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화면 속 3D 아바타가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장애인의 전시 관람을 돕기 위해 마련한 수어 안내였다. 화면에는 신석기 시대 유물의 명칭과 설명글도 함께 떴다. 아바타가 마치 그 내용을 수어로 설명하는 듯했다. 하지만 실제 아바타가 안내한 수어의 뜻은 이랬다.
“죄송합니다. 수어가 없습니다”
지난 24일 오후 1시쯤 찾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출입문 옆에는 장애인 전시 관람을 돕는 ‘이용 장벽 없는 스마트 전시관’ 키오스크가 설치돼 있었다. 수어 콘텐츠가 구축되지 않은 전시품을 선택해도 3D 아바타는 정상적으로 등장해 수어를 시작한다. 수어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해설이 제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수어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이 확인하는 내용은 ‘해설이 없다’는 사실뿐이다.

713점 중 수어 해설 있는 유물은 270점
‘이용 장벽 없는 스마트 전시관’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전시 정보를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AI 기반 배리어프리 안내 서비스다. 키오스크와 모바일 기기를 통해 화면·음성·점자·수어 등 이용자 특성에 맞는 전시 정보를 제공한다. 청각장애인은 키오스크에서 수어 아바타나 수어 영상을 통해 전시품 설명을 확인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1층 정문과 측면 출입구, 2층과 3층에 모두 4대의 키오스크가 설치돼 있다.
이 사업은 2022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디지털 공공서비스 혁신 프로젝트’로 추진돼 이듬해 서비스를 시작했다. 당시 ‘문화 디지털혁신 시행계획’에는 수어와 언어 번역 등을 제공하는 관람 환경 조성을 위해 약 17억 원의 예산이 추진됐다. 2024년에도 관련 사업에 11억 원이 배정됐고 지난해에는 약 5억 원의 사업비가 책정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본관에서 시작한 서비스를 경주·광주·부여 등 소속 박물관으로도 확대했다.

그러나 서비스 시행 3년이 지난 지금도 수어로 설명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품은 일부에 그친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따르면 스마트 전시관에는 현재 상설전시품 가운데 대표성을 고려해 선정한 주요 유물 713점의 정보가 등록돼 있다. 이 중 3D 수어 해설이 구축된 전시품은 약 270점으로 전체의 38% 수준이다. 나머지 440여 점은 문자로는 설명을 볼 수 있지만 같은 내용을 수어로는 확인할 수 없다.
기자가 직접 키오스크를 이용해본 결과 박물관이 별도로 선정한 ‘대표 소장품’ 41점에는 수어 영상이나 3D 아바타를 이용한 해설이 제공됐다. 반면 수어 콘텐츠가 없는 전시품을 선택하면 화면에는 유물 명칭과 설명이 정상적으로 표시되지만, 아바타는 “죄송합니다. 수어가 없습니다”라고만 안내했다.
당초 계획과도 차이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22년 디지털 공공서비스 혁신 프로젝트 제안요청서에서 ‘DB화된 한국 수어의 비율’을 성과지표로 정하고 2025년까지 100% 완료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후 2023년 문화 디지털혁신 시행계획에서는 수어 콘텐츠 구축 완료 시점을 2027년까지로 미뤘다. 2024년에도 점자·수어 데이터베이스를 지속적으로 확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현재 박물관은 2027년 완료 여부 역시 확답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수어 콘텐츠 한 점 제작에 80만 원…내용 없는 수어 영상, 텍스트로 대체할 것”
국립중앙박물관은 제작 비용과 검수 절차 등을 이유로 수어 콘텐츠를 단계적으로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수어 콘텐츠 한 점을 제작하는 데 약 80만 원이 들어 100점만 해도 1억 원 가까이 든다”며 “제작한 수어에 대한 검수와 여러 자문 과정도 거쳐야 한다.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한 번에 구축하기는 어려워 단계적으로 계속 추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 개편도 변수다. 박물관 관계자는 “전시실 개편과도 맞물려 전시 부서와 협의해야 할 사항이 있어 구체적으로 몇 점을 추가할지 바로 답하기는 어렵다”며 “언제까지 마무리하겠다고 확답하기 어렵지만 수어로 제공할 수 있는 콘텐츠는 최대한 추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안내 방식도 바꾼다. 3D 아바타가 수어로 “죄송합니다. 수어가 없습니다”라고 설명하던 것을, 텍스트로 ‘수어 콘텐츠가 제공되지 않는다’고 표시할 예정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용자가 이 표현을 불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지적 등을 고려해 안내 방식을 개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