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뉴욕에 가면 누구나 한 번쯤 센트럴파크를 걷는다. 마천루 사이로 끝없이 이어지는 숲과 잔디밭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뉴욕은 어떻게 맨해튼 한복판에 이런 땅을 남겨 놓았을까.” 아파트를 지어도 되고, 호텔을 지어도 되고, 빌딩을 올려도 될 땅이다.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땅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뉴욕은 그곳에 건물을 짓지 않았다.

843에이커, 약 3.4㎢를 공원으로 남겼다. 지금은 매년 4200만 명 이상이 찾는다. 우리는 흔히 여기서 감탄한다. “역시 뉴욕은 도시계획을 잘했다.” 그런데 센트럴파크의 역사를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센트럴파크는 원래부터 비어 있던 땅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1850년대 뉴욕에는 공원이 필요했다
19세기 중반 뉴욕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사람이 몰려들고 건물이 들어서고 도시는 점점 북쪽으로 확장됐다. 주거환경은 혼잡해졌고 시민들이 자연을 접할 공간은 부족했다. 뉴욕은 이대로 도시 전체를 건물로 채워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1853년 뉴욕주 의회는 맨해튼 59번가에서 106번가 사이 약 775에이커를 대규모 공원으로 만들도록 법으로 정했다. 이후 공원의 범위는 지금의 110번가까지 확대됐다. 그리고 1858년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와 칼버트 복스가 설계한 ‘그린스워드 플랜’이 채택됐다.
그들이 만들고 싶었던 것은 단순한 정원이 아니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나 들어올 수 있고, 복잡한 도시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을 만날 수 있는 ‘모두를 위한 공간’이었다. 센트럴파크는 애초부터 대도시에 필요한 일종의 민주적 공공공간으로 계획됐다.
지금 보면 놀라운 결정이다. 도시가 성장할 것이 뻔한데도 맨해튼 한가운데 거대한 땅을 비워 두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그 결정에는 대가가 있었다.
그곳에는 1600명이 살고 있었다
당시 센트럴파크 예정지는 오늘날처럼 빌딩이 빽빽한 주거지역은 아니었다. 습지와 바위 언덕 사이에 작은 농장과 작업장, 집들이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빈 땅은 아니었다. 공원 조성을 위해 약 1600명의 주민이 강제수용으로 이주해야 했다. 토지 소유자에게 보상이 지급됐지만 상당수는 보상가격이 지나치게 낮다고 반발했다. 1857년 말까지 주민들은 결국 모두 떠나야 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이 지금 센트럴파크 서쪽 80번가대에 있었던 세네카 빌리지(Seneca Village)다. 1825년부터 형성된 이 마을에는 1855년 무렵 약 225명이 살았다. 흑인이 약 3분의 2, 아일랜드계 주민이 약 3분의 1이었다. 집 약 50채와 교회 세 곳, 학교와 묘지도 있었다. 특히 당시 뉴욕의 흑인 사회에서는 드물게 상당수 주민이 자신의 집과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재산을 가진 흑인 남성에게 투표권이 연결돼 있었기 때문에 토지 소유는 단순한 재산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그들에게 세네카 빌리지는 집이었고, 공동체였고, 어렵게 얻은 자유의 기반이었다. 그리고 그 마을이 사라졌다. ‘모든 시민을 위한 공원’을 만들기 위해 누군가는 자신의 집을 떠나야 했다. 센트럴파크의 역사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장면이다.
그런데 170년이 지나고 보니 생각이 달라진다. 만약 당시 뉴욕이 이런 결정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센트럴파크 자리에도 건물이 들어섰을 것이다. 처음에는 주택이었을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파트와 호텔, 오피스와 상업시설로 바뀌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맨해튼 한복판의 거대한 녹지를 갖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센트럴파크는 현재 843에이커 규모의 숲과 잔디밭, 호수, 운동장, 산책로를 품고 있고 매년 4200만 명 이상이 이용한다. 1만 8000그루가 넘는 나무는 도심의 열을 낮추고 공기를 정화하며, 공원은 수많은 야생생물의 서식지가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센트럴파크를 이용할 때 아파트를 소유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맨해튼에 집 한 채 없는 관광객도 들어갈 수 있다. 억만장자도 뛰고, 학생도 뛰고, 직장인도 도시락을 먹고, 아이도 잔디밭에서 뛴다. 땅값은 극도로 비싸졌지만 그 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여전히 돈을 내지 않아도 들어갈 수 있다.
이것이 공공공간의 힘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짓지 않은 땅’이 주변을 더 비싸게 만들었다
부동산의 관점에서도 센트럴파크는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도시가 성장하면 좋은 땅에는 최대한 많은 건물을 짓고 싶어진다. 경제적인 계산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센트럴파크는 반대였다. 가장 가치 있는 땅 가운데 거대한 면적을 아예 개발하지 않았다. 그 결과 공원 자체에서 분양수익은 한 푼도 나오지 않았지만, 공원이 만들어 낸 환경과 희소성은 주변 지역의 가치를 높였다.
우리는 부동산의 가치를 이야기하면서 흔히 건물만 본다. 용적률이 얼마인지, 몇 층까지 올릴 수 있는지, 아파트를 몇 가구 지을 수 있는지를 계산한다. 하지만 도시의 가치는 무엇을 지었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때로는 무엇을 짓지 않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공원, 광장, 학교, 강변, 문화시설, 산책길이 그렇다. 도시가 모든 땅을 돈이 되는 시설로 채워버리면 어느 순간 도시 전체의 매력이 떨어진다. 센트럴파크가 가르쳐주는 첫 번째 역설이다. 가장 비싼 땅을 남겨 놓았기 때문에 주변 땅이 더 비싸졌다.
