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2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서 낯선 장면이 연출됐다. 야당이 아니라 여당 의원들이 정부의 부동산 규제를 손봐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세조차 구하기 어렵고 전셋값도 많이 올라가고 있다”며 민간임대사업자 규제와 실거주 요건 강화 조치를 재검토해 달라고 요구했다. 같은 당 황희 의원은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재개발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을 완화하자고 건의했다. 홍지선 국토부 장관은 “지적하신 사항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이 장면을 환영한다. 정책의 방향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다. 아직 바뀐 것은 없다. 환영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시장이 1년 가까이 외쳐온 말을, 이제야 정책을 만드는 쪽에서 입 밖으로 꺼냈기 때문이다. 문제를 문제라고 인정하는 것, 그것이 모든 해법의 출발점이다. 늦었지만 반가운 변화의 신호다.

장관 말이 맞다, 그래서 규제를 풀어야 한다
홍 장관은 전월세난의 근본 원인이 “수요에 못 미치는 공급”에 있다고 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필자가 20년 넘게 반복해 온 말이기도 하다. 집값도, 전셋값도 결국 공급이 결정한다. 세금으로 가격을 누를 수는 없다.
그런데 바로 그 논리를 끝까지 밀고 가면 결론은 하나다. 전세 공급을 줄이는 규제부터 걷어내야 한다. 전세 물량은 누가 내놓는가. 신규 입주 물량을 제외하면, 집을 두 채 이상 가진 사람이 내놓는다. 임대사업자가 내놓는다. 이들이 전세 시장의 공급자다. 그 공급자에게 세금을 더 물리고, 등록 임대의 혜택을 걷어내고, 실거주 요건으로 집주인의 실거주를 강제하면 어떻게 되는가. 전세 매물은 사라지고, 남은 매물은 월세로 바뀐다. 지금 우리가 보는 그 장면이다.
장관은 규제 없는 지방에서도 전월세 매물이 부족하다고 반론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지방의 전세 부족은 지난 수년간 입주 물량이 급감한 결과다. 서울·경기의 전세 부족은 입주 물량 감소에 규제가 얹힌 결과다. 원인이 겹친 곳에서 한 가지 원인만 짚으면 처방도 반쪽이 된다. 공급 부족이 근본 원인이라면, 당장 늘릴 수 없는 ‘입주 공급’과 당장 늘릴 수 있는 ‘임대 공급’을 구분해야 한다. 후자는 규제를 푸는 것만으로 늘릴 수 있다. 돈도 들지 않는다.
팔라면서 팔 길은 막아 놓은 ‘물딱지’
황희 의원이 짚은 조합원 지위 양도 문제는 더 명확한 모순이다. 정부는 다주택자에게 집을 팔라고 한다. 세제까지 손봐 가며 매각의 출구를 열어 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은 조합설립인가 이후, 재개발은 관리처분계획인가 이후 원칙적으로 조합원 지위 양도가 제한된다. 조합원 지위가 승계되지 않으니,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입주권 없는 ‘물딱지’가 될 수 있다. 팔고 싶어도 매수자를 찾기 어렵다.
한 손으로는 밀고 다른 손으로는 잡고 있는 셈이다. 다주택자를 압박해 매물을 끌어내겠다는 정책 목표가 진심이라면, 가장 먼저 열어야 할 문이 바로 이 문이다. 정비사업 구역의 매물이 시장에 나오면 가격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그 매물을 사는 사람이 무주택 실수요자라면 더할 나위가 없다. 황 의원의 제안대로 양수인의 자격에 따른 예외를 마련해 무주택자·실수요자의 매수에는 승계를 인정하는 방안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투기 수요를 걸러 내면서 거래의 숨통은 틔워 준다.
이 규제는 애초에 ‘사는 사람’을 막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시장에서는 ‘파는 사람’을 가두는 족쇄로 작동한다. 정책이 설계 의도와 반대로 작동한다면 고치는 것이 맞다. 장관이 검토하겠다고 답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검토는 빠를수록 좋다.
