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전국 최초로 재개발과 도시재생을 동시 추진하던 백사마을. 주거지 보전 사업을 확정하기 전 비용을 검증받아야 한다는 서울시 판단에 잡음이 이는 배경에는 지난해 초 사업시행 인가를 무리 없이 통과했다는 것 외에도 몇 가지 이유가 있다(관련기사 [백사마을 재개발①] '달동네 가치' 고수하다가 관리처분 직전 계산기 꺼내든 서울시).
#전면 재개발→리모델링→마을 만들기→다시 재개발에 이르기까지
백사마을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을의 재개발 사업 역사를 들춰봐야 한다.
노원구 불암산과 맞닿은 백사마을은 ‘개발제한구역 내 집단취락지’였다. 1967년 도심 개발로 청계천·창신동·영등포 등 판자촌에서 강제철거 당한 주민들이 이주하면서 형성됐기 때문이다. 2008년 당시 백사마을은 건립 세대 수의 절반을 임대주택으로 건설하는 조건으로 구역의 80%가 그린벨트에서 해제됐다. 주민 A 씨는 “그때 백사마을 재개발의 운명이 정해졌다”고 말했다. 현행 공공주택특별법 시행령에는 전체 주택 호수의 35% 이상을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하도록 돼 있다. 임대주택 50%로 인해 낮은 사업성이 예견된 셈이다.
백사마을은 2009년 분양 아파트 1461세대와 임대아파트 1297세대를 건설하는 정비계획을 수립하고 구역지정까지 마쳤지만 오세훈 서울시와 박원순 서울시를 거치며 사업의 방향이 변경됐다.
오세훈 시장이 재임하던 2011년 하반기, 전면 재개발 대신 ‘리모델링’안을 꺼내든 서울시 요청에 따라 사업이 보류된 데 이어, 2012년 박원순 시장 취임 뒤 서울시는 새로운 정비계획을 내놨다. ‘뉴타운·정비사업 신정책 구상’ 발표 이후 철거 위주 재개발을 마을 만들기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것. 구체적으로는 서울시가 임대주택 부지를 매입해 사업을 직접 시행하겠다는 그림이었다. ‘건설형 임대’ 형태다. 백사마을 사업은 그 첫 사례로 주목을 받았다.
황진숙 중계본동 주택재개발 사업 주민대표회의 위원장은 “당시 서울시가 불이익이 없게 하겠다며 그 안을 받아들일 것을 회유했다. 재개발 사업은 시간 싸움 아닌가. 사업도 빨리 진행시키겠다는 말에 주민들이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년간 임대주택계획은 수립되지 못했다. 그러다 2017년 사업 추진계획이 번복됐다.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상 서울시가 사업시행자가 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서울시의 초기 계획은 ‘기존 주택을 신축 및 리모델링해 17% 임대주택을 확보하고 별도 세부계획은 서울시가 수립·시행한다’는 내용이었다. 표준 건축비 기준으로 매입하면 주민부담이 가중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서울시가 직접 건설형으로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표준건축비란 재개발·재건축 시 공공이 기여한 임대주택을 되팔 때 기준이 되는 금액이다. 서울시는 임대주택 세부계획을 정비계획에 반영해야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며 그해 12월 방침을 변경했다.
2018년 1월 서울시 도시재생본부 주거재생과의 ‘주거지 보전 사업 변경 추진계획에 대한 시장방침 및 법률자문 결과에 대한 후속 조치사항 안내’ 문서를 보면, 시 주관의 건설형 임대 방식에서 사업시행자 주관의 매입형 임대로 사업시행방식을 변경하는 사유는 “도정법상 서울시는 정비사업의 ‘사업시행자’가 될 수 없음”이라고 명시돼 있다. 지자체가 조합으로부터 부지를 사서 직접 시행자의 역할을 한다는 계획이 법적으로 불가하다는 사실을 정책 구상 발표 5년 만에 인지하고 시정한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는 “사업시행자가 될 수 없다는 도정법 조항만을 이유로 변경한 것은 아니다. 종합적인 판단에 의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임대주택 사업에 타당성 조사 이례적
백사마을 재개발 사업은 2019년 주거지 보전 사업지 내 임대주택계획을 반영하는 정비계획 변경이 적용된 형태로 최종 결론이 났다. 지난해 사업시행 인가를 받았고 시공사도 GS건설로 선정했다. 관리처분계획만 남은 착공 막바지 단계였다.
일각에서는 백사마을 주거지 보전 사업에 대한 서울시의 의지가 꺾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겉으로는 공사비 부담을 내세우지만 사업을 끝까지 끌고 갈 동력을 잃은 것이 본질이라는 것. 총 사업비 500억 원 이상, 국가의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인 사업에 대해 진행하는 타당성 조사가 공공임대주택에 적용되는 상황은 이례적인데, 서울시가 관계 기관에 투자심사 대상인지를 재확인하면서까지 밀어부쳤다는 말이 나온다. SH서울주택도시공사도 임대주택 사업이 타당성 조사를 거치는 것이 통상적인 절차는 아니라고 밝혔다.
서울시가 그동안 강조해온 마을의 주거 환경, 공동체적 특성, 고유문화 등의 ‘가치’보다 정치적 요소를 고려한 결과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타당성 조사 결과 투자심사는 당연히 받게 될 것이라거나, 설계에 참여한 건축가의 연락을 받지 않겠다는 관계자 언급까지 나왔다. 오세훈 시장이 물꼬를 텄어도 박원순 시장이 구체화한 정책이니 사업 진행에 강한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대표회의는 사업 지연으로 비용 손실 등 주민 피해가 불가피하다며 소송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정확한 설계가격이 나오고 나서야 타당성 조사를 할 수 있었다”며 “타당성 조사가 임대주택 개발 시 통상적으로 거치는 절차는 아니지만, 백사마을 사례가 재개발 사업에 주거지 보전 사업을 결합한 특수한 사안이기 때문에 ‘500억 사업비’라는 타당성 조사의 규정에 따라 검토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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