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8월 3일 시장 점검회의를 연 지 나흘 만인 7일, 이재명 대통령은 부동산정책 2차 점검회의를 열고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집중 점검했다. 2022년 이후 누적된 공급 부진을 지적하며 행정·금융·재정·규제완화 수단을 총동원해 공급 시기를 앞당기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구윤철 부총리가 “태릉 골프장은 계획보다 1년 앞당겨 2029년 착공하겠다”고 보고하자 “2029년도 늦다”며 더 당기라고 지시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진다.

속도를 챙기는 것은 옳다. 문제는 속도를 챙긴다고 없던 아파트가 생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르면 이달 발표될 수도권 공급 방안은 2027~2029년 착공이 가능한 물량만 추리는 방향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시기가 늦거나 애매한 것은 모두 제외하고 지방정부와 협의를 다 마친 확실한 물량만” 내놓겠다는 것이다. 당초 예상됐던 5만 가구를 밑돌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온다. 서울 내 유휴 군용지와 국공유지가 주요 택지로 거론된다.
이 대목에서 시장은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 하나는 “드디어 실현 가능한 것만 발표하는구나”라는 안도. 다른 하나는 “그래서 지금 내 집값에 무슨 영향이 있는데?”라는 냉소. 유감스럽게도 후자가 훨씬 정확한 반응이다.
착공은 공급이 아니다
시장이 체감하는 공급은 발표가 아니다. 착공도 아니다. 입주다.
2027년에 착공하면 입주는 빨라야 2030년이다. 2029년 착공이면 2032년, 길게는 2033년이다. 지금 우리가 걱정하는 구간은 2026~2028년의 입주 물량 공백이다. 이 구간을 채워야 할 물량은 2023~2025년에 이미 착공됐어야 했고, 그 3년간의 인허가·착공 실적이 어땠는지는 모두가 안다. 이번에 발표될 대책은 그 구멍을 메우지 못한다. 애초에 메울 수 없는 시차의 정책이다.
지금의 불을 끄는 데 5년 뒤 도착할 소방차를 부르고 있는 셈이다.
물론 5년 뒤의 소방차도 필요하다. 문제는 정부가 그 소방차를 지금의 진화 대책인 것처럼 발표하고, 시장은 그걸 믿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발표와 체감 사이의 이 간극이 반복되면 남는 것은 정책 불신뿐이다.
새 땅이 아니라 재고 확인이다
이번에 거론되는 부지 이름들을 보자. 용산 캠프킴, 태릉CC, 과천 경마장. 낯설지 않다. 2018년에도, 2020년 8·4 대책에도 등장했던 이름들이다. 태릉CC는 2020년에 이미 1만 가구 공급 방안이 발표됐다가 주민 반발과 교통난, 인근 태강릉의 세계유산 보존 문제로 6년을 표류했다. 지금 6800가구로 줄여 다시 추진 중이다.
시장 참여자들은 이 지명들을 이미 자기 엑셀 시트에 넣어두고 있다. 6년 전 발표된 땅을 다시 발표하는 것을 신규 공급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재탕은 공급이 아니라 재고 확인이다.
“확실한 물량만 발표하겠다”는 원칙 자체는 백번 옳다. 그런데 그 원칙을 엄격히 적용할수록 발표할 수 있는 물량은 줄어들고, 남는 것은 이미 시장이 알고 있는 국공유지뿐이다. 신뢰를 얻기 위한 보수적 산출이 오히려 임팩트를 지우는 역설이다.
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정
과천을 보자. 정부는 경마장 115만㎡와 국군방첩사령부 28만㎡ 등 약 143만㎡를 하나의 공공주택지구로 묶어 9800가구와 과천 AI 테크노밸리를 조성하고 2030년 착공한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지난달 한국마사회가 제출한 자체 이행계획에 따르면, 경마공원 이전에 최소 16년 9개월, 이전 부지 확보에만 최소 6년 6개월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착공까지 남은 시간은 4년 남짓이다.
16년 9개월과 4년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은 정책이 아니라 마법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당초 공급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경마장은 경주로만 있는 곳이 아니다. 마사, 동물병원, 관람·경주 운영시설이 얽혀 있어 대체부지 확보와 신규시설 조성이 선행돼야 한다. 과천시는 교통·상하수도·교육시설 부담을 이유로 추가 공급 자체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용산도 마찬가지다. 국제업무지구 주택 공급량을 6000가구에서 1만 가구까지 늘리겠다는 구상이지만, 도시개발과 기반시설 계획을 총괄하는 서울시와의 협의가 필수다. 세대가 늘면 교통과 학교도 함께 늘려야 한다. 김용범 정책실장과 오세훈 시장이 지난 5일 긴급 회동한 배경이 여기에 있고, 오 시장은 회동 직후 “사전협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협의가 지연되면 2028년 착공은 무너진다.
태릉은 문화유산위원회 심의와 세계유산 영향평가라는, 부동산 정책 논리로는 통제할 수 없는 관문이 남아 있다.
