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제품을 사는 이유와 브랜드를 좋아하는 이유가 늘 같지는 않다. 운동화는 달리려고 사지만, 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끌릴 수도 있다. 놀이공원에서는 놀이기구를 타는 즐거움과 특정 캐릭터를 만나려는 기대가 겹친다. 물건의 기능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애착은 어디에서 생길까. 9월의 브랜드 사례를 관통하는 질문이다.
브랜드 커뮤니티 비마이비는 2026년 9월 ‘이달의 브랜드’로 입고 부문 프로-스펙스, 먹고 부문 삼진어묵, 머물고 부문 롯데월드, 즐기고 부문 민음사, 쓰고 부문 현대카드를 선정했다. 다섯 브랜드 가운데 그달을 대표하는 브랜드는 민음사다. 각자의 방식은 달랐지만, 제품을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는 ‘좋아할 이유’를 찾았다는 점에서 함께 읽을 만하다.
입고 : 프로-스펙스

새 운동화를 내세운 브랜드가 새 매장에서 먼저 펼쳐 보인 것은 달리는 사람들의 기록이었다. 지난 9월 7일 문을 연 프로-스펙스 서촌 플래그십 스토어는 춘천마라톤을 기념하는 전시 ‘위시 유 워 히어(Wish You Were Here)’로 방문객을 맞았다. 황영조와 권은주 등 러너 12명의 소장품, 달리기를 통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시를 채웠다.
이 공간은 과거 프로-스펙스 매장이 있던 건물의 골조를 살려 조성했다. 전시의 소재 역시 새로 찾아온 것이 아니다. 프로-스펙스는 2023년부터 춘천마라톤의 메인 후원사로 참여했다. 오래된 매장과 이어온 후원 관계가 브랜드의 새 출발을 알리는 재료가 됐다.
1981년 출범한 프로-스펙스는 올해 봄·여름 시즌부터 ‘모두를 위한 스포츠’를 내걸고 브랜드 재정비에 나섰다. 기록과 경쟁에 집중하기보다 각자 즐기는 스포츠를 이야기하겠다는 방향이다. 상품군을 러닝, 스포츠 스타일, 헤리티지, 스포츠의 네 가지로 정리하고 러닝화를 중심에 뒀다. 산업디자인 스튜디오 SWNA와 만든 데일리 러닝화 ‘SWNA SEAM 26’도 이 과정에서 나왔다.
봄에 제품으로 제시한 방향은 가을의 공간과 전시로 이어졌다. 운동화를 설명하는 데서 달리는 사람을 조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옮긴 것이다. 새 구호가 제품과 매장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오랜 역사를 기념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지금의 활동에 쓸 수 있는 이야기로 꺼내왔다는 점도 흥미롭다.
먹고 : 삼진어묵

해운대에서 출발한 러닝 프로그램의 도착지는 어묵 브랜드가 연 공간이었다. 삼진어묵은 러닝 스페셜티 스토어 ‘레이스먼트’와 함께 참가자들이 해운대점에서 ‘삼진어묵 THE WAVE 광안’까지 달리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달리기를 마친 뒤에는 공간을 둘러보고 제품을 체험하도록 구성했다.
9월 초 문을 연 THE WAVE 광안은 어묵을 골라 사는 데 집중한 기존 매장과 구성이 다르다. 바다와 광안대교를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하고, 어묵을 활용한 치즈스틱과 볶음밥 등을 마련했다. 부산 브랜드 ‘용호동할매팥빙수’와 개발한 팥빙수, ‘퍼지네이블’과 협업한 음료도 메뉴에 올렸다. 어묵만으로 매장을 채우는 대신 광안리에서 먹고 쉬는 시간을 제안했다.
1953년 시작한 삼진어묵은 앞서 2013년 ‘어묵 베이커리’를 선보였다. 반찬으로 익숙했던 어묵을 간식으로 골라 먹게 한 시도였다. 이번 공간에서는 제품을 먹는 방식에 더해 매장을 찾는 계기를 바꾸려 한다. 어묵을 사려는 목적 외에도 바다를 보거나 러닝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브랜드를 만날 수 있도록 했다.
그 연결에는 부산이라는 장소가 쓰였다. 지역 브랜드와 메뉴를 개발하고 해운대와 광안리를 잇는 달리기를 기획했다. 어느 도시에나 옮겨놓을 수 있는 팝업보다 삼진어묵의 출발점과 잘 맞는 선택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이런 방문이 어묵에 대한 관심으로 얼마나 이어지느냐다. 새로운 메뉴와 프로그램 속에서도 삼진어묵을 찾아야 할 이유가 남아야 한다.
머물고 : 롯데월드

