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울보지만 다정한 치이카와, 밝고 긍정적인 하치와레, ‘야하’와 ‘우라’를 외치며 제멋대로 뛰어다니는 우사기. ‘뭔가 작고 귀여운 녀석’에서 이름을 따온 치이카와의 첫인상은 그저 귀엽다. 하지만 치이카와가 살아가는 세계도 우리의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시험에 떨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위험에 맞서야 한다. 그 속에서도 치이카와와 친구들은 작은 행복을 찾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최근 국내 극장가와 굿즈 시장을 휩쓴 치이카와의 매력을 들여다봤다.

일본 애니메이션 ‘치이카와(ちいかわ)’는 일본 일러스트레이터 나가노 작가가 2017년 X(옛 트위터)에 올린 그림에서 시작됐다. ‘이렇게 살고 싶다’는 작가의 바람에서 탄생한 캐릭터가 인기를 얻으면서 만화로 발전했다. 2022년에는 일본 후지TV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되기 시작했다. 단행본은 현재 누적 판매 500만 부를 넘어섰다.
국내에서는 대원미디어가 ‘먼작귀’라는 이름으로 치이카와의 브랜드 라이선싱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용산에 공식 굿즈 매장을 열고 오프라인 사업도 확대하는 중이다. 9월 30일에는 극장판 애니메이션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이 개봉해 팬들의 관심이 영화관으로 이어지고 있다.
개봉 일주일 만에 80만 명 관람
8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은 전날 누적 관객 80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지 일주일 만이다. 첫날에는 12만 명 이상이 관람하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일본에서는 지난 7월 개봉해 개봉 10주 차에 누적 관객수 1155만 명을 동원했다.
영화의 인기는 굿즈 구매 경쟁으로도 이어졌다. 선착순으로 주는 캐릭터 피규어와 포스터를 받으려는 팬들이 몰리면서 일부 극장에서는 첫 회차에 물량이 동났다. 특전과 한정 상품은 개봉 직후부터 중고거래 플랫폼에도 등장했다. 8일 오전 번개장터에서 ‘치이카와’를 검색한 결과 관련 매물이 3만 9593개에 이르렀다.
치이카와 공식 굿즈 매장에도 신상품을 구매하려는 방문객이 몰렸다. 지난 7일 치이카와샵 용산점에는 오전 10시 기준 대기 인원이 1253명, 예상 대기시간은 11시간 9분에 달했다. 매장 영업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시작하지만 전날 밤부터 줄을 서는 이른바 ‘오픈런’이 이어졌고 오전 9시쯤에는 현장 대기 접수마저 마감됐다.


일하고 시험 보고 위험에 처하는…귀엽지만 녹록지 않은 세상
치이카와는 작고 귀여운 생명체들이 모여 살아가는 세계를 그린 작품이다. 이들은 함께 음식을 먹고 놀거나 작은 행운에도 기뻐하지만 풀을 뽑는 등의 일을 하고 보수를 받아 생활한다. 작품 속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사거나 원하는 물건을 얻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기도 한다.
열심히 노력한다고 언제나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도 아니다. 치이카와와 하치와레는 더 나은 조건으로 일을 하기 위해 풀 뽑기 검정 시험을 준비한다. 함께 공부하고 시험을 치르지만 하치와레는 합격하고 치이카와는 떨어진다. 시험에 떨어진 치이카와는 친구의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도 자신의 결과에 속상해하며 눈물을 흘린다.
평범한 일상에 예상치 못한 위험이 찾아오기도 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생물이 나타나거나 평범해 보이던 존재가 갑자기 위협적으로 변하고 치이카와 일행이 직접 사냥을 하는 이른바 ‘토벌’에 나서는 상황도 벌어진다. 애니메이션 제작진 역시 치이카와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겁게 노는 이야기뿐 아니라 상당히 ‘혹독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고 설명한다.
극장판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러한 세계관이 그대로 확장된다. 치이카와 일행은 특별한 섬으로 초대한다는 안내를 받고 섬으로 향하지만 그곳에서 거대한 생명체인 세이렌이 주민들을 데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치이카와와 친구들은 세이렌을 토벌하려는 계획에 휘말리며 예상치 못한 위험에 맞닥뜨린다.

‘작고 약해서 더 마음이 간다’ 어른들이 열광하는 이유
치이카와는 소년만화 속 강한 주인공과는 거리가 멀다. 겁이 많고 쉽게 운다. 열심히 준비한 시험에도 떨어진다. 특별한 능력으로 위기를 해결하거나 노력해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실패하면 속상해하고 무서운 일이 생기면 겁을 먹는다. 하지만 시험에 떨어져도 다음 날이 찾아오고 다시 일을 하거나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일상을 이어간다.
이러한 모습은 경쟁과 실패에 익숙한 성인들의 현실과 맞닿는다. 일본 주간 경제매체 ‘도요게이자이’ 역시 치이카와의 인기 배경을 분석하면서 일하고 좌절을 겪는 캐릭터들의 모습에 주목했다. 특히 노력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풀 뽑기 시험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이에 공감하는 직장인이 많다고 짚었다.
어린이용으로 보이는 캐릭터가 어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현상은 과거 펭수 열풍을 떠올리게 한다. 펭수는 귀여운 외모에 거침없는 말과 솔직한 태도를 더해 어른들이 차마 꺼내지 못한 속마음을 대신 전했다. 반대로 치이카와는 작고 약한 존재가 애쓰고 좌절하는 모습으로 공감을 얻는다. 펭수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줬다면 치이카와는 감추고 싶었던 마음을 대신 보여주는 셈이다. 표현 방식은 달라도 캐릭터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하고 위로받는다는 점이 닮았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빼놓을 수 없다. 치이카와와 하치와레, 우사기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서로를 돕고 작은 성취에도 함께 기뻐한다. 치이카와가 겁을 먹거나 눈물을 흘려도 친구들은 나무라지 않는다. 서로 부족한 모습을 받아들이고 어려울 때 곁을 지키는 모습은 치이카와가 살아가는 험난한 세계와 대비된다.
치이카와의 이야기가 전하는 위로도 여기에 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르지 않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일상에는 여전히 작은 즐거움과 소중한 관계가 남아 있다. 거창한 성공이나 극적인 성장 없이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치이카와는 현실을 살아가는 어른들에게도 공감을 준다. 귀여운 캐릭터를 보며 웃다가도 어느 순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