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국내 증시가 미국발 인공지능(AI) 투자 불확실성에 크게 흔들렸다. 미국 중간선거 이후 데이터센터 규제 강화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반도체 관련주를 중심으로 매도세가 확산했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높은 의존도와 외국인 자금 이탈이 맞물리면서 코스피가 일주일 만에 11% 넘게 하락했다. 다만 실제 AI 투자 축소 여부는 확인되지 않은 만큼 시장이 우려를 선제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코스피 일주일 새 11.7% 하락…반도체·소부장 종목까지 급락
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지난 6일 5059.69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주 종가(5730.74)보다 671.05포인트(11.71%) 하락한 수준이다. 같은 기간 코스닥도 11.06% 떨어졌다. 전날에는 코스피가 장 초반 8% 넘게 급락하면서 5000선이 무너졌고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돼 20분간 거래가 중단됐다.
반도체 관련 기업들의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한 주 동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16.13%, 20.17% 급락했다. 두 기업의 지분을 보유한 삼성물산과 SK스퀘어도 각각 12.34%, 19.29% 하락했다.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업종으로도 매도세가 확산하면서 대덕전자(-40.37%), 삼성전기(-27.26%) 등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졌다.
외국인의 매도세도 지수를 끌어내렸다. 지난 5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약 3조 4000억 원을 순매도한 데 이어 6일에도 약 2조 7000억 원어치를 팔아치웠다. 반면 개인과 기관은 순매수에 나섰지만 지수 하락을 막지는 못했다.
미국에서도 AI 관련 기업을 중심으로 주가가 급락했다. 5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5.52% 하락했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도 4.36% 내렸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12.25% 급락했다. 엔비디아(-9.3%)와 AMD(-17.3%)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하락세를 주도했다.
미국 민주당 압승에 데이터센터 규제 우려…AI 투자 기대 재평가
지난 3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상·하원 다수당을 확보하는 이른바 ‘블루웨이브’가 나타났다. 민주당은 그간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가 주민들의 전기요금 부담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기업의 비용 부담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이번 선거로 민주당이 의회 주도권을 확보하고 데이터센터 건설 제한을 공약한 주지사 후보들도 당선되면서 관련 규제 논의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데이터센터 건설에 제동이 걸리면 반도체 수요에도 여파가 미칠 수 있다. 인허가가 지연되거나 전력 확보 비용이 늘어나면 신규 시설 구축 일정이 늦춰지고 데이터센터에 공급되는 AI 가속기와 메모리 반도체의 수요 증가세도 둔화할 수 있어서다. AI 인프라 투자 확대를 바탕으로 성장해 온 반도체 기업들에 매도세가 집중된 이유다.
다만 AI 투자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은 선거 이전부터 이어져 왔다. 빅테크 기업들이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확보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동안, AI 서비스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투자 규모에 걸맞은 수준으로 늘어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여기에 데이터센터 건설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더해지면서 AI 관련 기업들의 성장 기대가 재평가되고 있다.
JP모건 프라이빗뱅크에 따르면 미국 상장 주요 반도체 기업을 추종하는 MVIS 반도체지수의 24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지난 6월 22.5배에서 이달 5일 기준 11.4배로 낮아졌다. 투자자들이 향후 반도체 기업들의 이익 성장과 AI 설비투자 확대가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전보다 신중하게 평가하고 있다는 의미다.
반도체 쏠림에 낙폭 확대…증권가 “AI 투자 축소 단정 일러”
국내 증시에서는 반도체 대형주의 높은 비중이 하락 폭을 키웠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합산 시가총액은 지난 6일 장중 기준 코스피 전체의 약 46%를 차지했다. 미국발 AI 투자 불안으로 두 기업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코스피 전체 지수에도 충격이 집중됐다.
증권가에서는 미국 데이터센터 규제 강화 가능성이 곧바로 AI 투자 축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미 착공한 데이터센터와 장기공급계약을 통해 확보된 반도체 수요까지 줄어든 것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이재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규제에 노출된 신규 증설 계획이 전부 취소되는 것은 아니고 이미 착공된 프로젝트와 장기공급계약에 기반한 수요까지 훼손됐다는 근거는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단기적으로 외국인 투매 강도만 완화돼도 낙폭 과대 정상화를 기대할 수 있는 구간“이라며 ”지금은 AI 투자 사이클의 종료를 단정하며 공포에 동참하여 투매할 때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단기간에 매도세가 집중된 만큼 당분간 시장 변동성은 이어질 전망이다. 강진혁 신한투자증권 연구원도 ”기본적으로 시장이 프라이싱 하는 것은 구조적 위기론보다는 속도의 둔화일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급격한 매도세의 여파로 다음 주 초까지 시장 변동성이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