퍼레이드 영상이 공개되자 관람에 그치지 않는 반응이 나왔다. 롯데월드 어드벤처 서울의 ‘다크 판타지 퍼레이드’ 캐릭터를 소재로 팬아트와 영상이 만들어졌다. 공식 X 계정에 올라온 퍼레이드 영상은 하루 만에 조회수 1000만 회를 넘겼다. 롯데월드는 캐릭터 이름을 공개하고 2차 창작 콘테스트를 열어 이 반응을 이어갔다.
‘기묘한 세계의 문’이 열리면서 이상 현상이 벌어진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성한 퍼레이드다. 독특한 캐릭터들이 서브컬처 팬들의 관심을 받았다. 테마파크가 준비한 공연을 보고 끝내는 대신, 관객이 캐릭터를 골라 자신의 그림과 영상으로 다시 표현했다. 운영사가 모든 이야기를 공급하지 않아도 캐릭터가 회자될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외부 작품을 활용한 가을 축제도 진행했다. 서울에서는 호러 애니메이션 ‘이토 준지 컬렉션’과 협업한 ‘기묘한 세계의 초대’를 선보였다. 대표 캐릭터 토미에 등을 공간에 구현하고 포토존, 미디어 맵핑, AR 퀘스트, 의상 대여를 마련했다. 작품의 특징을 반영한 상품과 먹거리도 함께 구성했다. 부산에서는 ‘메이플스토리’의 장소와 캐릭터를 옮겨오고 게임 음악을 활용한 버스킹과 퍼레이드를 진행했다.
이런 구성은 어떤 놀이기구를 탈지와는 다른 방문 이유를 만든다. 좋아하는 작품 속 장소를 걷고 캐릭터를 만나는 일이 하루의 목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체 퍼레이드 캐릭터에 팬들의 창작이 붙었다는 점은 외부 유명 작품과의 협업 못지않게 주목할 대목이다. 테마파크 안에서 만난 캐릭터가 밖에서도 그림과 영상의 주인공이 됐다.
즐기고 : 민음사

책을 읽을 때 쓰는 물건을 얻으려고 빵을 모으는 풍경이 생겼다. GS25와 민음사, 오늘의귀여움이 지난 8월 선보인 협업 빵은 출시 4주 만에 누적 판매량 100만 개를 돌파했다. 책 표지를 활용한 포장과 동봉된 책갈피가 관심을 받았고, 일부 책갈피는 중고 시장에서 빵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편의점 빵이 협업의 출발점은 아니었다. 민음사와 오늘의귀여움은 지난 6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캐릭터를 활용해 표지를 새로 꾸민 책과 굿즈를 먼저 선보였다. 이후 서울과 부산의 ‘문장 너머의 세계’ 팝업스토어로 이어졌고, 셀프사진관 하루필름에서는 협업 프레임도 출시했다. 도서전에서 시작한 디자인이 편의점과 사진관으로 옮겨간 흐름이다.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은 민음사는 여러 분야의 협업에 책을 연결하고 있다. 서울모닝커피클럽 등과 함께한 리딩 파티에서는 직접 고른 도서를 참가자들에게 제공했다. 갤럭시 Z 폴드8을 활용한 행사에서는 참가자들이 기기로 책을 읽고 민음사 마케터, 편집자와 북토크를 나눴다. 협업 상대와 장소가 바뀔 때마다 책을 고르고 읽는 행위가 다른 형태로 배치됐다.
활용할 수 있는 자산은 출간 목록에만 있지 않다. 유튜브를 통해 독자와 관계를 쌓아온 직원들도 행사의 참여 이유가 된다. 독자에게 익숙한 책의 디자인, 편집자와 마케터의 얼굴이 각각 상품과 만남의 소재로 쓰이는 구조다. 책을 좋아하는 마음이 책 구매 외에 어떤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짚었다는 점에서 이번 협업은 흥미롭다.
쓰고 : 현대카드

