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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희귀질환 리포트
⑤ “난 못 봐도 다음 세대 위해” 실명 선고 환자가 치료제 만드는 이유

실명퇴치운동본부 최정남 회장, 싱귤래리티바이오텍 창업해 망막질환 신약 개발 직접 도전

편집자 주
희귀질환 가운데서도 환자 수가 특히 적은 질환은 ‘극희귀질환’으로 분류된다. 국내에서는 통상 유병인구 200명 이하이거나 질병분류코드조차 없는 질환을 뜻한다. 환자가 적다는 것은 곧 진단 경험도, 치료 데이터도, 사회적 관심도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 결과 병명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어렵게 진단을 받아도 치료제와 제도가 따라오지 못해 환자와 가족이 고통을 온전히 떠안는 일이 반복된다. 비즈한국은 숫자 뒤에 가려진 극희귀질환 환자들의 현실과 의료 사각지대를 짚어본다.

[비즈한국] “의사는 제게 실명할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암 선고를 받은 것처럼 세상과 단절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감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기만 기다릴 수는 없었다.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환자가 직접 치료제 개발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망막색소변성증(RP)을 앓고 있는 최정남 실명퇴치운동본부 대표 겸 싱귤래리티바이오텍 회장은 자신을 ‘환자이자 신약 개발자’라고 소개한다. 치료제가 없어 실명의 공포를 안고 살아가는 환자에서 출발해 이제는 직접 치료제 개발 기업을 이끌고 있다.

최 회장이 신약 개발에 뛰어든 것은 자신의 치료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현재 치료법이 없는 극희귀질환 환자들이 언젠가는 치료받을 수 있도록 지금부터 연구와 개발의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그가 2023년 9월 창업한 싱귤래리티바이오텍은 줄기세포를 이용한 망막오가노이드에서 망막전구세포를 확보해 유전성 망막질환에 적용하는 범용 세포치료제를 핵심 파이프라인으로 삼는다. 최근에는 동물모델에서 망막 구조와 광수용체세포 보존, 시각 기능 개선 가능성을 확인하고 GMP 생산공정 개발에도 들어갔다.

최정남 싱귤래리티바이오텍 대표는 후대를 위해 기꺼이 희망의 밭을 갈겠다며 희귀질환 치료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사진=최영찬 기자

“실명할 테니 마음의 준비” 환자에서 치료제 개발자로

최 회장에게 시력 이상이 나타난 것은 약 20년 전이다. 골프를 치던 중 갑자기 공이 안 보이고, 야간 운전을 할 때 가로등 불빛이 번져 보이는 증상이 나타났다.

처음 찾은 동네 병원에서는 ‘괜찮다’는 소견을 들었다. 하지만 불편함이 지속되자 삼성서울병원을 찾아 정밀검사한 끝에 망막색소변성증(RP) 진단을 받았다.

RP는 유전적 원인으로 망막의 광수용체 등이 점차 기능을 잃어가는 질환이다. 질환이 진행되면서 시야가 좁아지고 시력이 떨어지며 결국 실명에 이를 수 있다.

당시 의료진으로부터 “앞으로 실명할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들은 최 회장은 삶의 방향 자체를 다시 고민해야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후 국내외 환우단체 활동을 지켜보면서 환자들이 치료제 개발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환자 간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돕는 것을 넘어 연구자와 제약바이오기업, 정부와 연결되는 역할을 환자단체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특히 해외에서는 환자와 가족이 연구기금을 조성하고 연구기관이나 치료제 개발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환자단체가 연구 생태계에 참여하는 사례가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최 회장은 “치료 연구는 의사와 연구자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환자와 가족도 치료제 개발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면서 “지금 우리가 씨앗을 심지 않으면 미래 세대도 똑같은 고통을 겪게 된다”고 말했다.

“열매 따려는 곳 많지만 씨앗 심는 곳은 없어”

최 회장은 직접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20여 년간 국내외 연구자들과 교류하며 구축한 연구 네트워크와 환자 데이터를 발판으로 연구 기반을 마련했고, 2023년 9월 싱귤래리티바이오텍을 설립했다.

특히 싱귤래리티바이오텍이 확보한 환자 코호트는 치료제 개발의 중요한 기반이다. 싱귤래리티바이오텍은 삼성서울병원 600명을 더해 총 2000명 규모의 유전성 망막질환 코호트를 구축하고 있다.

회사는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원인 유전자별 질환을 재현한 망막오가노이드를 만들고, 이를 신약 개발에 활용하고 있다.

최 회장은 이처럼 환자 데이터와 연구 인프라를 직접 구축하는 이유에 대해 ‘씨앗’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는 “열매를 맺으면 정부든 기업이든 모두 관심을 갖고 평가하려고 하지만, 정작 밭에 씨앗을 심고 싹을 틔우는 가장 어렵고 위험한 과정에는 투자하려는 곳이 많지 않다”면서 “신약 개발에서 가장 위험하지만 중요한 단계가 바로 이 초기 단계이며, 이 시기에는 정부와 환우단체 스스로가 책임을 지고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유전자 변이 344개…범용 세포치료제 개발 목표

유전성 망막질환 치료에서 가장 난제 중 하나는 원인 유전자가 매우 다양하다는 점이다.

