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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소 쿠팡에 밀려 사라지는 문방구, ‘길’은 어디에…

문구 소매점 7년 새 절반 이상 줄어 4000개도 안 돼…국내 제조업체들 ‘딴 길’ 찾아 생존 모색

[비즈한국] “예전 같지 않죠. 그래도 꾸준히 찾아주시는 손님들 덕분에 버티고 있어요.”

한때 학교 앞을 지키던 문구점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와 디지털 교육 확대에 더해 다이소·쿠팡 등 대형 유통망이 문구 소비를 빠르게 흡수하면서다. 동네 문구점의 쇠퇴는 단순히 소매점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국산 문구를 판매하던 주요 유통망이 줄어들면서 제조업체의 판로까지 함께 좁아지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와 디지털 교육 확대, 다이소·쿠팡 등 대형 유통망의 성장으로 동네 문구점이 빠르게 사라지면서 국산 문구 제조업체의 판로도 함께 줄고 있다. 서울 강남구 한 문구 매장에 ‘문구는 미래 투자 용품입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사진=윤채현 기자

아이들은 줄고, 저가 유통점은 늘었다

서울 대학가에서 28년째 문구점을 운영하는 60대 김 아무개 씨는 올해 안으로 가게를 정리할 계획이다. 김 씨는 “다이소처럼 저렴한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 늘면서 손님들이 값싼 제품을 많이 찾는다”며 “고급 문구를 판매하며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유동인구가 크게 줄었고, 매출도 예전과 확실히 차이가 난다”고 덧붙였다.

문구 프랜차이즈 알파의 실적에서도 유통 현장의 어려움이 드러난다. 알파의 매출액은 2023년 958억 원에서 2024년 905억 원, 지난해 847억 원으로 감소세가 이어졌다. 지난해 영업손실은 21억 3000만 원으로 전년보다 345% 늘었고, 부채비율도 약 150%이던 것이 185%까지 상승했다.

업계에 따르면 전국 문구 소매점은 2018년 1만 곳에서 지난해 4000곳 이하로 절반 이상 줄었다. 학령인구 감소와 온라인 쇼핑 확산, 초저가 생활용품점의 성장 등이 동시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학교 주변 문구점의 입지를 더욱 좁힌 요인으로는 ‘학습준비물 지원제도’가 꼽힌다. 학교가 입찰을 통해 문구류를 일괄 구매한 뒤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지급하면서 학생들이 직접 문구점을 찾을 이유가 줄었다는 것이다.

한국문구유통업협동조합은 학교 입찰에 지역 문구점보다 다른 업종을 운영하는 업체나 이른바 페이퍼컴퍼니가 대거 참여하고, 낙찰 업체가 물량을 다시 다른 업체에 넘기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주장한다. 영세 문구점은 가격과 납품 조건에서 밀려 사실상 입찰 경쟁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문구소매업은 2015년 동반성장위원회로부터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대형마트 3사가 학용문구 18개 품목을 낱개로 판매하지 못하도록 보호받았다. 하지만 2022년 지정 기간이 종료된 이후 생계형 적합업종 재지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신 대형마트 3사와 문구업계가 자율 상생협약을 체결했지만 적용 대상이 제한적이라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구업계는 대형 유통사의 문구 판매 제한과 문구용품 부가가치세 면제, 전통 문구점의 무인 판매 시스템 도입 지원 등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문구업계의 침체 요인은 복합적이다. 학령인구 감소와 디지털 교육 확대, 다이소·쿠팡 등 초저가 유통망의 성장, 원재료·환율 부담까지 겹쳤다. 문구점 사무용품 코너에 포스트잇 제품이 진열돼 있는 모습. 사진=윤채현 기자

‘비용 올랐는데 가격 못 올려’ 모닝글로리, 모나미 등 실적 부진

문구점 감소는 유통업계만의 위기가 아니다. 과거 동네 문구점은 국산 문구 제조업체가 소비자를 만나는 핵심 판매처였다. 하지만 문구점이 줄고 다이소·쿠팡 등 대형 유통망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중소 제조업체의 판로도 함께 좁아지고 있다.

한국문구유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지역 문구점이 사라질수록 국내 중소 문구 제조업체의 판로도 함께 줄어든다”며 “예전에는 동네 문구점이 국산 문구를 판매하는 주요 유통망이었지만 지금은 그 연결고리가 끊기면서 제조업체들까지 어려움을 겪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 문구 제조업체의 실적도 부진하다. 3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모닝글로리의 지난해 회계연도인 2024년 7월부터 2025년 6월까지 매출액은 전년보다 6.3% 감소한 381억 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영업손실은 전년 대비 57.6% 늘었다.