신용카드가 가상 국가의 신분증이 됐다. 현대카드가 지난 9월 15일 공개한 마우리치오 카텔란 협업 카드는 ‘현대카드 공화국’이라는 설정 아래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처럼 디자인됐다. 사진 자리에는 고객의 얼굴이나 작가가 만든 캐릭터를 넣을 수 있다. 전시장 벽에 바나나를 붙인 작품 ‘코미디언’을 떠올리게 하는 바나나 홀로그램도 담았다.
지난해 톰 삭스에 이어 선보인 두 번째 ‘아티스트 스페셜 플레이트’다. 고객은 작가의 전시를 관람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작업을 접한다. 지갑에 넣고 다니며 결제할 때마다 꺼내는 카드 자체가 협업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신용카드의 정형화된 외양을 신분증으로 바꾼 발상에는 결제 수단에 개인의 취향을 담겠다는 접근이 깔려 있다.
전시 활동도 이어졌다. 9월에는 웨인 티보의 국내 첫 대규모 회고전을 열고 케이크와 사탕 등 일상의 사물을 그린 그림부터 생애 마지막 자화상까지 작품 105점을 선보였다. 익숙한 그림들을 ‘질서’라는 관점에서 묶었다. 작가의 이름을 내세우는 일에 더해 작품을 어떤 시선으로 볼지 제안한 전시다.
오는 12월 25일부터 사흘간 열 예정인 ‘네이버 X 현대카드 THE SIX’는 제휴 관계를 활용한 행사다. 세계 정상급 여자 테니스 선수 여섯 명이 참가하며, 현대카드 회원과 네이버플러스 멤버십 회원에게 예매 기회를 제공한다. 네이버 현대카드 회원에게는 할인 혜택도 준다. 카드 제휴의 혜택으로 회원들이 경기장을 함께 찾을 기회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카텔란 협업 카드와 테니스 대회는 서로 다른 시도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는 고객이 직접 쓰는 물건에, 다른 하나는 회원에게 주는 참여 기회에 문화·스포츠를 담았다. 문화 행사를 후원한다는 이미지를 고객이 손에 쥐거나 이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형태로 바꾼 점이 이번 활동의 핵심이다.
9월의 브랜드 ‘민음사’

민음사가 9월의 브랜드로 선정된 이유를 빵 100만 개의 판매량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판매량은 협업 상품의 반응을 나타내지만, 빵을 산 사람들이 모두 민음사 독자가 됐다는 뜻은 아니다. 책갈피를 모으는 열기가 실제 독서로 이어지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그럼에도 민음사를 눈여겨볼 이유는 있다. 다른 분야의 상품에 출판사 이름을 붙이면서도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비교적 구체적으로 짚었다. 편의점에서는 책 표지와 책갈피를, 행사에서는 고른 책과 독자에게 친숙한 직원들을 내놓았다. 출판사가 이미 해온 일에서 협업의 재료를 찾았다.
다른 네 브랜드에서도 공간과 협업을 활용한 시도가 나타났지만, 민음사는 한 협업을 도서전과 팝업, 편의점, 사진관으로 이어가며 수집과 참여를 이끌었다. 제품이 달라질 때마다 새로운 정체성을 설명하기보다 기존 독자들이 알아볼 수 있는 요소를 가져갔다. 그 결과 서점 밖에서도 민음사에 관심을 표현할 방법이 생겼다.
출판사의 힘은 얼마나 많은 책을 냈는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 책이 독자의 생활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도 중요하다. 책갈피를 모으는 마음은 그 흔적의 한 형태다. 민음사는 책 밖에서도 독자가 좋아할 이유를 꺼내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