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그 내막을 더욱 자세히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알쓸비법)’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범인필벌(犯人必罰)을 넘어 법인필살(法人必殺)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장면이 있다. 정의의 이름으로 잘못을 저지른 쪽에 극도로 무거운 제재를 가하는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면 처음에는 통쾌하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라는 불편함이 남는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여론의 흐름, 제재 기관의 성과 압박, 담당자의 공명심, 특정 정책 목표의 구현 등 여러 이유로 극단적인 제재를 내리는 일이 드물지 않다.
이렇게 보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표되는 함무라비 법전의 동해보복(同害報復) 원칙은 의외로 합리적이다. 흔히 가혹한 복수의 상징으로 알려졌지만, 뒤집어 보면 ‘입힌 피해만큼만, 그 이상은 안 된다’라는 제재의 상한선을 정한 규범이기 때문이다. 수천 년 전의 법이 오늘날 비례 원칙의 원형인 셈이다.

공정거래법 위반 사업자에게는 어느 정도의 제재가 적절할까. 문제는 과징금 액수다. 담합 과징금은 공정위 고시에 따라 관련 매출액에 부과 기준율을 곱하고 조정을 거쳐 산정한다. 계산식이 정해져 있다 보니 실무에서는 액수 자체는 크게 다투지 않는 영역으로 여겨졌고, 법원도 과징금 부과 여부와 액수에 관한 공정위의 재량을 폭넓게 인정한다.
그러나 재량에도 한계가 있다. 대법원은 입찰 담합 과징금이 위법성 정도뿐 아니라 그로 인한 이득의 규모와도 균형을 이뤄야 하고, 이 균형을 잃으면 비례 원칙에 위배돼 재량권의 일탈·남용이 된다고 본다. 이 법리가 실제로 작동한 사례가 서울고등법원의 두 판결이다.
첫째는 레미콘 협동조합 사건이다(서울고법 2019. 9. 18. 선고 2018누79119 판결). 지역 레미콘 협동조합 세 곳이 2015년 관수 레미콘 입찰에서 각자 관할 권역에서는 낙찰받고 인접 권역에서는 들러리를 서주기로 합의했다. 공정위는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합계 약 70억 원(각 22억 9000만 원, 21억 3300만 원, 25억 9600만 원)을 부과했다.
법원은 담합 자체는 인정해 시정명령이 적법하다고 봤지만, 과징금 납부 명령은 취소했다. 담합의 이익은 실제 납품한 조합원 업체에 돌아갔고, 조합은 배정 금액의 0.7~1.0%를 수수료로 받았을 뿐이었다. 최대 수수료율을 적용해도 조합의 이득액은 과징금의 절반 정도에 그쳐, 이득을 전부 환수당하고도 그만큼을 더 내야 하는 구조였다.
조합들은 이미 당기순손실 상태여서 과징금 1회분만 내도 출자금이 잠식될 우려가 있었고, 법원은 “과징금을 전부 납부하기 전에 더는 존립할 수 없게 될 개연성이 있다”라고 판단했다. 레미콘은 90분 안에 타설해야 하는 제품이어서 영세 업체가 조합을 통하지 않고는 관수 입찰에 참여하기 어렵다. 법원은 공정위가 이 같은 조합의 고유 기능과 존립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고 봤다.

둘째는 PHC 파일(콘크리트 말뚝) 협동조합 사건이다(서울고법 2020. 12. 2. 선고 2020누44765 판결). 조합은 제조사 17곳과 함께 약 6년간 관수 PHC 파일 입찰 담합에 가담했고, 공정위는 조합 명의로 체결한 계약 금액 약 2733억 원 전부를 관련 매출액으로 삼아 과징금 39억 1000만 원을 부과했다. 정작 물량을 납품하고 이익을 얻은 구성원사에는 과징금을 부과하지 않았다.
법원은 이 과징금도 취소했다. 조합이 얻은 이익은 계약 금액의 0.6%인 수수료 약 16억 1900만 원인데, 과징금은 이익의 약 2.4배였다. 과징금은 자본금과 잉여금을 합친 금액(19억 원)보다 많았고, 처분 당시 현금성 자산은 과징금의 1.95%에 불과했다.
이익 대부분을 가져간 구성원사는 빠지고 수수료만 받은 조합이 전부를 떠안는 것도 형평에 어긋난다고 봤다. 눈여겨볼 대목은 “조합이 재무제표를 내지 않았으니 부담 능력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공정위 주장에 관한 판단이다. 법원은 과징금 고시가 내부 사무 처리 준칙에 불과하고, 공정위가 자료 제출 기회를 충분히 주거나 스스로 조사했다고 볼 사정이 없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처분 후 2년간 6회 분납을 허용한 것 역시 액수의 과다 여부와는 무관하다고 판단했다.
두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공정위도 수수료 구조나 부담 능력을 일부 감경 사유로 반영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득액과 존립 가능성이라는 핵심 사정은 소송 단계에 가서야 제대로 평가됐다는 점이다. 실제 얻은 이익의 몇 배에 이르는 과징금은 정당한가. 납부 능력이 사실상 없는 사업자에게 계산식대로 나온 금액을 그대로 부과하는 것은 정당한가. 과징금 때문에 문을 닫는 것은 당연한 귀결인가. 진지하게 따져볼 문제다.
최근에는 제재의 수위뿐 아니라 방식을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공정위는 올해 밀가루 담합에 역대 최대 규모인 671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고, 제지·제분 담합 사건에서는 가격을 다시 정하라는 ‘가격 재결정 명령’까지 내렸다. 그런데 서울고법은 지난 9월 업체들의 신청을 받아들여 이 명령의 효력을 정지했다. 시장 경제에서 가격은 누가 어떻게 정하는 것이 정당한지, 국가가 사업자를 대신해 가격을 정할 수 있는지에 관해 많은 물음이 남아 있는데도 강한 처분을 너무 쉽게 선택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징금은 위반행위에 대한 제재이면서 부당이득을 환수하는 수단이다. 억지력을 위해 이득보다 무거운 제재가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제재가 위반의 크기와 무관하게 커져 사업자의 존립 자체를 끊는 데까지 이르면, 그것은 시장 질서의 회복이 아니라 시장 참여자 하나를 지우는 일이 된다. 특히 수수료만 받는 조합처럼 계약 금액과 실제 이익이 크게 다른 구조에서는, 산식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기에 앞서 실제 이득과 부담 능력부터 확인해야 한다. 사업자 쪽에서도 조사·심의 단계부터 재무 자료와 이익 구조를 적극적으로 내놓아 이 문제를 쟁점으로 만들어야 한다.
법 위반에 관한 적정한 수준의 제재는 그동안 너무 가볍게 여겨져왔다. 함무라비 법전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가르쳐 주는 것은 복수의 정당성이 아니라 절제의 필요성이다. 이제는 숙고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