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양자컴퓨터 개발 경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은 핵심 칩 개발 외에도 제어·계측 장비와 시스템 통합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국내 양자기업 SDT는 글로벌 양자컴퓨터 기업 아이온큐와 협력해 완성형 장비 제조·통합 역량을 확보하고 시장 진입을 추진한다. 원천 칩 기술을 직접 개발해 선두 기업과 경쟁하기보다 제어·계측 장비와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며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하겠다는 전략이다.

29일 국회에서 열린 양자기술 연속세미나에 참석한 윤지원 SDT 대표는 “제어·계측과 시스템 소프트웨어 영역을 다루면서 해외 기업들과 협력하는 방향을 보고 있다”며 “주체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연구기관과 대학에서 꼭 해야 하는 분야지만 (산업적으로) IBM이나 아이온큐와 직접 경쟁하는 것은 자본과 기술 측면에서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독자적인 양자 기술 연구와 별개로, 기업이 사업을 지속하려면 글로벌 기업과의 직접 경쟁보다 공급망 참여를 통한 사업화가 현실적인 경로라는 설명이다.
칩 아닌 시스템에 승부
양자기술은 양자역학적 특성을 활용해 정보를 처리하거나 측정·통신하는 기술이다.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와 다른 방식으로 연산하는 장치로, 인공지능과 신약·소재 개발 등에서 활용 가능성이 거론되며 산업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연산을 담당하는 QPU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칩을 제어하고 연산 결과를 측정하는 장비, 이를 통합하는 소프트웨어가 함께 필요하다. SDT는 이 가운데 제어·계측과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사업 기반으로 삼았다. 윤 대표는 GPU를 예로 들며 “GPU 칩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 HBM도 있어야 하고 DRAM, 마더보드, 냉각 기술도 필요하다”며 “마찬가지로 양자컴퓨터를 만들 때에도 주변 기술들이 합쳐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SDT의 사업은 표준 장비 판매, 고객사 맞춤형 개발·위탁 제조, 완성형 시스템 공급으로 나뉜다. 개별 장비 판매가 연구기관과 기업을 대상으로 한 공급이라면, 완성형 시스템은 한 번의 계약으로 더 큰 매출을 확보할 수 있는 사업이다. 개별 장비 가격은 1억 원 미만에서 2억~3억 원 수준이다. 완성형 양자컴퓨터는 100억~200억 원, 아이온큐의 플래그십 모델은 500억 원에 육박한다.
SDT가 지금까지 유치한 투자금은 약 800억 원이다. 그간 국책과제 17건을 수행해 출연금을 약 122억 원 확보했다. 현재 해외 양자컴퓨터 기업 주도로 약 420억 원 규모의 추가 투자 유치를 마무리하는 단계다. 내년 상반기 코스닥 상장이 목표다.
구미에 양자 ‘시스템 파운드리’ 구축
SDT의 사업 확장 계획은 지난 22일 발표한 아이온큐와의 파트너십에서 구체화됐다. SDT는 아이온큐의 아시아·태평양 및 일본 지역 우선 제조 파트너 지위를 확보했다. 국내에 전무한 양자컴퓨터 관련 부품·장비의 제조 거점을 경북 구미에 구축하고 후공정과 패키징, 조립, 시스템 개발·운영 등 공급망을 선제적으로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관련 계획은 올해 말까지 마무리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설립에 나선다. 투자 규모는 총 750억 원이다.
첫 공급 제품은 아이온큐의 256큐비트 장비로, 설립 예정인 국내 한 암센터의 하이브리드 양자-고전 데이터센터에 연구 목적 인프라로 도입될 예정이다.

SDT가 아이온큐의 하청업체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을 두고 윤 대표는 “부정적으로 볼 게 하나도 없다”며 글로벌 기업의 공급망에 참여해 시스템 통합과 제조 역량을 사업화하겠다는 접근법을 강조했다. 이어 “국내 주요 기업 중에도 최종 제품보다 AI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부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곳이 많다”며 “이 같은 역량을 미리 확보하는 것이 회사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매출 증가에도 산업 수요는 초기 단계
국내 양자산업은 매출이 발생하기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성장 단계에 진입한 기업은 아직 드물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64개 기관을 조사한 결과 양자 관련 매출은 2024년 약 700억 원에서 2025년 약 1000억 원으로 늘었고, 올해에는 약 1639억 원으로 증가할 예정이다. 다만 국내 순수 양자기업은 29곳으로, 안정적인 매출과 고객 기반을 갖춘 스케일업 기업은 아직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현 시점에서는 수요도 연구기관 중심이다. 국산 양자 소부장 보급사업을 통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등 10곳 안팎에 국내 장비가 도입됐다. 연구개발 성과를 실제 산업 수요로 연결하고 반복 구매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가 과제다. 양자산업의 매출이 늘고 있지만, 민간 수요만으로 기업이 성장하기에는 시장 형성 단계도 아직 초기라는 진단이다.
한상욱 KIST 양자기술활용연구거점사업단장은 양자 분야 인력 양성과 관련해 “양자대학원에서 박사급 인력이 내년부터 배출되지만, 국내 산업계가 이들을 충분히 흡수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 인력 양성뿐 아니라 기업의 채용 수요와 실무 경험을 연결할 기반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측정·시험 인프라 부족도 상용화의 제약으로 거론됐다. 유대혁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연구원은 양자컴퓨팅·센싱 분야에서 측정·시험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을 산업화의 병목으로 짚었다. 연구개발 이후 제품화·실증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기반 확충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양자컴퓨터의 상용화 시점에 대한 기대는 크지만, 실제 수요가 뒷받침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해외 선두 기업들은 향후 2~3년 뒤 시장의 성장을 예상하고 투자하는 상황인데 국내 기업이 이 흐름에 참여하려면 연구개발을 넘어 제조 역량과 고객사를 확보해야 한다. SDT의 아이온큐 협력이 국내 양자산업의 사업화 모델로 이어질 수 있을지도 이 과정에서 가늠될 전망이다.
김영희 NIA 센터장은 “양자 시장은 민간이 자체 투자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큰 시장”이라며 “정부의 투자와 수요 창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