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스타트업 한 곳에 최대 5억 원.”
구글이 초기 스타트업에 내건 지원 규모다. 현금을 주는 것은 아니다. 제미나이와 젬마 등 구글의 AI 모델과 관련 서비스를 이용할 때 쓸 수 있는 크레딧을 제공한다. 아직 매출과 자금력이 충분하지 않은 스타트업이 AI 모델 사용료 부담을 덜고 제품 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비용을 대신 부담하는 방식이다.

글로벌 AI 기업들이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수억 원 상당의 크레딧과 기술 지원을 제공하며 고객 확보에 나섰다. 초기 스타트업이 특정 AI 모델을 기반으로 제품을 개발할수록 이후 다른 생태계로 옮기기 어려워지는 만큼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을 선점하려는 모습이다.
구글, 오픈AI, 앤트로픽…빅테크 앞다퉈 크레딧 지급
구글은 자사 생성형 AI 모델을 활용하는 스타트업에 최대 35만 달러(약 5억 원) 상당의 크레딧을 지원한다. 대상은 최근 5년 이내 설립된 초기 AI 스타트업 가운데 프리시드·시드 투자를 받았거나 최근 12개월 안에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한 기업이다. 제미나이 등 구글의 AI 기술을 주요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에 활용하는 기업이 심사를 거쳐 지원을 받을 수 있다.
AI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 규모는 일반 스타트업보다 크다. 구글은 일반 초기 스타트업에는 2년간 최대 20만 달러(약 3억 원) 상당의 크레딧을 제공하지만, AI를 핵심 사업으로 하는 기업에는 추가 지원을 더해 최대 35만 달러까지 제공한다.
오픈AI는 벤처캐피털(VC)과 파트너 네트워크를 구축해 이들로부터 투자받은 스타트업에 크레딧을 제공한다. 마이크로소프트도 ‘Microsoft for Startups’ 프로그램 참여 기업에 오픈AI의 GPT 모델을 사용할 수 있는 15만 달러(약 2억 원) 상당의 크레딧을 제공한다.
앤트로픽 역시 별도의 ‘Claude for Startups’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초기 스타트업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클로드 API 무료 크레딧을 지원받을 수 있다. 지원 기간이 끝나면 별도의 이전 과정 없이 일반 요금제로 전환된다.

이 같은 AI 이용료 지원은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로도 확산하고 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지난 3월 앤트로픽과 협력해 회원사를 대상으로 ‘클로드 크레딧 지원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대상 기업에는 한 곳당 1만 달러(약 1400만 원) 상당의 클로드 API 크레딧이 제공된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외부 투자를 받지 않고도 상당 기간 AI 개발비를 아낄 수 있다. 특히 생성형 AI를 핵심 서비스로 만드는 기업은 사용자가 늘수록 모델 호출 횟수와 토큰 사용량이 함께 증가하기 때문에 API 비용이 주요 운영비를 차지한다. 무료 크레딧은 스타트업이 초기 이용자를 확보하고 사업성을 검증하는 기간에 이러한 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일종의 개발 자금 역할을 하는 셈이다.
미래 기업 고객 선점해야
그렇다면 AI 빅테크 기업들은 왜 수억 원의 크레딧을 제공할까. 배경에는 미래 기업 고객을 선점하려는 전략이 있다. 스타트업이 특정 AI 모델의 API를 이용해 서비스를 개발하면 프롬프트 구조부터 데이터 처리 방식, 애플리케이션 연결 방식도 모델에 맞춰 설계하게 된다. 이후 서비스 규모가 커지고 이용자가 늘어날수록 다른 모델로 이전하기 위해 들어가는 개발 비용과 시간이 커진다.
초기에는 무료 크레딧으로 비용 장벽을 낮춰 개발자를 끌어들이고 스타트업이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유료 기업 고객으로 전환하려는 의도다. 이른바 ‘록인(Lock-in) 효과’다. 초기 기업 한 곳에서 당장 벌어들이는 매출보다 향후 기업이 성장하면서 발생할 AI 모델 이용 수요를 선점하는 데 무게를 두는 셈이다. 크레딧이라는 지원 방식도 AI 기업에 유리하다. 현금을 직접 지급하는 것과 달리 대부분 자사 AI 모델과 플랫폼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최근 AI 업계에서 등장한 ‘토큰맥싱’도 이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토큰맥싱은 사용할 수 있는 AI 토큰을 최대한 확보한 뒤 업무와 제품 개발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소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스타트업이 무료 크레딧을 통해 AI 이용량을 빠르게 늘릴수록 향후 유료 이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진다.
투자금도 고객도 AI로…쏠림 심화
스타트업을 둘러싼 고객 확보 경쟁은 글로벌 벤처투자 시장에서 나타나는 AI 쏠림 현상과 맞물려 있다. KPMG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글로벌 VC 투자 규모는 5604억 달러(777조 원)로 최근 5년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2분기에만 2274억 달러(315조 원)가 투자됐는데 대형 투자 상당수가 AI 기업에 집중됐다.
미국 AI 기업 앤트로픽은 650억 달러(90조 원)를 유치하며 2분기 최대 투자 사례로 이름을 올렸다. 미국 AI 스타트업 프로젝트 프로메테우스는 120억 달러(16.6조 원), 중국 거대언어모델(LLM) 기업 딥시크는 74억 달러(10조 원)를 조달했다. 2분기 글로벌 VC 투자 상위 10개 거래에 들어간 금액만 1050억 달러(145조 원)에 달했다.
AI 기업의 성장 가능성에 막대한 자금이 몰리면서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도 함께 치열해지고 있다. 업계 경쟁은 이제 모델 성능을 넘어 초기 개발 단계부터 고객사를 자사 생태계로 끌어들이는 방향으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수억 원의 개발비를 대신 부담하면서까지 향후 AI 사용 수요를 확보하려는 ‘머니 전쟁’이 벌어지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