즉 이번 대책의 핵심 사업지 세 곳 모두, 국토교통부가 결정권을 갖고 있지 않다. 서울시, 문화재청, 마사회, 국방부, 과천시가 각자의 시계로 움직인다. 공급대책의 주어가 정부 하나였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진짜 공급은 정비사업에 있다
서울시가 7일 개최한 ‘부동산 정상화를 위한 시민 대토론회’에서 나온 목소리가 정확했다. 공공택지 공급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재건축·재개발 등 민간 정비사업을 늘릴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규제완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신속통합기획 등으로 인허가 기간을 줄여 2031년까지 31만 가구 착공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31만 가구와 3만 2000가구. 숫자를 비교해 보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서울에서 대규모 신규 택지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남은 것은 낡은 집을 헐고 더 높이 짓는 방법뿐이다.
그런데 정부는 새 땅을 찾는 데 행정력을 쓰고 있고, 정작 조합이 설립되고 도면까지 나온 사업장 수백 곳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분양가상한제, 공사비 갈등, PF 경색 앞에서 멈춰서 있다. 없는 땅을 찾는 것보다 멈춰 선 시계를 다시 돌리는 게 빠르다.
그래서, 성공하려면
기대가 되지 않는 이유를 길게 썼으니 처방도 분명히 하겠다.
첫째, 가구 수가 아니라 날짜를 발표하라. 지금까지의 공급대책은 언제나 ‘몇만 가구’로 기억됐다. 그런데 시장이 알고 싶은 것은 총량이 아니라 일정이다. 언제 지구지정, 언제 보상, 언제 착공, 언제 입주인지. 그리고 그 일정이 밀렸을 때 누가 책임지는지. 가구 수는 약속이 아니다. 날짜가 약속이다.
둘째, 선결과제를 푼 뒤에 발표하라. 마사회 대체부지를 확정한 뒤 과천을 발표해야 한다. 세계유산 영향평가를 통과한 뒤 태릉을 발표해야 한다. 순서가 뒤바뀌면 발표는 부도수표가 되고, 부도수표가 쌓이면 다음 대책은 아예 계산에 넣지 않는다. “확실한 물량만 내놓겠다”는 원칙을 진짜로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셋째, 민간 정비사업의 병목을 풀어라. 인허가 기간 단축,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정상화, 분양가상한제 현실화, 공사비 분쟁 조정기구. 이 네 가지 중 하나만 제대로 풀려도 이번 6만 가구보다 큰 물량이 3년 안에 착공에 들어간다. 정부가 직접 짓는 것보다, 지으려는 사람이 지을 수 있게 하는 편이 언제나 빠르고 싸다.
넷째, 수요 정책과 공급 정책의 정합성을 맞춰라. 공급을 늘리겠다면서 초기 분양 수요를 대출로 묶으면 미분양 우려로 착공 자체가 미뤄진다. 8월 3일 발표된 세제개편안이 자산가치 중심 과세로 이동하면서 ‘똘똘한 한 채’ 압력은 오히려 커졌다. 공급의 문을 열면서 수요의 문을 잠그면, 그 사이에 낀 것은 건설사와 조합의 사업성이다. 땅을 준다고 아파트가 지어지지 않는다. 지을 사람이 지을 수 있어야 지어진다.
다섯째, 공백기의 전세시장을 직시하라. 2026~2028년 입주 물량 공백은 이번 대책으로 메울 수 없다. 이 구간을 견디게 해줄 것은 신축이 아니라 기축 임대차 시장이다. 등록임대 정상화, 임대인 세제 정비 같은 재미없는 정책이 지금 가장 필요한 정책이다. 전세는 실수요의 온도계이자 매매의 선행지표다. 전세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아무리 훌륭한 2032년 입주 계획도 시장을 진정시키지 못한다.
여섯째, 정부와 서울시의 로드맵을 하나로 합쳐라. 정부 6만 가구와 서울시 31만 가구가 따로 발표되는 한, 국민은 어느 쪽도 믿지 않는다. 두 계획을 단일 로드맵으로 통합하고, 사업지별 진행률을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대시보드를 만들어야 한다. 신뢰는 발표문이 아니라 추적 가능성에서 나온다.
결국, 크레인의 개수
대통령이 두 차례 연속 점검회의를 열었다는 사실 자체는 긍정적이다.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직접 챙긴다는 것은 부처 간 이견을 조정할 힘이 생겼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독불장군처럼 할 수 있는 방법도 없으니 협의를 잘해보라”고 했다는 대목도 반갑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확히 그 협의다.
다만 시장은 회의 횟수를 세지 않는다. 공급대책의 성패는 발표문의 두께가 아니라 그 땅 위에 선 크레인의 개수로 판명난다.
이번 발표가 또 하나의 ‘물량 발표’로 끝날지, 아니면 ‘적기 착공’의 출발점이 될지는 발표 당일이 아니라 발표 이후 6개월에 결정된다. 지구지정이 언제 고시되는지, 마사회 대체부지가 언제 확정되는지, 서울시와의 협의체가 언제 가동되는지를 보면 된다.
그때까지 시장은 발표를 믿지 않고 삽을 믿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