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내년 2월 20일부터 변호사업계에 ‘비밀유지권(ACP, Attorney-Client Privilege)’이 시행된다. 지난 1월 29일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비밀 의사교환을 제도적으로 보호하는 내용이 담긴 변호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덕분이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변호사에게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비밀유지 의무’만 부과했을 뿐,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등으로부터 이를 보호할 권리는 명문화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검찰에서 로펌과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경우도 있었다. 의뢰인과 변호사가 나눈 은밀한 이메일과 자문 보고서, 포렌식 결과물을 통째로 확보해 범죄 혐의의 핵심 퍼즐을 맞추려는 시도였다. 대한변호사협회와 서울변호사회 등 변호사단체가 변호사 보호를 명분으로 ‘핵심 입법 과제’로 추진했던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로펌 잔혹사 이제 끝?
최근 10년 동안 검찰의 기업 수사 트렌드 중 하나는 ‘로펌 압수수색’이었다. 지난 2016년 롯데그룹 비자금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은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전격 압수수색해 신격호·신동빈 총수 일가의 범죄 혐의 관련 증거를 확보하려 했다. 2022년에는 대장동 개발 특혜 비리 수사 과정에서 김만배 씨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태평양이 ‘선입금’ 형식으로 받은 변호사 비용을 문제 삼으려고 했다. 기업 수뇌부의 배임이나 사기적 부정거래의 고의(범의)를 입증하려는 하나의 ‘수사 트렌드’였다.
당연히 변호사업계는 거세게 반발했다.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털어놓은 솔직한 사실관계와 대응 전략 문건을 수사기관이 압수해 유죄의 증거로 삼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질식시키는 폭거”라고 주장했다. 대한변협 김정욱 회장과 서울변회 조순열 회장은 취임 후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비밀유지권을 꼽고 국회를 상대로 적극적인 설득전을 벌였다. 그리고 지난 1월 말 이를 법제화하는 데 성공했다.
법조계에서는 로펌 잔혹사가 끝날 수 있다는 관측이 가장 먼저 나온다. 특수 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 수사팀은 기업 본사의 이메일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로펌과 오간 자료’가 가장 예민하다고 추측하고 이를 확보하려 한다”며 “검찰은 로펌을 압수수색하려 하고, 로펌은 거꾸로 가장 예민한 자료를 숨겨야 해서 양측의 법리적 다툼이 상당했는데, 비밀유지권이 시행되면 중수청이나 경찰이 로펌을 압수수색하는 게 어려워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내 변호사’ 적용 여부 두고 이견
개정된 변호사법 제26조의2에 따라 변호사와 의뢰인은 소송, 수사, 조사를 위해 작성한 서류나 전자적 형태의 의사교환 자료에 대해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및 제출 요구를 당당히 거부할 수 있게 된다.
로펌들은 반색한다. 기업들을 상대로 예민한 사안을 더 적극적으로 자문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특히 ‘기밀 자료 관리’ 등 암암리에 로펌을 활용하던 자문 영역을 더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상당하다. 기업들을 상대로 세미나를 열고 적극적인 홍보에도 나섰다.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사내변호사의 비밀유지권 보호 대상 여부다. 사내변호사는 회사의 근로자이면서 동시에 변호사 지위를 갖다 보니, 비밀유지권이 적용되는지를 놓고 법적 다툼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로펌들은 사내변호사라고 하더라도 개업변호사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는 경우 품위유지의무와 비밀유지의무 등이 적용되는 만큼 새로 도입되는 비밀유지권이 적용될 것으로 해석한다.
다만 통상적인 법률자문이 아니라 일반적인 회사 업무를 수행하거나 변호사 휴업 상태에서 근무하는 경우에는 적용이 제한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형 로펌들은 업무 분장 규정을 개정해 일반 경영과 사업 및 법률 자문 업무를 엄격히 분리할 것을 기업에 권하고 있다. 동시에 사내 이메일 서명과 자문 보고서 상단에 ‘Attorney-Client Privileged(변호사-의뢰인 비밀 보호 자료)’ 문구를 명시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배포하는 등 ‘ACP 방어선 구축 방법’을 기업들에게 조언하고 있다.
대형 로펌을 압수수색한 경험이 있는 검찰 출신 변호사는 “신설 중수청의 수사 노하우가 아직 무르익지 않은 과도기여서, 대기업과 화이트칼라 범죄자들에게 가장 강력한 법률적 방패막을 쥐어준 구조가 될 수도 있다”며 “일부 총수들은 예민한 극비 자료를 로펌에 보관하기도 하는데, 비밀유지권이 도입되면 ‘로펌에 극비 자료가 있다’는 것부터 제시해야 하고, 이 자료가 위법적인 내용을 입증한다고 해도 압수수색 자체가 제한될 수 있지 않겠나. 앞으로 복잡한 지배구조 개편이나 일감 몰아주기, 배임 행위의 전모를 밝혀내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