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화면 속 단정한 차림새의 은행원이 말한다. “주의 사항을 알려드릴게요.” 손을 올리고,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화면 속 은행원이 실제 사람인지 인공인간(AI 휴먼)인지, 당신은 구별할 수 있을까. 2022년 신한은행 ‘인공지능(AI) 은행원 고도화’ 사업 입찰에서 불거진 이 질문은 약 4년에 걸친 소송으로 이어졌다.
AI 기술력이 필요한 사업인 만큼 입찰에는 ‘인공인간을 적용해 녹화한 영상’을 제출하는 과제가 포함됐다. 그런데 우선협상대상자로 뽑힌 업체의 영상을 두고 “AI가 아닌 사람 영상”이라는 의혹이 제기됐고, 법원이 의뢰한 감정에서도 실사 영상일 가능성이 높다는 소견이 나왔다. 그럼에도 소송에서 패한 쪽은 이의를 제기한 업체였다. 감정 결과와 판결은 왜 엇갈렸을까. AI 은행원 고도화 사업 입찰을 두고 벌어진 4년간의 다툼을 짚어본다.

AI 은행원 입찰서 불거진 ‘실사 영상’ 논란
9월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22부는 마음AI가 신한은행을 상대로 제기하고 딥브레인AI가 피고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무효 확인 등의 소송에서 신한은행 측의 손을 들었다. 마음AI는 15억 원대 손해배상도 청구했으나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마음AI는 에이전트 AI, 로봇·피지컬 AI 사업을 하는 코스닥 상장사다. 상장 당시 사명은 마인즈랩이었으나 2023년 3월 현재의 사명으로 변경했다. 딥브레인AI는 AI 휴먼 기술을 기반으로 한 AI 영상 생성 및 대화형 AI 서비스 기업이다.
마음AI의 청구 취지는 크게 두 가지였다. 신한은행이 2022년 6월 ‘AI 은행원 고도화 사업’ 입찰에서 평가 기준을 위반해 딥브레인AI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으므로 무효라는 것과 신한은행이 입찰을 부당하게 진행해 입찰자로서 의무를 위반하고 손해를 입혔다는 주장이었다.
마음AI와 신한은행·딥브레인AI 간의 법적 다툼은 2022년 11월 시작됐다. 2021년 9월 업계 최초로 AI 은행원을 도입한 무인형 점포를 개설한 신한은행은 2022년 6월 AI 은행원의 고도화 사업 입찰을 진행했다. 입찰에서 두 개의 업체가 맞붙었고, 기술 평가를 거쳐 2022년 6월 23일 딥브레인AI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우선협상대상자 발표 당일, 마음AI는 즉각 이의를 제기했다. 단순히 탈락에 반발한 것이 아니었다. 마음AI가 요구한 것은 ‘영상 판별’이었다. 딥브레인AI가 입찰 과정에서 제출한 영상이 인공인간을 녹화한 것이 아니라 실제 사람을 촬영한 ‘실사 영상’이라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AI 은행원은 직원을 대신해 금융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만큼 인간의 표정과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구현하는 기술력이 필요하다. 입찰 제안요청서에 명시된 AI 은행원의 업무는 전세자금 대출 상담이었다. AI 은행원은 고객을 맞이하고, 대기 번호를 확인하고, 신분증을 받고, 상담 직원과 고객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신한은행은 업체 선정 과정에서 과제로 ‘디지털 데스크 내 특정 화면에 인공인간을 적용해 녹화’한 영상과, ‘모바일·PC용 인공인간’을 제출하도록 했다. 과제는 인공인간의 자연스러움, 모델 표정, 얼굴 움직임, 보이스톤, 감정 및 표정을 반영한 발화, 입 모양 동기화, 행동 모션 등에서 일정한 품질 수준을 충족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에는 인공인간을 만들 때 ‘Speech to Face(STF)’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STF 기술은 사람 모델의 동작과 다양한 발화를 촬영한 뒤, 동작·목소리·입 주변 움직임 등의 영상 데이터를 AI 모델에 학습시키는 기술이다. 학습과 후처리 과정을 거친 인공인간은 입력한 텍스트에 맞춰 실제 모델이 말하는 듯한 영상을 생성할 수 있다. 마음AI는 STF 기술을 적용한 인공인간 영상을 제출한 터였다.