하지만 우리는 세네카 빌리지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고 센트럴파크의 성공이 과거의 모든 결정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공익을 위해 필요한 사업이라고 해도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에게 집은 지도 위의 필지가 아니다. 추억이고 생활이고 관계다. 그래서 센트럴파크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두 문장을 동시에 받아들여야 한다.
센트럴파크를 만든 것은 위대한 도시계획이었다. 동시에 그 과정에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있었다. 둘 중 하나를 지우면 역사를 절반밖에 보지 못한다. 공공개발을 무조건 선이라고 할 수도 없고, 한 사람이라도 피해를 보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할 수도 없다. 도시는 계속 변해야 한다. 도로도 만들어야 하고 철도도 놓아야 하고 공원도 만들어야 하며 오래된 지역은 다시 개발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개발하느냐 마느냐만이 아니다. 누가 비용을 부담하는지, 보상은 정당한지, 개발의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까지 묻는 것이 도시계획이다. 센트럴파크는 바로 그 질문을 170년째 던지고 있다.
현재의 센트럴파크도 완성된 것이 아니다
놀라운 사실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 공원조차 계속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2025년에는 북쪽 할렘 미어(Harlem Meer)에 1억 6000만 달러 규모의 데이비스 센터가 문을 열었다. 오래된 수영장과 스케이트장 시설을 다시 설계해 여름에는 수영장, 겨울에는 아이스링크, 봄·가을에는 잔디 공간으로 활용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센트럴파크 북쪽과 할렘 지역 주민들의 접근성과 이용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흥미로운 대목이다. 170년 전 공원을 만들면서 기존 공동체를 밀어냈던 도시가 이제는 주변 공동체를 어떻게 공원 안으로 더 끌어들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도시계획도 시대와 함께 진화한다. 과거에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누가 그 공간을 누릴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앞으로 공원은 ‘좋으면 있는 시설’이 아니다
센트럴파크의 미래에는 또 하나의 역할이 추가되고 있다. 기후변화다. 도시의 기온이 높아지고 폭우가 강해질수록 숲과 습지, 토양과 수변 공간의 역할은 커진다. 센트럴파크 관리기관은 현재 공원을 하나의 거대한 실험실처럼 활용해 기후 위험과 생물다양성을 분석하고, 향후 기후변화에 대응할 관리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 예일대 환경대학원 등과 함께 ‘센트럴 파크 클라이미트 랩(Central Park Climate Lab)’도 운영해 왔다.
19세기의 공원이 도시인의 휴식처였다면, 21세기의 공원은 휴식처이자 생태계, 폭염 대응시설, 물관리 시설, 도시의 공동체 공간으로 역할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좋은 도시를 평가하는 기준도 달라질 것이다. 건물이 얼마나 높은가. 아파트가 얼마나 비싼가. 기업 본사가 얼마나 많은가. 그것만으로 도시의 경쟁력을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사람이 얼마나 걷고 싶은가. 아이들이 어디에서 뛰어노는가. 더운 날 어디에서 쉴 수 있는가. 돈을 쓰지 않고도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있는가. 이런 것들이 점점 중요해진다.
서울에도 같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센트럴파크를 보면서 꼭 뉴욕 이야기만 할 필요는 없다. 우리 도시에서도 똑같은 갈등이 반복된다. 재건축과 재개발을 할 것인가. 용산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 한강변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공원과 녹지를 얼마나 확보할 것인가. 주택 공급을 위해 그린벨트를 풀 것인가. 도심의 비싼 땅을 공원으로 남기는 것이 맞는가, 아니면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맞는가. 어느 한쪽에 언제나 정답이 있는 문제는 아니다.
집도 필요하다. 도로도 필요하다. 기업도 필요하다. 공원도 필요하다. 그래서 도시계획은 어렵다. 오늘 필요한 것과 50년 뒤 필요한 것을 동시에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1850년대 뉴욕 사람들이 2026년 맨해튼의 모습을 정확히 예상했을 리 없다.
하지만 그들은 한 가지 선택을 했다. 도시가 아무리 커져도 사람들이 숨을 쉴 공간 하나만큼은 남겨 두자는 것이었다. 그 선택의 가치를 우리는 170년 뒤에 확인하고 있다.
위대한 도시는 무엇을 지을지보다 무엇을 남길지를 결정한다
센트럴파크를 걷다 보면 빌딩 숲 사이로 갑자기 하늘이 넓어진다. 그 풍경을 보면서 우리는 대개 옴스테드와 복스의 위대한 설계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그 잔디밭 아래에는 한때 누군가의 집이 있었다. 누군가의 학교가 있었고 교회가 있었고 아이들이 뛰어놀았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사라진 자리 위에 새로운 공공공간이 만들어졌다.
그 공간은 다시 수많은 사람의 삶을 바꾸었다.
센트럴파크는 그래서 단순한 공원이 아니다. 도시가 개인의 권리와 공동체의 이익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역사책이다. 과거의 센트럴파크가 우리에게 말한다. 미래를 위해서는 때로 과감한 도시계획이 필요하다. 현재의 센트럴파크가 말한다. 좋은 공공공간은 도시 전체의 가치를 높인다. 그리고 미래의 센트럴파크가 묻는다. “우리는 지금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도시는 건물을 많이 지었다고 위대해지지 않는다. 가장 비싼 땅까지 전부 돈으로 바꾸는 도시가 가장 부유한 도시도 아니다. 어쩌면 진짜 부유한 도시는, 가장 비싼 땅 한가운데를 모든 사람에게 내줄 수 있는 도시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