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두산이 국내 유일의 반도체 웨이퍼 제조사 SK실트론을 최종 인수했다. 지난해 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 7개월여 만이다. 그사이 반도체 업황이 침체에서 초호황으로 급반전하며 협상이 예상보다 길어졌지만 양측은 2조 3000억 원 규모에 손을 맞잡았다.

두산그룹의 사업형 지주회사 ㈜두산은 지난달 31일 이사회를 열고 SK그룹 지주회사 SK㈜가 보유한 SK실트론 지분 70.6%를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SPA) 체결을 승인했다고 공시했다. 같은 날 SK도 이사회에서 매각 안건을 가결했다. 인수 금액은 2조 3000억 원 규모로, 매매대금 조정 절차를 거쳐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두산은 계약 체결과 동시에 매매대금의 10%를 계약금으로 지급하고, 나머지 90%는 거래 종결일에 지급한다. 인수 자금은 자체 보유 현금과 차입금으로 조달하며, 관계기관 승인 등을 거쳐 내년 1월 31일 거래를 종결할 방침이다.
몸값 안 올리고 ‘성과연동’으로 절충한 SK
이번 거래는 당초 올 상반기 마무리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SK가 두산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지난해 말과 달리 지난해 4분기부터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면서 SK실트론 몸값이 뛰기 시작했다. SK 안팎에서는 알짜 자회사를 성급하게 판다는 지적이 나왔고, 자본시장 일각에서는 매각 자체가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돌았다.

이번 계약에서 SK실트론의 기업가치는 5조 원 후반대 수준으로 평가됐다. 결과적으로는 지난해 협상 초기 거론됐던 기업가치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SK는 매각가를 끌어올리는 대신 향후 실적에 연동해 추가 수익을 나눠 갖는 조건을 계약에 담아 절충점을 찾았다.
SK는 2027년부터 2034년까지 8년간 SK실트론의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이 계약상 기준치를 웃돌면, 초과분의 40%에 지분율 70.6%를 곱한 금액을 추가로 받는다. 연도별 기준금액은 2027년 8900억 원에서 시작해 2034년 1조 7000억 원까지 단계적으로 높아진다. 여기에 특정 제품의 품질 인증 완료나 자산 매각 처분이익에 대해서도 지분율만큼 추가 정산을 받기로 하는 등 매각 이후에도 실트론의 성장 과실을 상당 부분 나눠 가질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SK는 이번 매각의 목적에 대해 “재무건전성 제고 및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재원 확보”라고 설명했다. SK그룹은 2024년부터 자산 효율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SK스페셜티 지분을 한앤컴퍼니에, SK바이오팜 지분 일부를 각각 처분했고, SK이노베이션도 계열사 자산 매각으로 유동성을 확보한 바 있다. 그 결과 219개에 달했던 SK그룹 계열사 수는 198개로 줄었고, 순차입금도 절반 가까이 낮아졌다.
업계에서는 이번에 확보한 재원 역시 AI 데이터센터·전력 등 SK가 추진해온 ‘AI 풀스택’ 전략에 재투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반도체 원재료 격인 웨이퍼 공급망이 타 그룹으로 넘어가는 셈이어서,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수직계열화 전략이 다소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도체 전공정 넓히는 두산
두산 입장에서 이번 인수는 반도체 사업 포트폴리오를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이라는 평가다. 두산은 2022년 반도체 테스트 기업 두산테스나를 인수하며 후공정 사업에 진출했고 전자BG를 통해 AI 가속기용 동박적층판(CCL)을 글로벌 빅테크에 공급하며 실적을 끌어올려 왔다. 여기에 반도체 전공정의 출발점인 웨이퍼 제조사 SK실트론까지 확보하면서, 웨이퍼 생산부터 반도체 테스트까지 이어지는 ‘반도체 및 첨단소재’ 사업 영역을 한층 강화하게 됐다.
두산그룹은 에너지(두산에너빌리티·두산퓨얼셀), 스마트 머신(두산밥캣·두산로보틱스), 반도체 및 첨단소재(전자BG·두산테스나) 3대 축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는데, 이번 인수로 세 번째 축의 무게감이 눈에 띄게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1983년 설립된 SK실트론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반도체용 실리콘(Si) 웨이퍼 제조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은 약 2조 원, 영업이익은 4000억 원을 웃돈다. 300㎜(12인치)와 200㎜(8인치) 웨이퍼를 생산하며, 특히 12인치 웨이퍼 분야에서는 글로벌 3위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웨이퍼는 반도체 전공정 전체가 이뤄지는 토대가 되는 소재로, 품질이 곧 생산 수율을 좌우해 진입장벽이 매우 높은 사업으로 꼽힌다. 실제 전 세계 실리콘 웨이퍼 시장은 SK실트론을 포함해 신에츠화학·섬코·글로벌웨이퍼스·실트로닉 등 5개사가 점유율 90% 이상을 나눠 갖는 과점 구도다. 반도체 호황 기대감 속에 이날 두산 주가는 상한가를 기록했다.
두산은 앞으로 웨이퍼 사업이 연평균 7%대 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보고, 2031년까지 SK실트론 매출을 약 3조 원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메모리용 웨이퍼에서는 글로벌 2위 달성을, 일본 기업들이 사실상 독점해온 비메모리용 웨이퍼 시장에서는 기술 개발과 신규 고객 확보를 통한 점유율 확대를 각각 노린다는 방침이다. 또 SK실트론을 별도로 상장하지는 않을 계획이라는 점도 밝혔다. 인수 이후에는 인수단을 운영하며 조직·사업 통합과 함께 합병을 포함한 구조 개편 방안도 검토할 예정이다.
SK㈜ 보유 지분은 이번 계약으로 정리됐으나,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개인 명의로 보유한 SK실트론 잔여 지분 29.4%는 매각 대상에서 빠졌다. 두산은 이와는 별도로 최 회장 측과 잔여 지분 인수 협상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공시했다.
두산 관계자는 “이번 인수 계약으로 두산은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지속가능한 수익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며 “안정적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두산 주주가치 제고에 더욱 힘쓸 것”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