실사 영상 의혹은 각 사가 만든 영상을 신한은행의 디지털 기기에 재생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딥브레인AI가 제출한 영상을 본 마음AI는 실사 영상이라고 판단했다. 딥브레인AI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결과가 발표되자 마음AI는 신한은행에 영상 검증 방식이 부당하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마음AI는 현장에서 AI 서버를 직접 가동해 제출물과 동일한 영상을 재현하는 검증 방법을 제안했으나 신한은행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상 검증이 이뤄지지 않자 마음AI는 결국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이 진행 중이던 2024년, 법원이 ‘법영상분석연구소’에 딥브레인AI가 제출한 영상의 감정을 의뢰하면서 소송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법영상분석연구소는 국내 유명 영상 분석 전문가인 황민구 대표가 이끄는 곳으로, 법원·경찰·국방·소방 등에서 의뢰받은 증거 영상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분석하는 업체다.

2025년 5월 법영상분석연구소가 내놓은 감정 결과는 마음AI의 주장과 같았다. 딥브레인AI가 제출한 영상이 인공인간 녹화물이 아니라 사람을 촬영한 실사 영상일 가능성이 높다는 소견이었다.
비즈한국이 입수한 법원 감정서와 감정인 의견서에 따르면, 법영상분석연구소는 △인공인간 제작 후 영상을 출력하는 인코딩 과정이 확인되지 않는 점 △일반 인공인간 영상과 달리 영상이 튀는 현상이 나타나는 점 △긴 문장을 읽을 때 모델의 눈동자에서 글을 읽는 움직임이 관찰되는 점 △발화자의 손동작에 따라 입 주변에 그림자가 발생하는 점 등을 근거로 딥브레인AI의 영상에 관해 “여러 요소에서 인공인간 기술상 나타나기 어려운 패턴이 다수 존재한다”며 “딥페이크를 통한 인공인간 영상이기보다 실사 영상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실사 영상 논란에도 입찰 무효는 불인정
하지만 법원 감정 결과에도 소송은 마음AI의 패배로 끝났다. 법원은 딥브레인AI가 인공인간 영상을 제출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민간 업체 간 계약을 엎을 만한 사유는 아니라고 봤다. 신한은행이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영상뿐만 아니라 기술 평가의 여러 정성·정량 평가 요소를 반영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재판부는 “마음AI의 주장이나 증거만으로는 신한은행이 딥브레인AI의 제출물을 검증하고,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유지하는 과정이 신의칙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며 “딥브레인AI의 제출물이 실사영상인지보다 당시 적정한 수준의 검증 절차를 진행했는지가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신한은행에는 “신의칙 위반으로 입찰의 공정성을 해쳐 원고의 법익을 침해할 정도에 이른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마음AI가 항소를 포기하면서 10월 3일 판결은 확정됐다. 유태준 마음AI 대표는 항소를 포기한 이유에 관해 “상대 업체가 실사 영상을 제출했다는 점을 법원 감정을 통해 확인받았기 때문”이라며 “입찰한 사업도 이미 끝나지 않았나. 법리적으로 다퉜을 때 결과를 뒤집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고 답했다.
유 대표는 “이번 판결로 발주처에서는 제안 요청서에 자신들의 선정 자율권을 더욱 강화해서 넣을 것으로 본다”며 “가뜩이나 큰 힘을 가진 발주처가 입찰 업체에 일방적인 권한을 휘두르지 못하도록 제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딥브레인AI와 신한은행은 재판을 진행 중이던 2024년 7월 고도화를 거친 새로운 AI 은행원을 공개했다. 신한은행에 근무 중인 직원 5명을 촬영한 뒤 영상·음성 합성을 통해 만든 인공인간으로, 신한은행 전국 영업점 내 스마트 키오스크와 디지털 데스크에 배치됐다.
소송에 관해 입장을 묻자 딥브레인AI는 “제출 영상은 당사의 AI 휴먼 기술로 제작했다. 특정 인물의 데이터로 학습한 전용 모델이 발화에 맞춰 얼굴과 입 모양을 생성하고 이를 동작 영상과 결합하는 방식으로, 현재까지도 AI 휴먼 업계에서 널리 쓰인다. 재판 과정에서 이 점을 충분히 소명했다”며 “국내 주요 은행에 AI 은행원을 공급해 왔다. 2024년 공개한 신한은행 AI 은행원은 실제 영업점 직원을 모델로 제작해 표정과 동작이 더 자연스러워졌고, 디지털 데스크에서 다양한 상담 업무를 처리하도록 고도화했다”고 답했다.
신한은행은 “재판이 종결돼 법원 판단이 내려진 사안“이라며 ”추가 분쟁의 가능성이 있어 답변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