우리는 이미 한 번 배웠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우리는 같은 실험을 했다. 다주택자를 조이고, 임대사업자 혜택을 걷어내고, 대출을 막고, 거래를 허가제로 묶었다. 스무 번 넘는 대책이 쏟아졌다. 결과는 모두가 안다. 서울 아파트값은 큰 폭으로 올랐고, 2020년 임대차법 이후 전셋값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세금을 올려 수요를 억제하면 가격이 잡힌다는 가설은 그때 이미 기각됐다.
그 시기에 확인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규제선은 가격의 천장이 아니라 가격이 모이는 자리가 된다. 규제지역으로 묶인 곳은 ‘정부가 보증한 좋은 입지’가 됐고, 똘똘한 한 채 수요는 오히려 그곳으로 쏠렸다. 규제가 양극화를 만든 것이다. 올해 규제지역과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다시 꺼내 든 뒤 벌어진 일도 다르지 않다.
정일영 의원의 말 가운데 가장 뼈아픈 대목은 따로 있다. “시장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불확실성”이라며 “두세 달마다 찔끔찔끔 유예하면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 정확한 진단이다. 규제 그 자체보다 더 큰 비용은 정책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이다. 집주인은 전세를 내놓을지 말지 결정하지 못하고, 매수자는 사도 되는지 알 수 없다. 모두가 관망하면 매물은 잠기고 거래는 멈춘다. 거래가 멈춘 시장에서 가격은 소수의 거래로 결정된다. 그렇게 결정된 가격이 바로 지금의 ‘신고가’다.
환영하되, 세 가지를 주문한다
첫째, 유예가 아니라 복원이어야 한다. 실거주 요건을 석 달 미루고, 임대사업자 과세를 반년 늦추는 식은 안 된다. 그것은 시장에 “반년 뒤에는 다시 조인다”는 신호를 보내는 일이다. 등록임대사업자에게 약속했던 혜택을 되돌리고, 실거주 의무는 폐지하거나 적용 범위를 명확히 좁혀야 한다. 한 번에, 분명하게, 되돌릴 때 비로소 시장은 움직인다.
둘째, 임대 공급과 입주 공급을 동시에 늘려야 한다. 민간임대 규제 완화는 지금 당장 전세 매물을 늘리는 길이고, 준주택 활성화와 정비사업 속도전은 중장기적으로 입주 물량을 늘리는 길이다. 둘 중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국감에서 나온 서초동 법조타운을 이전한 뒤 그 부지에 공공임대 1만 가구를 짓자는 제안도 이 맥락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도심 한복판의 국공유지를 주거로 돌리는 발상 자체는 옳다. 다만 공공임대 1만 가구가 강남권 전세난의 해법이 되려면 입지와 공급 시기, 임대 조건이 시장 수요와 맞아야 한다. 발표용 숫자가 아니라 입주할 수 있는 숫자여야 한다.
셋째, 다주택자와 임대사업자를 ‘적’이 아니라 ‘공급자’로 다시 정의해야 한다. 전세 공급의 절대다수는 민간이 맡는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 어떤 대책도 전세난을 풀지 못한다. 투기와 임대는 다르다. 집을 사서 세를 놓는 사람은 공공이 하지 못하는 임대주택을 대신 공급하는 사람이다. 그에게 합당한 세제와 예측 가능한 규칙을 주는 것이 세입자를 위한 길이다.
시장은 방향보다 신뢰를 본다
정책의 전향은 패배가 아니다. 틀린 것을 틀렸다고 인정하고 고치는 것은 가장 책임 있는 정치다. 여당 의원들이 국감장에서 꺼낸 말이 국감용 발언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장관의 “검토하겠다”가 연말 전에 “이렇게 바꾸겠다”로 바뀌기를 바란다.
전세난의 피해자는 다주택자가 아니다. 집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집주인을 벌주는 정책이 아니라, 당장 들어가 살 전셋집이다. 전셋집을 늘리는 가장 빠른 길이 눈앞에 있다.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지 않고도 임대 공급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묶어 둔 것을 풀면 된다.
시장은 정부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보다, 그 방향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를 본다. 찔끔 유예로는 신뢰를 살 수 없다. 이번 전향이 진짜 전향이 되려면 과감해야 하고 분명해야 한다. 늦게 돌아선 만큼, 더 멀리 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