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SK하이닉스가 미국 손자회사 솔리다임의 나스닥 상장 카드를 내려놨다. 최대 20조 원 규모로 거론됐던 외부 자금조달 구상이 중단되면서 미국 내 신규 생산시설 확보 등에 필요한 투자 재원을 다시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메모리 업계의 증설 경쟁이 거세지는 가운데 3분기 실적발표에서 공개될 추가 주주환원 방안과 향후 투자재원 운용 방향에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뉴욕 생산시설에 자금 투입하려 했는데…
SK하이닉스는 지난 23일 공시를 통해 솔리다임의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IPO)와 기업공개(IPO) 검토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지난 8월 5일 상장 준비 사실이 알려진 지 79일 만이다. 회사는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반도체주가 조정을 받는 상황에서 지금의 IPO가 기존 주주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인지 다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솔리다임의 성장성이나 투자 필요성이 달라진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솔리다임은 SK하이닉스가 인텔의 낸드·SSD 사업을 약 90억 달러(약 11조 원)에 인수해 2021년 출범시킨 회사다. 주력 제품은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다. SSD는 반도체 메모리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장치다. eSSD는 데이터센터와 기업용 서버에 사용되는 SSD로, 대규모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저장하고 처리하는 데 쓰인다. AI 학습과 추론에 필요한 데이터가 늘면서 수요도 확대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솔리다임의 기업가치가 1000억~1500억 달러(130조~200조 원), IPO 조달 규모가 100억~150억 달러(13조~20조 원)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이 자금은 중국 다롄 공장 증설과 별개로 추진 중인 미국 뉴욕주 신규 생산시설에 투입될 것으로 관측됐다.
‘5단 지배구조’에 ‘중복상장’ 논란, 해외 상장도 규제 대상
SK하이닉스는 시장 여건을 중단 이유로 들었지만 업계는 중복상장 논란을 결정적 배경으로 본다. SK그룹 반도체 지배구조는 SK㈜→SK스퀘어→SK하이닉스→AI컴퍼니→솔리다임으로 이어진다. 솔리다임이 신주를 발행해 외부 자본을 유치하면 SK하이닉스의 간접 지분율이 낮아져, 기존 주주에게 돌아갈 미래 이익의 몫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8월 시행된 중복상장 가이드라인이 해외 상장에도 적용되는 가운데, 이찬진 금융감독원장과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국정감사에서 잇따라 솔리다임을 규제 대상으로 지목하면서 상장 추진 부담이 커졌다. 이번 사례로 현대차 보스턴다이내믹스 등 해외 상장을 준비하던 자회사들의 일정도 영향권에 들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문제는 증설 필요성이 그대로라는 점이다. 직접 출자, 차입,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등이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각각 현금 부담, 이자 비용, 지분 희석이라는 부담이 따른다. 2분기 말 SK하이닉스의 현금성 자산은 88조 원, 차입금은 18조 6000억 원이었다. 다만 이후 약 40조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마친 만큼 당시 현금성 자산을 현재 가용 자금으로 그대로 보기는 어렵다. 여기에 청주 M15X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국내 설비투자도 병행해야 해 솔리다임 투자에 쓸 수 있는 자금을 따져봐야 하는 상황이다.
대체 자금조달 방안으로는 SK하이닉스의 직접 출자와 차입 등이 거론되지만, 구체적인 조달 방식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외부 자본 유치 기회가 줄어든 가운데 솔리다임 투자와 국내 설비투자, 주주환원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배분할지가 과제로 남았다.
주가는 반등…시선은 주주환원 발표로
솔리다임 상장 검토 중단 발표 당일 SK하이닉스 주가는 4.42% 오른 127만 7000원에 마감했다. 다만 9월 23일 종가와 비교하면 한 달 새 약 31.4% 하락한 수준이다.
양현경 iM증권 연구원은 “솔리다임의 미국 상장 철회는 중복상장에 따른 할인과 지분 희석 우려를 완화할 수 있는 재료”라며 “외부 자본 조달 기회가 줄어들면서 향후 투자자금 부담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고 짚었다.
관건은 오는 28일 실적발표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3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76조 9640억 원으로, 분기 사상 최대가 예상된다. 키옥시아 지분 매각 차익을 활용한 16조 원 특별배당설에 대해 SK하이닉스는 “확정된 사항은 없다”며 추가 환원책을 실적발표 때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환원 규모가 커질수록 투자 재원과의 균형도 중요해진다. 수십조 원대 설비투자와 주주환원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설정할지가 향후 주가 방향을 가를 변수로 꼽힌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회사 측이 구상하는 성장 전략보다는 주주가치 제고가 최우선 과제임을 천명한 것으로 판단한다”며 “실적발표에서 더 실효적이고 구체적인 주주가치 제고 방안이 제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