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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희귀질환 리포트
④ ‘병은 있는데 증명이 안 된다’ PFIC 환자 막는 마지막 장벽

임상 명확해도 ‘유전자 미확진’ 시 산정특례 제외…제도 빈틈 어떻게 메울까

편집자 주
희귀질환 가운데서도 환자 수가 특히 적은 질환은 ‘극희귀질환’으로 분류된다. 국내에서는 통상 유병인구 200명 이하이거나 질병분류코드조차 없는 질환을 뜻한다. 환자가 적다는 것은 곧 진단 경험도, 치료 데이터도, 사회적 관심도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 결과 병명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어렵게 진단을 받아도 치료제와 제도가 따라오지 못해 환자와 가족이 고통을 온전히 떠안는 일이 반복된다. 비즈한국은 숫자 뒤에 가려진 극희귀질환 환자들의 현실과 의료 사각지대를 짚어본다.

[비즈한국] 신생아 5만~10만 명 중 1명꼴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극희귀 간질환 ‘진행성 가족성 간내 담즙정체증(PFIC)’. 지난해 10월 치료제 ‘빌베이(성분명 오데빅시바트)’가 건강보험 급여 문턱을 넘으면서 환자들의 치료 환경은 한층 개선됐다.

하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급여화는 시작일 뿐’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약제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가 있는 데다 임상적으로는 PFIC가 명확하지만 유전자 검사에서 원인 변이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가 지원을 받지 못하는 환자들도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교원투어빌딩에서 열린 KMI 희귀난치 희망총서 PFIC편 도서 출간 기념 북토크 행사에서 고홍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소아소화기영양과 교수(왼쪽에서 네 번째)가 PFIC 환아와 함께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최영찬 기자

피가 날 때까지 긁는 아이들…국내 환자 50여 명뿐

진행성 가족성 간내 담즙정체증(PFIC)은 간에서 생성된 담즙이 정상적으로 배출되지 못하고 간 안에 쌓여 발생하는 희귀 유전성 간질환이다. 주로 영아기에 발견되는데 국내 환자는 50명이 되지 않는 것으로 추산된다.

담즙산이 체내에 축적되면 환아들은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의 극심한 소양증(가려움증)에 시달린다. 어린아이들이 피가 나고 피부가 짓무를 때까지 몸을 긁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여기에 지용성 비타민(A·D·E·K)이 제대로 흡수되지 않아 성장장애가 나타나고, 병이 진행되면 간섬유화와 간경변으로 악화될 수 있다.

치료 환경을 바꾼 것은 글로벌 제약사 입센의 IBAT(소장 말단 담즙산 수송체) 억제제 빌베이다.

빌베이는 장에서 담즙산이 재흡수되는 과정을 억제해 체내 담즙산 축적을 줄이는 치료제다. 극심한 소양증을 완화하고 간 기능 악화를 늦춰 일부 환자에서는 간이식 시기를 지연시키는 효과가 기대된다.

입센의 PFIC 치료제 빌베이. 사진=미국 의약품 정보 포털 드럭스닷컴 홈페이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따르면 빌베이는 1캡슐당 13만 8566원~82만 9807원의 상한금액이 책정된 초고가 의약품이다. 치료용량에 따라 연간 약제비는 최대 3억 원이 넘을 수 있지만 건강보험 급여 적용으로 산정특례 대상 환자의 경제적 부담은 크게 완화됐다.

다만 급여화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일부 환자는 약제에 충분히 반응하지 않는 약제 불응성을 보여 담즙 정체가 지속돼 간이식이나 간세포암 등 중증 합병증 위험이 여전히 남아 있다. 실제 약제 불응성을 경험한 환자도 있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교원투어빌딩에서 열린 KMI 희귀난치 희망총서 PFIC편 도서 출간 기념 북토크 행사에 참석한 PFIC 환우회 김지수 대표는 자녀가 빌베이를 복용했지만 담즙산 수치가 개선되지 않은 경험을 소개했다. 김 대표는 “빌베이 복용 효과가 미미해 결국 간이식을 준비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소아 간암의 일종인 간모세포종까지 발견돼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면서 “당시 간이식이라는 단어 자체가 너무나 큰 공포였다”고 돌아봤다.

빌베이는 질환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교정하는 유전자 치료제가 아니라 증상과 질환 진행을 조절하는 치료제인 만큼 장기 복용과 지속적인 경과 관찰이 필요한 치료제다. 여기에 설사 등 소화기계 이상반응이 나타날 수 있으며 담즙산 대사 변화에 따라 지용성 비타민(A·D·E·K) 수치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경우 보충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산정특례 산 넘었지만, 여전히 남은 ‘문턱’

희귀난치성질환 산정특례에 등록되면 건강보험 지원을 통해 고가의 빌베이를 비교적 적은 본인부담으로 사용할 수 있다. 반면 현재 알려진 PFIC 원인 유전자에서 병적 변이가 확인되지 않은 환자는 임상적으로 PFIC가 강하게 의심되더라도 산정특례 등록이 어려워 사실상 치료 접근성이 크게 제한된다.

고홍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소아소화기영양과 교수와 허문행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가 진료 중인 한 형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형제는 반복되는 황달과 간 기능 이상, 극심한 소양증 등 PFIC의 전형적인 임상 양상을 보여 의료진으로부터 PFIC로 진단받았다. 가족력과 임상 경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의료진은 PFIC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유전자 검사에서는 현재까지 알려진 PFIC 원인 유전자에서 병적 변이가 확인되지 않아 두 형제 모두 희귀난치성질환 산정특례 등록 대상에서 제외됐다. 의료진은 아직 규명되지 않은 새로운 원인 유전자나 현재의 검사 기술로 확인하기 어려운 변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현행 산정특례 기준상 유전자 검사를 통한 확진되지 않으면 국가 지원을 받을 방법이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PFIC 환우회 김지수 대표(오른쪽 첫 번째)가 자녀의 빌베이 복용 및 간 이식 수술 경험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최영찬 기자

북토크 행사에 참석한 형제의 보호자는 “병원을 다니며 상태를 확인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증상이 잠시 괜찮아졌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심해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극희귀질환일수록 이 같은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은 높다. PFIC는 여러 유전자 이상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직 규명되지 않은 유전자도 존재할 가능성이 있고, 유전자 분석 기술 역시 계속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백만 원에 달하는 유전자 검사 비용도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의료계에서는 새로운 유전자 변이를 확인하기 위해 일정 기간마다 재검사가 필요하다고 보지만 현재 국내에서는 유전자 검사 급여 적용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 교수는 “유전자 분석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 모든 원인 유전자가 밝혀진 것은 아니다”며 “임상적으로 질환이 명확한 환자까지 유전자 검사 결과만으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환자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 교수는 신약 급여화가 치료의 끝이 아니라며 앞으로 환우회의 역할을 당부했다. 그는 “제도와 정책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력은 의료진의 학술적 호소보다 환자와 보호자들이 직접 세상에 내는 생생한 목소리더라”면서 “그늘진 곳에 있는 이웃들까지 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환우회가 앞장서 목소리를 내주어야 하며, 이러한 환자들의 연대와 행동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제도 개선을 위한 의사들의 노력도 실질적인 힘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빌베이의 급여화는 PFIC 치료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그러나 의료계는 약제 불응 환자와 유전자 미확진 환자에까지 치료 기회를 넓히는 제도 개선이 뒤따를 때 비로소 극희귀질환 환자들이 신약의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극희귀질환 리포트
최영찬 기자

제약바이오 분야 출입하고 있습니다. 많이 듣고 많이 공부해 정확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chan111@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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