싱귤래리티바이오텍에 따르면 현재까지 유전성 망막질환과 관련해 344개 이상의 원인 유전자가 발견됐다. 반면 유전성 망막질환 유전자치료제는 2017년 1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RPE65 변이를 대상으로 하는 ‘럭스터나’가 유일하다. 럭스터나는 RPE65 변이에 따른 특정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업계에서는 양안 투여 기준 약 6억 5000만 원에 이르는 높은 치료비와 제한적인 적응증 등을 럭스터나의 미충족 수요로 본다.

최 회장은 특정 유전자 변이를 찾아 그 변이만을 교정하는 방식으로는 수백 개에 이르는 유전적 원인을 모두 따라가기 어렵다는 점에 주목했다.

싱귤래리티바이오텍의 핵심 파이프라인은 망막오가노이드에서 망막전구세포를 분리·배양한 뒤 환자의 유전자 변이와 관계없이 적용할 수 있는 범용 세포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이다. 회사는 망막오가노이드 제작부터 망막전구세포 분리와 배양까지 이어지는 공정을 구축하고 있다.

동물실험서 시각 기능개선 가능성 확인…엑소좀·약물전달 기술로 안구질환 확장

싱귤래리티바이오텍은 망막전구세포 치료제의 가능성을 동물모델에서 확인하고 있다.

회사가 제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망막전구세포를 유리체강 내 주사한 뒤 망막의 구조적 변화를 관찰한 결과 망막층, 특히 외핵층(ONL)의 두께가 보존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광수용체를 나타내는 로돕신(rhodopsin)과 PNA 신호 역시 치료 후 증가했다.

망막전위도 검사(ERG)에서도 치료군에서 망막 기능과 관련된 반응이 개선되는 결과를 제시했다. 시운동 반응 검사(OMR)에서는 시력 회복을 평가할 수 있는 행동학적 지표에서도 개선 가능성을 확인했다. 회사 자료는 특정 망막질환 동물모델에서 시운동 반응성이 80% 이상 증가했다고 제시한다.

싱귤래리티바이오텍은 망막오가노이드에서 유래한 엑소좀을 활용한 치료제도 개발하고 있다. 엑소좀은 세포 간 신호 전달에 관여하는 물질로, 회사는 망막오가노이드 유래 엑소좀이 염증 억제와 조직 재생 등에 활용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 각막 상처 동물모델에서는 엑소좀 점안 치료를 통해 상처 회복을 확인하는 전임상 연구도 진행했다. 각막세포 증식과 염증 관련 사이토카인 억제 효과가 기대되면서 유전성 망막질환뿐 아니라 안구질환 전반으로의 확장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여기에 양전하 히알루론산 기반 약물전달 플랫폼도 개발하고 있다. 회사는 음전하를 띠는 엑소좀에 양전하성 히알루론산을 결합해 세포 부착력과 표적 부위 체류시간을 높이는 기술을 제시하고 있다. 향후 안구건조증 점안제나 동물용 점안치료제, 기능성 화장품 등으로의 확장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지난달 29~30일 실명퇴치운동본부 주관 환우회 여름캠프가 경기 성남시 새마을중앙연수원에서 열렸다. 사진=실명퇴치운동본부 제공

“과장된 희망 아닌 과학에 기반한 희망 줘야”

그럼에도 최 회장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환자에게 지나친 기대를 심어주는 일이다.

치료제가 없는 환자에게 새로운 기술이나 임상시험 소식은 그 자체로 희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후보물질이 실제 치료제가 되기까지는 전임상과 임상시험, 안전성·유효성 검증 등 수많은 관문을 넘어야 한다.

최 회장은 이를 ‘하이프(Hype, 과장 광고)’와 ‘호프(Hope, 희망)’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과장된 희망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진짜 희망이다”면서 “치료제가 곧 나온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만 실제 개발 과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 역시 싱귤래리티바이오텍이 개발 중인 치료제의 혜택을 직접 받지 못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최 회장은 “제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더라도 미래 세대가 실명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미래 세대를 위한 기반을 만들어 놓고 싶다”고 털어놨다.

현실은 쉽지 않다. 신약 개발에는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데다 희귀질환은 환자 수가 적어 시장 규모가 제한적이라는 이유로 초기 투자 단계에서부터 외면받기 십상이다.

최 회장은 “3~4년 전만 해도 기술 가능성을 보여주면 투자받을 기회가 많았는데 지금은 초기 단계에서 투자받기가 너무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런 어려움에도 그가 연구 현장을 떠나지 않는 데에는 가족의 지지가 큰 힘이 되고 있다. 자녀들에게 일찍부터 나눔과 봉사의 가치를 강조해온 최 회장은 가족들이 자신의 실명퇴치 활동과 치료제 개발을 지지한다고 전했다. 가수 겸 배우인 딸 ‘소녀시대’ 멤버 최수영도 아버지의 활동을 응원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최 회장은 “70대가 되면서 체력적으로 힘들 때도 있다”면서도 “가족들이 지지해주고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 계속할 수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최 회장이 심은 씨앗이 언제 열매를 맺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싱귤래리티바이오텍이 개발 중인 치료제 역시 아직 전임상 단계여서 실제 환자에게 치료 혜택이 돌아가기까지는 넘어야 할 관문이 많다.

하지만 치료제가 나오기까지 환자 스스로 연구와 개발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을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세대의 환자들이 같은 자리에서 치료제를 기다리지 않도록 하는 것. 최 회장이 70대에도 연구 현장을 떠나지 않는 이유다.

최영찬 기자

제약바이오 분야 출입하고 있습니다. 많이 듣고 많이 공부해 정확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chan111@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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