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인공지능(AI)이 ‘만드는 능력’마저 평준화하는 시대다. 새로운 플랫폼이 빠르게 등장했다 사라지는 가운데 AI가 콘텐츠를 제작하고 디자인까지 할 수 있게 되면서 브랜드가 선택할 수 있는 표현 방식도 늘고 있다. 최소현 네이버 C&E(Creative&Experience) 부문장은 브랜드가 살아남으려면 무엇을 바꿀지보다 무엇을 지키고 덜어낼지 먼저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부문장은 29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 서울에서 열린 ‘브랜드비즈 컨퍼런스 2026’에서 ‘브랜드는 어떻게 살아남는가’를 주제로 마지막 강연에 나섰다. 2017년 시작해 올해로 10회를 맞은 이번 행사는 ‘THE NEXT ORIGINAL-모두가 잘 만드는 시대, 브랜드는 어떻게 고유해지는가’를 주제로 열렸다.
최 부문장은 1세대 벤처 기업인 프리챌 초기 멤버로 커리어를 시작해 2002년 창업한 브랜드 컨설팅 그룹 퍼셉션을 20년간 이끌었다. 2022년 12월 네이버에 합류한 뒤 현재는 디자인·브랜딩·마케팅·공간을 아우르는 사용자 경험 전반을 맡고 있다.
“빨간색을 노란색으로 바꾸면 성공할 수 있나요?”
브랜드를 만들거나 리뉴얼할 때 담당자들은 로고와 색상 등 눈에 보이는 요소부터 바꾸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먼저 살펴야 할 건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와 고객에게 지켜야 할 약속을 확인하고, 관성적으로 해오던 작업 중 덜어낼 것을 가려내는 작업이다.
퍼셉션 시절 최 부문장은 2012년 할리스 리브랜딩을 맡았을 당시 회사로부터 “빨간색을 노란색으로 바꾸면 우리가 성공할 수 있나요?”는 질문을 받았다. 최 부문장은 “만들 거냐 바꿀 거냐 이전에 이것들이 실제 사용자에게, 그리고 조직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먼저 얘기해야 했다”고 돌아봤다. 빨간색과 왕관은 고객이 할리스를 알아보고 선택하게 하는 긍정적인 자산이었다. 최 부문장은 이 두 요소를 유지하는 대신, 매장을 빨간색으로 채우던 방식을 걷어내고 고객과 바리스타의 동선 등 매장 경험을 새롭게 설계했다. 리브랜딩이 기존 자산을 모두 지우는 작업은 아니라는 의미다.

반대로 네이버의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 치지직(CHZZK)은 기존과 다른 접근 방식을 택했다. 2023년 말 출시를 준비하던 워크숍에서 나온 키워드는 ‘낯선 것’, ‘이상한 것’, ‘맞지 않는 것’이었다. 게이밍 스트리밍 플랫폼 후발주자로서 무난한 이름보다 사용자가 한 번 더 돌아보게 할 선택이 필요했다. ‘치지직’이라는 키워드에 대한 반응은 세대별 경험에 따라 달랐다. 최 부문장은 “우리 서비스는 어떤 경험을 진짜 해야 돼? 왜 그렇게 해야 돼?”라는 질문을 구성원들과 나눈다고 말했다. 조직에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사용자에게도 맞지 않는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그는 이 지점을 ‘지조와 아집’으로 정리했다. 최 부문장은 “익숙한 것들을 반복해 오면서 그 반복된 방법이 원칙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며 “지조와 아집은 정말 한 끗 차이다. 둘을 가르는 기준은 ‘우리 서비스가 어떤 경험을 줘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라고 강조했다.
‘하지 않을 것’ 어떻게 정하나…AI 시대 더 중요한 ‘기록과 회고’
네이버 합류 후에는 플랫폼의 정체성을 오프라인으로 확장하는 작업도 시도하고 있다. 지난 6월 코엑스에서 열린 인벤타리오 문구페어에는 5일간 4만 명 넘는 관람객이 찾았다. 네이버는 이 행사에 마스터 스폰서로 참여했다. 블로그·카페·지식iN에서 이어온 기록과 공유를 화면 밖에서도 돕자는 취지다.
라운지에서는 네이버의 브랜드 색을 크게 덜어냈다. 최 부문장은 “네이버를 ‘심심한, 평범한 모범생’ 같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이 특성은 플랫폼으로서 굉장히 큰 장점”이라며 “플랫폼이기 때문에 모두를 담을 수 있어야 된다. 행사에서 탐색·예약·결제·후기 등 이용자 여정을 각기 다른 팀의 서비스로 연결했다”고 밝혔다.

브랜드의 철학과 행동, 시각적 표현이 서로 어긋나지 않도록 하는 일도 중요하다. 최 부문장은 브랜드가 왜 존재하는지(Why), 목적을 어떻게 구현할지(How), 서비스와 제품 등 어떤 고객 접점을 만들지(What)를 구분해 살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항상 같은 문법만 쓰게 되면 지겨워, 지루해라는 얘기를 듣게 된다”며 본질은 지키되 표현 방식은 맥락에 맞춰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행객이 현지인처럼 도시를 경험하도록 돕는 네이버 지도의 ‘비로컬’ 캠페인은 지난해 5월 서울에서 시작해 경주를 거쳐 올여름 부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캠페인에서는 ’편리하고 효율적인‘ AI 생성 이미지 대신 실제 사람이 등장한다. 다른 작업의 생산성을 높여 아낀 자원을 진짜 표정을 담는 데 쏟았다는 설명이다.
옥외광고를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지 않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보는 세상이 됐어도 여행객은 공항과 기차역을 거쳐 도시를 직접 걷고, 사람들을 만나며 공간을 경험한다. 최 부문장은 “몸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실제 도시를 걸으면서 그 장면을 마주한다”며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만든 것들을 어느 맥락에서 보여줄 건지도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 부문장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수록 하지 않을 것을 정하는 판단도 중요해진다고 봤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 기록과 회고를 제시했다. 프로젝트에서 무엇을 기대했고 어떤 경험이 만들어졌는지, 다음에는 무엇을 이어가고 바꿀지 개인과 조직이 함께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고 다 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직접 몸으로 경험한 것을 기록하고 공유하면 다음 작업의 자산이 되고, 여럿의 배움이 조직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최 부문장은 “브랜드는 사람과 닮아 있고 생명체라고 생각한다”며 “언제 어떻게 생명을 다할지도, 언제 어떻게 더 성장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의미 있는 경험으로 관계를 맺으면 그 관계는 굉장히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