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코스닥 상장사 주가를 인위적으로 띄워 수십억 원 이상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구속 기소 됐던 방송인 양정원 씨의 남편 이 아무개 씨가 지난 1일 법원의 보석 결정으로 풀려났다. 이 씨는 전직 증권사 출신 등과 공모해 재작년 12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코스닥 상장사 주식을 289억 원 이상 사고팔며 주가를 상승시킨 혐의로 지난 4월 22일 구속됐었다. 구속 5개월여 만에 풀려난 것인데, 함께 기소된 2명은 이미 지난 8월 28일 보석으로 풀려났다. 공범 3명이 나란히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재판에서 시간 끌다가 구속 4~5개월 때 보석 신청
법조계에서는 수백억 원대 시세조종과 무자본 M&A로 시장을 교란한 중대 경제사범들에게 재판 장기화를 노린 보석 신청 및 허가가 하나의 ‘뉴노멀’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심 법원은 구속 상태를 6개월 이상 유지할 수 없기에 구속 기소 사건의 경우 6개월 안에 선고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이 있다. 재판 일정이 이를 넘어설 경우 보석을 허가하거나 구속만기에 따라 석방하는 게 일반적이다. 검찰은 ‘중대 범죄’로 볼 경우, 추가 기소해 새롭게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구속 재판 상태를 늘리곤 했다.
문제는 주가조작 등 금융범죄의 경우 그 정도로 언론의 주목을 받는 중대 범죄가 아니라는 점이다. 또 구조가 복잡해 재판에서 입증해야 할 것이 많은 게 일반적이다.
당연히 이를 노리는 대응 전략이 자연스레 형성됐다. 검찰의 구속 기소 후 재판에 적극적으로 응하다가 구속 4~5개월 즈음 되어 재판 일정상 선고가 불가능한 것이 확실해지면 보석을 신청하는 것이다. 시간을 끌기 위해 재판에서 적극적으로 다투면서 재판을 장기화하는 법정 대응 전략이 필수 조건이다. 이 같은 대응 전략이 ‘뉴노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법원도 할 말은 있다. 구속기간 내 선고를 염두에 둔다면 주 1회 정도로 적극적으로 재판을 하는 게 가능하지만, 통상 언론의 관심이 덜한 사건들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공판 기일이 잡히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다 보니 재판부 역시 구속 만기(6개월)로 어차피 풀어줄 바에야 보증금과 주거 제한 등 조건을 붙여 선제적으로 보석을 허가하는 편을 선택하는 것이다.
교도소 과밀화 문제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교도소와 구치소의 수용인원이 한계에 달한 상황이다 보니 일정 기간 이상 구속된 피고인에게는 보석 허가가 좀 더 쉽게 나오는 것. 전국 교도소와 구치소 55곳 가운데 30곳은 지어진 지 30년이 넘을 정도로 낡았지만, 지난해 국내 교정 시설 수용률은 정원을 넘는 127.7%였다. 100명이 머무를 수 있는 곳에 127명이 수용된 셈. 그러다 보니 법원도 구속보다는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 받는 것을 최대한 유도하고 있다.
문제는 불구속으로 전환되면 자연스레 재판도 장기화된다는 점이다. 구속 기소 사건을 우선적으로 처리하려다 보니, 불구속 기소 사건의 경우 재판 일정도 더 느긋하게 잡히는 편이다. 1심 판결이 나오기까지 2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보석으로 풀려난 작전 세력이 보란 듯이 또 다른 상장사 무자본 M&A 딜에 뛰어들어 2차, 3차 주가조작을 기획·실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1심 판결만 3년 넘게 걸려…보석 후 다른 M&A 딜에 관여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과거 코스닥 상장사 J 사 주가조작 사건으로 구속 기소됐던 A 씨다. 무자본 M&A와 허위 공시, 시세조종 혐의로 구속 기소된 A 씨는 2024년 2월 보석으로 석방됐다. 2023년 4월 구속된 지 10개월여 만이었다.
하지만 3년여가 지나도록 아직 선고가 나지 않은 상황. 그 사이 H 사나 R 사 등 코스닥 상장사 M&A에 A 씨 이름이 또다시 거론됐다. 공식적으로 이름을 올리진 않았지만, 딜 과정에서 중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A 씨가 보석으로 풀려난 뒤 한동안 자숙하다가 최근 여러 상장사 M&A에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개입 중”이라며 “1심에서 실형이 나오면 모르겠지만, 계속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된다면 또 1~2년의 시간을 버는 셈이라 더 많은 딜을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10월 2일 자로 단행된 검찰청 폐지와 중수청·공소청 체제 출범도 이들에게 ‘유리한 구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한민국 자본시장 수사의 사령탑 역할을 해온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이 해체되고 신설 중수청으로 넘어가면서 사정 전선의 재정비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특히 주가조작 사범들이 구속영장 신청 단계부터 ‘공소청 전관’을 고용해 시간 끌기를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상장사 CB(전환사채) 관련 투자자는 “검찰 수사 과정도 1년 이상 걸렸는데, 중수청으로 넘어가게 되면 구속되기까지 그 이상이 걸릴 것이고 기소 과정에서 혐의도 많이 덜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며 “검찰 해체에 따른 수사 장기화, 사건 이첩·송치 단계마다 다툼의 여지를 만들어내는 뉴노멀이 또 생겨나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