모나미도 2023년 적자 전환 이후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1.5% 감소한 1310억 원을 기록했고, 영업손실은 58억 5300만 원으로 전년보다 54.2% 증가했다.

제조업체는 판매처 감소뿐 아니라 원재료 가격과 환율 부담까지 동시에 겪고 있다. 볼펜 몸체와 샤프, 파일, 노트 코팅 등에 쓰이는 폴리프로필렌(PP), 저밀도폴리에틸렌(LDPE), 폴리염화비닐(PVC) 등 플라스틱 원료 가격이 상승하면서 제조원가가 높아졌다. 수입 원료와 제품 비중이 높은 업체에는 환율 상승도 부담이다.

하지만 소비 위축과 초저가 제품과의 경쟁 때문에 제품 가격을 충분히 올리기는 어렵다. 원가는 오르지만 판매 가격은 묶이면서 수익성이 악화되는 구조다.

여기에 대형 유통업체가 판매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체 브랜드(PB) 제품을 개발하거나 해외에서 직접 제품을 들여오면서 기존 제조업체의 입지는 더 좁아지고 있다. 유통업체가 판매뿐 아니라 기획과 제조까지 주도하는 구조로 시장이 바뀌고 있는 셈이다.

문구업계 관계자는 “다이소나 쿠팡 같은 대형 유통업체는 판매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체 브랜드 제품을 개발하거나 직접 수입까지 하고 있다”며 “유통과 제조가 동시에 이뤄지는 현재 구조에서는 중소 제조업체들이 경쟁하기 어려운 만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취향 문구’ 부터 라이프스타일 까지…사업 다각화로 생존 모색

전통적인 학용·사무용 문구 시장이 줄어든다고 해서 모든 문구 소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도 문구를 기록이나 학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취향과 개성을 표현하는 상품으로 소비하는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다이어리 꾸미기와 스티커, 캐릭터 굿즈, 독립 문구 브랜드 등이 대표적이다.

아트박스 매장에는 디자인 문구와 캐릭터 상품, 생활용품 등이 함께 진열돼 있다. 전통 학용품 시장이 위축되는 가운데 취향과 개성을 앞세운 문구 소비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있다. 사진=아트박스인스타그램

아트박스는 이러한 변화를 일찌감치 보여준 사례다. 학용품 판매에 머무르지 않고 자체 캐릭터와 디자인 문구를 개발한 데 이어 생활용품과 패션잡화, 뷰티·취미 상품까지 취급하는 라이프스타일 매장으로 영역을 넓혔다. 핫트랙스와 텐바이텐을 비롯한 디자인 문구 유통채널도 문구를 기능보다 디자인과 취향을 보고 구매하는 상품으로 바꿔놓았다.

일본에서도 좋아하는 아이돌이나 캐릭터를 응원하는 ‘오시활(推し活)’ 문화와 맞물려 바인더와 파일, 컬러펜 등 취향형 문구가 새로운 수요를 만들고 있다. 한국의 다이어리 꾸미기와 캐릭터 굿즈 소비 역시 형태만 다를 뿐 비슷한 흐름이다. 문구 시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학교 앞 문구점에서 사던 필수품 시장과 소비자가 찾아서 구매하는 취향 상품 시장으로 갈라지고 있는 셈이다.

다만 국내 전통 문구 제조업체들이 이러한 변화의 수혜를 충분히 누리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취향 문구 시장에서는 제품의 기능이나 생산 규모보다 캐릭터와 디자인, 브랜드 인지도, 빠른 상품 기획력이 중요하다. 기존 제조업체가 강점을 지닌 대량생산형 학용품과는 경쟁 방식 자체가 다르다.

일부 문구 제조업체는 문구 시장 안에서 취향형 제품을 강화하기보다 문구 밖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모나미는 2023년 색조 화장품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사업에 진출했고, 모닝글로리는 위생용품과 가구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전통 문구 수요 감소에 대응해 생활용품 기업으로 외연을 확장하려는 전략이다.

결국 현재 문구업계의 위기는 문구 자체가 더 이상 팔리지 않아서라기보다 소비되는 문구의 종류와 판매되는 장소가 바뀐 데서 비롯된다. 값싼 학용품은 다이소와 온라인 유통망으로, 디자인과 캐릭터를 앞세운 상품은 전문 편집숍과 취향 브랜드로 이동했다. 그 사이에서 동네 문구점과 전통 제조업체가 새로운 소비를 충분히 흡수하지 못하면서 시장 재편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윤채현 기자

중소·벤처기업과 플랫폼, 콘텐츠 산업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쉽고 재미있게 쓰겠습니다.

coguszz@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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