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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 조용한 지배자
② ‘선박 가격의 5%’ LNG 화물창으로 로열티 챙기는 GTT

한국서만 30년간 7조 원 규모 로열티 받아…2세대 한국형 LNG 화물창 ‘KC-2’ 대체 추진

편집자 주
한국은 오랜 기간 ‘세계적 조선강국’ 타이틀을 지켜왔다. 그러나 배 안에 들어가는 핵심 기자재로 눈을 돌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LNG 화물창, 동적위치제어 시스템, 평형수 처리장치 등 선박의 성능과 안전을 좌우하는 분야마다 소수의 해외 기업이 원천기술을 독점하며 사실상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다. 이 ‘조용한 지배자’들의 실체와 로열티 제로를 향한 한국 조선산업의 도전을 짚어본다.

[비즈한국]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수주 시장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한국 조선업계의 뒤에는 프랑스의 엔지니어링 기업 GTT(Gaztransport & Technigaz)가 자리 잡고 있다. LNG 운반선 건조에서 가장 핵심적인 원가 비율과 고도의 기술력을 요하는 영역은 바로 LNG 화물창이다. 이 분야에서 GTT는 글로벌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한국 조선사들이 척당 수천억 원에 달하는 거대 LNG선을 건조해 팔더라도, 선가의 약 5%에 해당하는 막대한 기술 사용료(로열티)를 GTT에 지불해야 한다. 고질적인 기술 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추진된 국책 과제 KC-1의 실패와 대형 법적 분쟁,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2세대 한국형 화물창(KC-2)의 상용화 시도는 기술 자립이라는 목표가 얼마나 혹독한 검증을 요구하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GTT는 1963년 설립된 테크니가스(Technigaz)와 1965년 설립된 가스트랜스포트(Gaztransport)가 1994년 합병해 탄생한 기업이다. 과거 경쟁 관계이던 두 멤브레인 기술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GTT는 글로벌 멤브레인 화물창 원천 특허를 독점하게 되었다. GTT는 직접 선박을 건조하지 않고 라이선스 교부 및 엔지니어링 기술 서비스만을 제공하는 ‘팹리스(Fabless) 지식재산권’ 사업 모델을 운영 중이다. 현재 글로벌 LNG 운반선 발주 물량의 80~90% 이상이 GTT의 기술을 채택하고 있다.

GTT는 LNG 화물창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한다. GTT가 설계한 LNG 화물창 내부. 사진=GTT 웹사이트

압도적 기술력으로 구축한 독점의 성벽

LNG 화물창은 LNG 운반선 안에서 액화천연가스를 저장하는 초저온 탱크를 말한다. 천연가스는 영하 162도까지 냉각하면 액체가 되고 부피가 크게 줄어든다. 워낙 차갑기 때문에 일반 철제 탱크에 담으면 선체가 손상될 수 있다. 그래서 화물창은 LNG가 새지 않게 막는 얇은 금속막, 외부 열을 차단하는 단열재, 누출에 대비한 2차 방벽 등으로 구성된다. 화물창 성능이 좋을수록 운송 도중 열이 덜 들어와 LNG가 기체로 증발하는 양, 즉 BOG(Boil-off Gas)가 줄어든다.

GTT가 글로벌 LNG 화물창 시장에서 압도적인 지배력을 유지하는 배경에는 이러한 구조적 효율성과 견고한 시장의 신뢰가 자리하고 있다. 과거 LNG 운반선 시장의 주류는 공 모양의 독립 탱크가 갑판 위로 튀어나온 ‘모스(Moss) 방식’이었으나, GTT는 선체 내부 공간에 딱 맞춰 단열재와 막을 붙이는 ‘멤브레인 방식’을 완비했다. 멤브레인 방식은 동일한 크기의 선박에 더 많은 LNG를 적재할 수 있어 공간 및 운항 효율성 측면에서 우위를 점했다.

GTT의 주력 기술은 크게 Mark III 계열과 NO96 계열로 나뉜다. Mark III 시스템은 1.2mm 두께의 주름진 스테인리스 스틸을 1차 방벽으로 사용하고, 강화 폴리우레탄 폼(RPUF) 단열재를 배치해 열수축을 흡수한다. 반면 NO96 시스템은 상온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극저 열팽창 계수를 지닌 0.7mm 두께의 인바(Invar, 36% 니켈합금) 판을 1차 및 2차 방벽에 동일하게 배치해 열변형 자체를 원천 제어하는 구조다. 두 기술 모두 일일 증발률(BOR)을 0.07%/day 수준까지 낮추며 선박의 운항 경제성을 극대화했다.

GTT의 가장 강력한 진입장벽은 50년 이상 축적된 운항 기록에서 비롯된 신뢰성으로 구축됐다. 척당 수천억 원에 달하는 LNG 운반선 특성상, 검증되지 않은 화물창을 적용할 경우 주요 선급의 승인 거절 및 해상보험료 폭등이 발생하기 때문에 선주사와 에너지 메이저 회사들은 GTT 기술만을 고집한다. 여기에 국내 주요 조선 3사 역시 GTT 라이선스를 바탕으로 화물창 자동화 용접 설비와 시공 절차를 최적화했기에, 대체 기술 도입에 따른 공정 리스크를 피하려는 경향도 강하게 작용했다.

