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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마 바뀐 제주 경마, 진짜 원인은 말이 아니라 '사람'

마필관리사 '처우 개선' 요구하며 파업중, 조교사가 관리하다 '사고'…노조 "마사회 나서야" 마사회 "처우개선 힘쓸 것"

2022.07.01(Fri) 12:05:06

[비즈한국]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경마장이 정상화에 돌입한 가운데 제주 경기에 출전한 경주마가 뒤바뀌는 사고가 일어났다. 두 경주마는 성별과 생김새 등이 달랐지만 경기 전 두 차례의 검사에서 경마장 측은 오류를 인지하지 못했다. 확인 민원이 제기된 후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한국마사회는 이번 사태로 시합 운영 신뢰도에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사고 발생의 주요 배경으로는 검사 시스템의 허점 외에도 마필관리사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관련 일손이 부족했던 점이 꼽힌다. 마사회는 “향후 유사한 사례가 재발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지만 최근 제주 마필관리사들은 해고 위기에 놓인 상황이다. 이에 공정한 경기 시행과 말 산업 육성을 명목으로 도박의 합법성을 예외적으로 인정받는 마사회가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의문의 목소리가 나온다.

 

6월 10일 제주 경마장 제2경주 경기 장면. 2번 마 자리에 출전 예정이던 가왕신화 대신 아라장군이 출전했다. 사진=한국마사회 경마방송 캡처


#4세 암말 경기에 7세 수말 출전

 

6월 10일 렛츠런파크 제주 경마장 제2경주에서 2번 마 자리에 7세 거세말 ‘아라장군’이 출전했다. 원래대로라면 4세 암말 ‘가왕신화’가 뛰어야 했지만 출전을 앞두고 개체가 뒤바뀐 것. 아라장군은 경기 초반 1위를 따라붙으며 순위 다툼을 벌이기도 했지만 7위로 경기를 마감했다.

 

마사회가 출전 오류를 알아차린 것은 이튿날인 11일이었다. 한 고객이 암말 경기에 수말로 보이는 경주마가 있었다며 민원을 제기하자 사실을 파악한 마사회는 비상대책위원회를 열어 환불 절차 등을 결정했다.

 

당시 2경주 판매금액은 12억 1700만 원. 이 중 2번 마필에 대한 마권 판매액은 3억 1379만 원으로 이 경기에 걸린 마권의 25%에 달한다. 가왕신화는 올해 데뷔한 젊은 말로 8번의 경기에서 2번 우승해 인기를 얻었다. 반면 아라장군은 전성기가 지난 연령으로 최근 10경기에서 4차례 최하위에 머물렀다.

 

마사회는 가왕신화의 마권을 구매한 고객들에게 총 3억 원 규모의 환불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오출전 사고가 경기 판도와 베팅 결과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판단에 대한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가왕신화에 베팅한 고객에게만 돈을 돌려주겠다는 논리는 경기 운영의 공정성 측면에서 불합리하다는 주장이다. 경마 베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돈을 거는 말 외에도 모든 출전마의 능력을 비교해서 최종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 마사회의 오류가 사실상 ‘경주 불성립’ 요건에 해당한다는 것.

 

마사회 측이 한국마사회법의 ‘발매된 마권에 표시된 번호의 말이 출전하지 않은 경우에는 그 말에 대한 투표는 무효로 한다’는 조항에 근거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알려지며 이 조항에 대한 유권 해석이 필요하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렸다.

