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국오라클 전 임원이 국방·공공 소프트웨어 판매 과정에서 본사의 할인 제도를 악용해 수십억 원의 차액을 빼돌린 사실이 법원 판결로 드러났다. 실제로는 경쟁이 거의 없는 사업인데도 경쟁사가 있는 것처럼 꾸며 본사에서 최대 89%의 할인율을 승인받고, 발주처에서 받은 돈과 오라클에 지급한 돈의 차액을 여러 업체로 돌려 빼낸 것. 이렇게 조성된 돈 가운데 일부는 국방 사업 관계자에 대한 로비에도 사용됐다.
서울북부지방법원 제14형사부는 이 사건으로 기소된 한국오라클 전 상무 윤 아무개 씨에게 징역 5년과 벌금 5억 원을 선고했다. 총판업체 영업부장은 징역 2년 6개월, 자금세탁에 관여한 관계자는 징역 2년을 각각 선고받는 등 함께 재판에 넘겨진 13명에 대해서도 대부분 유죄가 인정됐다. 이번 판결은 1심 결과로, 아직 형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할인율 89%는 어떻게 승인됐나
오라클의 약 64억 원대 비자금 조성 사건은 국방부 산하 국방전산정보원, 국방통합데이터센터가 각각 발주한 ‘국방 온나라 2.0 전환’ 사업과 ‘군수통합 등 응용SW 이관’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오라클의 국내 법인인 한국오라클유한회사는 국내 공공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 시장 점유율 약 60%를 차지하는 사실상의 표준 공급자다. 오라클은 한국 법인을 통해 매년 국내에서 1조 원대 매출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약 1조 514억 원, 영업이익은 약 222억 7000만 원이었다.
이 같은 시장 영향력이 공교롭게도 이번 사건의 배경이 됐다. 나라장터를 통한 직접구매는 정가 대비 통상 52~54% 할인된 가격이 적용된다. 오라클 본사는 이보다 높은 할인율이 필요한 경우 별도의 승인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파트너사가 이례적인 할인을 요청하는 NSR(비표준 할인 요청)과 영업대표가 최종 할인율을 승인받는 DAS(할인율 승인 시스템)가 대표적이다.
영업대표 지위는 이 같은 할인 승인 절차를 활용할 수 있는 위치였다. 법원에 따르면 윤 씨는 실제 경쟁이 없는 사업에서도 NSR 요청서에 경쟁업체들이 있는 것처럼 허위 내용을 기재하도록 지시했고, 이를 바탕으로 예외적인 할인율을 승인받았다. 그 결과 ‘국방 온나라 2.0 전환 등 사업’에는 89%, ‘군수통합 등 응용SW 이관 사업’에는 81%의 높은 할인율이 각각 적용됐다.

‘유령’ 거래처로 차액 흘러들어가
정상적인 거래라면 발주처가 지급한 소프트웨어 대금은 판매업체와 총판을 거쳐 오라클에 정산돼야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오라클에 지급되지 않은 차액이 여러 중간업체로 흘러갔다.
이 과정에는 기술지원 인력이 없는 사실상 유령회사나 오라클 제품 공급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업체까지 동원됐다. 업체들은 실제로 물건이나 서비스를 거래한 것처럼 허위 세금계산서를 주고받으며 돈의 흐름을 정상적인 거래처럼 꾸몄다.
윤 씨와 가까운 사람들이 운영하는 회사도 이 과정에 포함됐다. 윤 씨가 감사를 맡고 동서와 처제가 대표와 이사로 있는 회사 역시 자금 이동 경로에 등장했다.
이 같은 방식으로 두 국방 사업에서 오라클에 정산되지 않고 빠져나간 돈은 약 64억 원에 달했다. 단순히 회사 돈을 한 번에 빼낸 것이 아니라 허위 할인으로 차액을 만들고, 여러 회사를 거치며 출처를 감춘 뒤 사용할 수 있는 자금으로 만든 것이다. 이 때문에 사건에서는 이 돈이 사실상 ‘비자금’처럼 활용됐다는 점이 핵심으로 떠올랐다.
같은 방식은 이후 다른 국방 사업에서도 반복됐다. 국방통합데이터센터가 추진한 ‘차세대 지능형 SDDC 기반 국방통합데이터센터 구축 사업’의 소프트웨어 구매 과정에서는 실제보다 부풀린 견적을 바탕으로 예산이 책정됐고, 최종 지급된 대금 가운데 10억 원이 정상 거래처가 아닌 별도 파트너사 계좌로 흘러간 것으로 파악됐다.
빼돌린 돈 일부는 로비에 사용
빼돌린 자금의 일부는 국방 사업 관계자를 상대로 한 로비에도 사용됐다.
윤 씨는 국방통합데이터센터에 파견돼 사업의 기획·관리·감독 업무를 맡았던 한국국방연구원 관계자에게 부부 동반 해외여행 경비를 지원하고, 배우자 명의로 허위 사업소득을 지급하는 등의 방식으로 총 4000만 원 상당을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양형 이유에서 “국민의 귀중한 세금으로 편성된 국가의 예산이 편취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며 “범행경위, 수법 등에 비추어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지적했다.

국내 공공 DBMS 시장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외산 소프트웨어의 ‘록인 구조’, 총판-파트너사를 다단계로 거치며 마진이 불투명하게 형성되는 유통 관행은 이번 사건에서만 나타난 문제는 아니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컴플라이언스 관련 대대적인 내부 교육을 하기 전까지는 총판업체들도 공공연히 이런 마진 꼼수를 자행해왔다.
IT 서비스 업계 관계자는 “공공 소프트웨어 영업에서 할인 승인은 워낙 복잡하고 제조사와 총판 사이에서 처리되는 부분이 많다“며 ”총판 입장에서는 벤더사 영업대표가 요구하면 서류를 맞춰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요청서를 그럴듯하게 쓰는 게 영업력으로 통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개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오라클은 소속 임원이 회사를 속여 판매대금을 빼돌렸다는 점에서는 피해자다. 다만 임원 한 명이 높은 할인율을 승인받고 총판과 파트너사를 통해 거액의 자금을 움직일 수 있었던 만큼 내부통제에 대한 지적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오라클 측은 이번 판결과 윤 씨에 대한 인사조치, 재발 방지 대책 등에 대한 질의에 “별도로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