LNG 화물창 설계 및 건조는 초저온 열역학, 재료역학, 유체역학 기술이 집약된 극저온 공학의 결정체다. 첫 번째 기술적 난제는 ‘극저온 열수축 통제’다. 영하 162도의 LNG가 주입되면 급격한 온도 변화로 재료의 극심한 열수축이 일어난다. 선체 외판 탄소강과 내부 멤브레인 간의 열팽창 계수 차이에 따른 열응력이 수평 방향으로 균일하게 분산되지 않으면, 방벽 균열이나 용접부 파단으로 이어져 대형 누수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두 번째 난제는 ‘슬로싱(Sloshing) 하중’이다. 선박이 거친 해상을 운항할 때 화물창 내부의 액체 LNG가 요동치면서 화물창 벽면에 충격을 가한다. 특히 화물창 내부가 절반 정도 채워진 부분 적재 상태일 때 유동의 운동 에너지가 극대화되어 단열재 파손 및 멤브레인 변형을 유발한다. 따라서 수십 톤에 달하는 반복적 유체 충격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멤브레인과 보냉재 구조를 정밀하게 설계해야 한다.

한국 조선사들이 내는 로열티, 배 한 척당 130억 

한국 조선사가 GTT에 지불한 로열티 규모는 막대하다. 지난해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 때 산업통상자원부, 한국가스공사,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등에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조선소들이 1995년부터 최근까지 약 30년간 GTT 기술(멤브레인형)을 적용해 선박을 건조하며 지불한 누적 로열티는 총 7조 4097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선박 1척당 평균 13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액수다.

조선사별 누적 로열티 지불 규모를 보면 HD한국조선해양이 178척에 2조 4847억 원(척당 평균 140억 원), 삼성중공업이 188척에 2조 3993억 원(척당 평균 128억 원), 한화오션이 202척에 2조 4050억 원(척당 평균 119억 원)에 이른다.

더욱 문제는 앞으로 나갈 로열티 규모도 천문학적이라는 점이다. 국내 조선 3사가 이미 수주를 완료해 2029년까지 건조할 예정인 LNG선 162척의 로열티 약 2조 9332억 원을 GTT에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GTT의 독점 지배력은 국내 조선업계에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안겼을 뿐만 아니라 불공정 거래 행위로 이어졌다. GTT는 기술 라이선스 계약 시 화물창 특허권과 함께 자사의 ‘엔지니어링 기술 지원 서비스’를 반드시 함께 구매하도록 강제하는 결합 판매(끼워팔기) 관행을 유지했다. 국내 조선사들이 엔지니어링 역량을 확보한 후 2015년부터 특허권과 엔지니어링 서비스의 분리 계약을 수차례 요청했으나 GTT는 이를 거부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20년 11월 GTT의 이러한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25억 2800만 원을 부과했다. GTT는 이에 불복해 시정명령 취소 소송을 제기했으나, 2023년 4월 대법원이 공정위의 손을 최종적으로 들어주며 상고를 기각했다. 이 확정 판결로 국내 조선사들은 특허권만을 별도로 구매하고 자사 엔지니어링 기술을 활용함으로써 척당 상당한 금액의 엔지니어링 비용을 절감할 법적 근거를 확보하게 됐다.

KC-1의 잔혹사, KC-2C의 도전

GTT에 대한 기술 종속을 끊어내기 위해 정부, 한국가스공사, 국내 조선 3사는 2004년부터 10년간 약 197억 원의 연구개발비를 투입해 1세대 한국형 LNG 화물창 ‘KC-1’을 개발했다. KC-1은 가스공사의 육상 저장탱크 기술을 기반으로 설계됐으며, 1.5mm 두께의 주름진 멤브레인을 적용했다. 삼성중공업이 건조를 맡아 17만 4000㎥급 국적 LNG 운반선 2척(SK세레니티호, SK스피카호)에 탑재하고 2018년 초 상업 운항에 투입되었다.

그러나 운항 직후 화물창 외벽 일부의 온도가 허용 기준치 이하로 강하하는 ‘콜드스폿(Cold Spot)’ 현상이 관측됐다. 조사 결과 화물창 단열재 코너부 및 연결부의 설계 부실로 인해 영하 162도의 냉기가 선체 외판으로 직접 전달되는 열교(Heat Bridge)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선체 구조용 탄소강이 극저온에 노출될 경우 충격 인성이 급격히 저하되어 유리처럼 깨지는 취성 파괴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수차례 수리 시도에도 결함이 해결되지 않아 결국 선박들은 운항에 투입되지 못하고 묶이게 됐다. 이 사태는 대규모 법적 분쟁으로 번져 막대한 배상과 구상금 지급 판결이 내려졌다. KC-1의 실패는 LNG 화물창 개발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되고 말았다.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사진=삼성중공업 제공

현재는 KC-1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구조적 안정성과 단열 성능을 대폭 개선한 2세대 한국형 화물창 ‘KC-2C’ 개발 및 상용화가 추진되고 있다. 

소형선에서는 실증했지만 시장의 주력인 대형 LNG 운반선에 KC-2를 적용하기까지는 여전히 장벽이 높다. 대형 화물창은 유체 슬로싱 하중이 급격히 증가하는 데다 운항실적이 없는 신규 화물창을 경계하는 해외 선주사들의 보수적인 태도 때문이다.

이러한 수주 절벽과 리스크 분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해양수산부, 한국가스공사, 조선 3사가 참여하는 ‘LNG 화물창 국산화 워킹그룹’을 출범시켰다. 정부는 한국가스공사의 신규 국적선 발주 물량을 활용해 KC-2의 대형선 탑재 실증 기회를 제공하고, 운항 과정에서 발생할 리스크를 보증·분담하는 제도적 지원책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형 LNG 화물창 개발이 성공해, GTT가 지배해온 LNG 화물창 시장의 독점 구도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김민호 기자

중화학공업·에너지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사회와 삶에 관심이 많습니다.

goldmino@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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