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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트로픽 ‘책 사냥’의 그림자…한강·김영하 작품도 ‘무단 다운로드’

한국 작가 작품 21종 확인…출판계, 학습 데이터 출처 공개·보상 촉구

[비즈한국] 인공지능(AI) 성능 경쟁이 학습 데이터 확보 경쟁으로 번진 가운데 미국 AI 기업 앤트로픽이 불법 복제 사이트에서 내려받은 도서 목록에 한강·황석영·김영하 등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실물 도서를 대량 구매해 스캔하는 프로젝트 추진 사실이 드러난 데 이어 음악 출판사들과도 저작권 분쟁을 벌이면서 데이터 확보 방식이 법적 리스크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다음 달을 목표로 추진 중인 기업공개(IPO) 계획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미국 AI 기업 앤트로픽이 불법 복제 사이트에서 내려받은 도서 목록에 한강의 ‘소년이 온다’ 등 한국 작가 작품 21종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2024년 10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 직후 서울의 한 서점에서 시민들이 작가의 책을 구매하는 모습. 사진=박정훈 기자

불법 전자책 내려받고 실물 책 사들여 스캔…법원은 행위 구분

이번 논란은 미국 작가 안드레아 바츠와 앤트로픽 간 소송을 계기로 주목받았다. 2024년 8월 바츠 등은 앤트로픽이 ‘라이브러리 제네시스’ 등 불법 복제 전자책 사이트에서 도서를 대량으로 내려받아 AI 챗봇 클로드 개발에 활용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법원은 2025년 6월 합법적으로 구매한 도서를 AI 학습에 이용한 행위는 공정이용(fair use)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공정이용은 저작권자의 허락이 없더라도 비평·연구 등 일정한 목적과 이용 방식, 기존 저작물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저작물 이용을 허용하는 제도다. 반면 불법 복제본을 내려받아 보관한 행위는 별도의 저작권 침해 쟁점이라고 봤다. AI 학습의 적법성과 학습 데이터를 확보하는 과정의 적법성을 구분한 것이다.

이후 앤트로픽과 원고 측은 약 50만 종의 도서를 대상으로 15억 달러(약 2조 원) 규모의 합의에 이르렀고 미국 법원은 올해 7월 이를 최종 승인했다. 앤트로픽은 합의 과정에서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전체 합의금을 기준으로 한 작품 당 보상액은 약 3000달러(약 430만 원)로 추산된다. 다만 실제 지급액은 저작권자별 청구와 권리 배분 등에 따라 달라진다. 지난 9월 공개된 1차 배분 예상액은 작품당 약 2204달러였다. 작가와 출판사 사이의 배분 비율을 두고 이견이 발생해 일부 청구 내용을 조정하는 절차도 진행됐다.

미국 법원은 불법 복제 도서의 다운로드·보관을 둘러싼 저작권 집단소송에서 앤트로픽과 원고 측이 합의한 15억 달러(약 2조 원) 규모의 합의안을 최종 승인했다. AI 챗봇 ‘클로드’ 개발사 앤트로픽의 로고. 사진=AP/연합뉴스

한편 재판 과정에서는 앤트로픽의 또 다른 데이터 확보 방식도 드러났다. 워싱턴포스트는 2026년 1월 공개된 법원 문서를 토대로 앤트로픽이 2024년부터 ‘프로젝트 파나마’를 추진했다고 보도했다. 수천만 달러를 들여 중고 서점과 도서 유통업체 등에서 실물 책을 대량으로 사들인 뒤 제본을 잘라 스캔하고, 남은 책은 재활용하는 방식이다. 

실물 도서를 합법적으로 구매했다고 해서 그 내용을 복제할 권리까지 자동으로 얻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법원은 이번 사건에서 구매한 도서를 스캔해 AI 학습에 이용한 행위와 불법 복제본을 확보·보관한 행위를 구분했다.

데이터 확보 비용 커지나

기업들이 책 확보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데이터 품질 때문이다. 책은 인터넷 게시물과 달리 편집과 교정을 거친 긴 글로, 문장 구성과 개념 간 관계를 학습하는 데 활용 가치가 있다.

앤트로픽의 저작권 분쟁은 다양한 분야로 번지고 있다. 지난 1월 유니버설뮤직그룹·콘코드·ABKCO 등 음악 출판사들은 앤트로픽이 가사와 악보를 불법으로 내려받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2만여 곡의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며 30억 달러 이상의 법정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8월에는 소니뮤직과 워너뮤직 계열 출판사들도 저작권 침해 소송에 나섰다. 음악 분야에서도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확보한 콘텐츠를 AI 학습에 이용했는지가 법적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국내 출판계는 AI 학습 데이터의 출처 공개와 권리자 동의, 정당한 대가 지급을 요구하고 나섰다. 사진은 서울의 한 대형 서점 매대에 한강 작가의 작품들이 진열된 모습. 사진=박정훈 기자

국내 출판계도 대응에 나섰다. 한국출판인회의는 지난 16일 정부와 국회, AI 기업에 학습 데이터 출처 공개와 권리자 동의, 정당한 대가 지급을 요구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앞서 지난달 29일에는 한국작가회의 등 12개 출판·저작자 단체가 ‘독자를 위한 출판사와 저작자의 AI 사용 원칙’을 내놓기도 했다. AI 활용 자체를 거부하기보다는 저작물 이용의 투명성과 보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유럽연합(EU)은 범용 AI 모델 제공자에게 저작권 규정을 준수하는 정책을 마련하고 학습 데이터 내용에 관한 요약을 공개하도록 요구한다. 저작권자가 텍스트·데이터 마이닝 이용을 거부한다는 의사를 적법하게 표시한 경우 이를 존중해야 한다. 국내에서도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면서 AI 산업의 데이터 활용을 지원할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앤트로픽은 다음 달 중순 IPO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1일 앤트로픽이 11월 9일이 포함된 주에 공모 절차에 돌입해 추수감사절 이전 거래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앤트로픽의 3분기 매출은 168억 달러로 전 분기보다 45% 증가했다. 다만 성장률 둔화에 일부 투자자들은 IPO 기업가치 기대치를 기존 약 2조 달러에서 1조 5000억 달러 안팎으로 낮춰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매출 증가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상장 전 기업가치 평가와 저작권 관련 법적 리스크를 어떻게 반영할지도 주목된다.

강은경 기자

기술과 산업을 취재하고 씁니다.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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