 

이에 대해 마사회 측은 “환불 근거와 관련해 다수 언론매체에서 한국마사회법 제10조 제3항을 근거로 언급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며, 한국마사회법과 경마시행규정에 따른 비상대책위원회에서 해당 경주마의 마권을 구매한 고객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결정한 사항”이라고 밝혔다. 또 “이번 경주는 한국마사회법 및 경마시행규정에서 정한 ‘경주 불성립’ 사유에는 해당되지 않으므로 해당 경주마의 마권을 구매한 고객에 한해 환불을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 경마 100년 동안 말이 경기에 잘못 출전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한국마사회 제공


#한국 경마 100년 초유의 사태​…​“마필관리사 일손 부족 탓”

 

나이와 생김새, 성별까지 다른 두 말이 스타트 라인에 설 때까지 오류를 알아차리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출전 말들은 경기 전 암수 구분, 모색 확인, 식별 칩 인식 등 두 차례의 검사를 거친다. 이 경기도 검사가 진행됐지만, 조교사의 실수와 마필 개체 식별을 담당하는 마사회 측 확인 소홀이 겹쳤다. 

 

두 말은 같은 조교사 소속이다. 조교사는 마주와 마필위탁 관리계약을 맺고 있는 사람으로 일반 운동경기의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마사회 관계자는 “식별 칩 검사를 진행했으나 정확히 인식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며 “오출전의 정확한 원인을 찾기 위해 자체 내부 감사를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검사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배경에는 마필관리 인력 부족이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한 마필관리사는 “말과 가장 가까이에서 일하는 관리사들이 있었으면 이런 사고는 안 났을 것”이라며 “마필관리사는 매일 밥 주고 닦아주고 훈련시키면서 자신이 관리하는 말의 특징을 숙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제주경마공원의 마필관리사 노동조합은 한 달 넘게 파업 중인데 이로 인해 기수와 조교사가 관리사의 업무까지 대행하는 탓에 과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마필관리사의 고용불안과 과로, 낮은 임금을 비롯한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설립한 제주경마장조교사협회는 7월 14일 해산을 앞두고 있다. 협회는 관리사와 기수가 잇따라 목숨을 끊은 후 2017년 정부와 마사회, 노동계가 함께 체결한 말 관리사 고용구조 개선 협약을 통해 일궈낸 사회적 합의의 결과물이다. 사고 당일에도 마방-장안소로 말을 이동시키는 업무 등 기존에는 관리사가 하던 일을 담당 조교사 한 명이 제1경기부터 도맡은 것으로 전해진다.

 

2017년 두 마필관리사의 사망으로 마필관리사의 처우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후 사회적 합의 끝에 마필관리사를 집단고용해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조교사협회가 설립됐다. 당시 국회에서 유가족들이 마사회 경영진의 처벌을 촉구하는 모습. 사진=박은숙 기자


마사회는 관리사의 다단계식 고용구조 개선과 관련해 뒷짐을 지고 있다. 마필관리사 고용구조는 겉으로는 마주를 중심으로 짜여있다. 마주가 조교사에게 경주마를 위탁하면 조교사는 기수와는 기승계약을, 마필관리사와는 고용계약을 체결한다. 하지만 마주와 조교사에게 지급되는 상금이 마사회 결정에 매여 있는 까닭에 사실상 마사회에 종속된 형태다. 마필관리사가 기본급 개념으로 받는 말 관리비는 최저임금에도 못 미친다.

 

한국마사회법은 마사회의 사행산업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이유를 말 산업 육성과 관련 기금조성 목적이라고 밝힌다. 강원도 폐광 지역을 살리기 위해 강원랜드 카지노를 합법으로 인정하는 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말 관련 일자리와 고용 구조에 대한 사회적 책임에는 선을 긋는 행보를 보이는 마사회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김석수 전국경마장 마필관리사 노조 제주지부장은 “마사회가 원청이나 다름없는데도 조교사협회와의 임금체불 등 갈등에서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지속해왔다. 사회적 합의에 위배되는 협회 해산도 사실상 주도권을 쥔 마사회가 중재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유사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처우 문제가 개선되고 경기 진행, 마필 관리 인력이 안정적으로 구축돼야 한다. 직고용이 어렵다면 협회를 통해 지급되는 관리사 임금의 투명성이라도 관리해주길 요구한다”고 말했다.

  

마사회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오출전 사고에 노조 파업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며 “마필관리사는 마사회 관할 직원이 아니다. 앞으로 처우 개선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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