의 쟁점이라며 재반박했다. 정 대표는 “‘카트리지형 영양제에 영양제의 정보를 자동으로 식별하기 위한 목적으로 저장매체를 사용했다는 점’ 자체가 고유한 아이디어”라며 “저장매체가 메모리칩인지 RFID칩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롯데헬스케어 관계자는 “사업성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롯데의 자본을 넣어 함께 제작해보자고 제안했던 것이고 이후 의견 조율이 되지 않아 사업 협력 논의가 종료됐다”고 말했다. 롯데헬스케어가 핵심 사업 정보를 요구했다는 알고케어 측의 주장과 관련해서는 “도면, 카트리지 작동 원리 같은 정보를 문서 등으로 전달 받은 부분이 없다. 투자를 진행하기 위해 사업상 검토해야 하는 내용을 단순한 질문으로 확인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양 사의 주장이 첨예하게 갈리면서 논란의 쟁점은 롯데헬스케어가 알고케어의 아이디어와 영업비밀을 침해했는지를 입증하는 문제로 좁혀진다. 영업 비밀은 공개되지 않은 독립적·경제적 가치를 지닌 기술·영업상의 아이디어를 뜻하는데, 부정한 방법으로 영업비밀을 취득하거나 사용하면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에 위반된다. 알고케어는 지금까지 특허 4건을 출원했고, 이번 사안과 연관성이 깊은 특허 수십 건이 출원 중이다.
롯데헬스케어는 제품과 관련한 권리범위를 명확히 하기 위해 특허심판원에 소극적 권리범위 확인심판을 청구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이 절차가 공방의 첫 지표가 될 수 있지만 결국에는 법원에서 최종 판단을 받아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차호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이 지켜지는 상황에서 롯데에만 알려진 정보라면 영업 비밀에 해당해 특허법 상 ‘모인’에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첫 번째 쟁점은 이 기술이 제3자에게 공개된 기술인지 영업 비밀 여부를 살피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관계에 의해 취득한 정보를 악용했을 경우 변형을 했더라도 문제가 된다”며 “대기업의 기술이 중소기업 기술과 비교해서 어느 정도 변형·개량한 것인지 여부가 두 번째 쟁점”이라고 말했다.
중소벤처기업부도 사건을 인지한 후 행정조사 전담 공무원과 대중소기업협력재단 소속 변호사를 파견해 피해 상황을 파악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다. 다만 중기부의 중재 과정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 민사 소송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조정불성립 시 소송비용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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