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2019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시스템 반도체’를 미래 먹거리로 제시했다. 국내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 경쟁력 강화를 외치면서 국내 팹리스(반도체 설계), DSP 업체와의 협력 확대 계획을 밝혔다.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 글로벌 1위가 되겠다는 장기 목표를 제시하며 ‘반도체 비전 2030’을 제시했고, 이를 위해 133조 원을 10년간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2022년 삼성전자 시스템 반도체 부문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A 씨. 그가 입사할 때만 해도 팀에 ‘한 번 해보자’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최근 팀 분위기는 완전히 무너졌다. A 씨에 따르면 2019년 발표한 ‘반도체 비전 2030’에 따라 메모리에서 비메모리 사업부로 옮긴 인력들의 이탈이 두드러지고 있다. 팀원 10여 명 중 2~3명은 이미 SK하이닉스 등 경쟁사로 이직했고, 2~3명은 대학원 진학 등을 고민 중이다.
탈출 러시가 본격화된 계기는 ‘성과급’ 논란이다. 메모리 반도체(DS 부문)에 비해 성과급이 턱없이 적을 것으로 예상되자 회사 밖에서 미래를 찾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A 씨 역시 “미국 대학원 등에 진학해 추가로 스펙을 쌓은 뒤 다시 반도체 분야로 취업할까 고민 중이다. 지금 시스템 반도체 분야 종사자들은 일할 동력을 완전히 잃은 상황이다”고 털어놨다.

종합반도체 꿈꿨지만, 성과주의 원칙 앞 흔들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선단 패키징까지. 삼성전자는 종합적인 생산 역량을 갖춘 세계 유일의 반도체기업이다. 이재용 회장이 2019년 시스템 반도체를 ‘미래 먹거리’로 낙점한 것은 ‘턴키’ 역량을 늘려 인공지능(AI) 칩 시장의 주도권 확보를 위함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전략이 성과주의 원칙에 따른 보상 격차 앞에 흔들리고 있다. 성과급 배분을 둘러싼 분열로 원팀 정신이 흔들리는 것이다.
노사가 합의한 삼성전자 성과급 잠정합의안은 사상 최대 실적을 낸 반도체(DS) 부문에 기존 성과인센티브(OPI) 외에 사업성과의 10.5%를 특별경영성과급으로 차등 지급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대로라면 메모리 사업부 직원은 OPI 포함 6억 원대 성과급을 받는다. 하지만 같은 DS라도 파운드리와 시스템LSI 사업부는 1억 원대 중반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이제 막 삼성전자가 진출한 분야이다 보니 ‘실적’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부는 첨단 공정에 대규모 투자금이 필요하다. 2030년 글로벌 1위를 목표로 했지만 업계 1위인 대만 TSMC와의 시장 점유율 격차는 60%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글로벌 순수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는 매출 기준 73%의 점유율을 차지했고, 삼성전자는 7%로 2위를 기록 중이다. 이마저도 공격적인 투자에 나선 인텔에 위협받고 있다. 2·3나노 공정에서 대형 고객사를 확보해 가동률을 올리는 것이 급선무지만, 내부 물량을 생산하느라 글로벌 고객사 확보 성과가 미진하다.
훨훨 나는 메모리, 지지부진한 시스템
반도체 수출 지표 역시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7월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178.8% 상승한 410억 2000만 달러(58조 원)를 기록했는데, 메모리 반도체는 276.9% 증가한 반면 시스템은 0.7% 줄어들었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급등하는 사이에도 시스템 반도체 가격은 조금 하락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올 4분기 미국 테일러 팹 가동을 시작하면서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낸다고 하지만, 올해까지는 적자가 확실하고, 빠르면 내년에 흑자 전환 가능성을 내다보고 있다. 향후 수년 동안 ‘수억 원대 성과급’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삼성전자 모바일 파트 직원은 “메모리 반도체를 제외하면 향후 2~3년 동안 실적이 개선되리라고 기대되는 분야가 없다”며 “돈 벌어다 반도체 적자 메울 땐 언제고, 성과급은 메모리만 우대하느냐며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토로했다.
재계 관계자는 “단기 실적에 매몰된 성과급 시스템이 자리를 잡는다면 사업 분야별로 갈등이 벌어질 수 있고, 미래를 대비한 부서에는 아무도 가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