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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비법] 민사 소송 당사자들이 재판을 질질 끄는 방법

소장 송달, 답변서 제출 회피, 증인 신청 등 갖은 방법 동원…재판서 불리하게 작용할수도

2020.07.27(Mon) 10:39:33

[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새로 시작하는 ‘아두면 모 있는 즈니스 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소송 중 당사자들 간에 ‘의도적으로 재판 지연을 일삼고 있다’는 공방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공방의 대부분은 재판 지연 여부와 관계없이 상대방의 주장과 입증을 견제하기 위한 공격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당사자가 어떠한 이익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재판을 지연시키는 경우도 가끔 있다. 재판을 지연시키는 이유는 뭘까? 

 

소송을 제기하는 원고의 입장에서 보자. 원고가 유효·적절한 가압류·가처분 방법을 찾아냈고 그 신청이 법원에서 인용됐다면, 원고는 가처분 결정만으로도 본안의 소로 의도하고자 하는 바를 실현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어느 게임에 저작권 침해 요소가 있다는 이유로 저작권자가 신청한 저작권 침해금지가처분이 인용된 경우, 본안의 소에서 판결이 선고되기 전이라도 게임 제작·유통사는 문제의 게임을 셧다운 해야 한다. 따라서 저작권자는 본안의 소송이 지연되더라도 아쉬울 게 없는 느긋한 입장에 서게 된다.

 

소송을 당한 피고의 입장에서 보자.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사안에서 여론이 좋지 못한 시점에 소송을 당한 경우, 분쟁이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하기 위해서라도 재판을 지연시킬 필요가 있다. 아울러 원고는 자력이 부족한 개인인 데 반해 피고는 변호사 보수 등의 법률비용을 부담하는데 충분한 자력이 있는 거대 기업인 경우, 법에서 정한 모든 절차를 거치게 함으로써 원고가 제풀에 지치게 할 수도 있다.​

 

다만 형사 절차에서는 당사자들에 의한 재판지연을 보기 어렵다. 민사절차는 당사자들의 주도하에 주장·입증이 이뤄지는 당사자주의가 지배하나, 형사 절차는 법원의 직권주의적 요소가 가미돼 있기 때문이다. 피고인이 법원에 의도적인 재판지연의 의도를 비치면 양형에서 불이익을 입을 수도 있다.

 

소송을 제기하는 원고나 소송을 당한 피고는 어떠한 이익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재판을 지연시키는 경우가 있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대법원 전경. 사진=비즈한국 DB


또한 항소심(2심)에서도 당사자들에 의한 의도적인 재판지연은 발생하기 어렵다. 법리적인 측면에서 항소심은 새로운 주장과 입증이 허용되는 속심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그러나 과다한 항소 사건으로 인한 법원의 심리부담 등을 이유로 실무적으로 항소심은 원심판결의 당부만을 심사하는 사후심처럼 운영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므로 당사자가 항소심에서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재판을 끌기는 어렵다.

 

결국 당사자들의 의도적인 재판지연이 문제 되는 경우는 주로 1심 민사소송절차다. 1심 민사소송절차에서도 어느 당사자의 재판상 행위가 정당한 주장·입증인지, 아니면 부당한 재판지연인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여기서는 재판지연 행위로 여겨지는 대표적인 사례를 살펴본다.

 

첫째, 소장의 송달을 회피한다. 피고가 법인등기부상 주소지에 위치한 사무실을 이전하거나 실거주지와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일치하지 않는 상태를 방치하는 경우, 원고의 소장이 피고의 주소에 송달되지 않으므로 소송절차가 지연된다. 이때 원고는 공시송달을 신청해 판결을 받을 수 있다. 다만 공시송달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판결 시점이 되면 피고는 재산을 다 빼돌렸을 것이므로 그 판결은 집행권원으로서의 실효성이 없다.

 

둘째, 소장을 송달받은 후 답변서 제출을 최대한 미룬다. 소장을 송달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법원은 무변론 판결선고 기일을 지정한다(민사소송법 제257조 제1항). 즉 법원은 재판 없이 판결을 선고할 수 있다. 그러나 무변론 판결선고 기일이 지정된 이후라도, 피고가 소장을 뒤늦게 확인했다거나 담당자의 인사이동 등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어려웠고 소송대리인(변호사)을 뒤늦게 선임하였다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판결선고 기일의 취소를 요청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원은 이를 수용하고 피고의 답변서를 기다린다. 이 과정에서 2~3개월이 소요된다. 

 

셋째, 다수의 증인을 신청하고 그 회신에 오랜 기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사실조회·문서송부촉탁 등을 신청한다. 증인·사실조회촉탁·​문서송부촉탁 등과 같은 증거신청은 주장사실에 대한 입증행위로서 원칙적으로 정당하다. 그러나 △신청한 증거와 요증사실(증명할 사실) 간의 관련성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 △요증사실이 주장사실의 지엽적인 사정에 불과한 경우 △신청한 증거가 중복되는 경우에는 상대방으로부터 재판지연의 의도에서 비롯된 불필요한 증거신청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또한 요증사실을 특정하지 아니한 채 증거조사를 통하여 새로운 주장사실을 만들어 내려는 ‘모색적 증거신청’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판결문 서류 사진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최준필 기자


‘사실조회촉탁 신청’이란 공공기관 등에 필요한 조사 또는 보관 중인 문서의 송부를 명할 것을 신청하는 행위를 말하고, ‘문서송부촉탁 신청’이란 문서를 가진 사람에게 그것을 제출하도록 명할 것을 요청하는 신청을 말한다. 사실조회촉탁 신청 등이 채택되면 법원이 문서 보관처 등에 촉탁서를 발송하고, 그 회신을 기다리는데 적어도 1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매년 2월 말경에는 법원 인사이동이 있고 7월 말경에는 하계휴가로 인한 휴정기가 있다. 이러한 법원이나 증거신청의 일정을 조정해 증인신문기일이 수회 지정되게 하고 사실조회 회신 등을 기다린다는 이유로 변론기일의 연기를 신청하면, 재판을 2~3년 끄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넷째, 재판 중간에 대리인을 추가 선임하거나 대리인을 교체한다. 그리고 변경된 대리인이 주장·입증을 파악하여 정리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변론기일의 연기를 구한다. 변호사 보수를 부담할 충분한 자력을 지니고 재판지연을 통한 이익이 있으면, 다소 극단적이나 소송 중간에 변호사를 교체해 재판을 끌 수 있다.

 

이 같은 방법으로 재판을 끌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판결을 선고받게 된다. 그리고 불성실하게 재판에 임하여 의도적으로 재판을 지연시켰을 경우 그러한 행위가 판결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또한 현실적으로 연이율 12%의 지연배상금을 무시할 수 없으며, 재판지연이 당사자들 간의 감정싸움으로 비화해 화해나 조정의 여지가 없어질 수 있다. 현실적인 필요 때문에 재판을 지연시키더라도 이러한 복잡한 사정을 잘 고려해야 한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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