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그 내막을 더욱 자세히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알쓸비법)’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AI 사용이 대중화한 지금, 법률 업무의 실무는 어떻게 변했을까. 지금부터 나오는 내용은 업계의 일반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다만 필자가 최근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바를 토대로 바뀐 모습을 정리해 본다.
먼저 옛날 이야기를 해보자. 필자가 변호사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땐 이메일 한 통도 한참을 고민해 작성했다. 소속 변호사가 초안을 써서 파트너 변호사에게 보고하면, 파트너는 이를 며칠간 검토한 뒤 발송했다. 이런 업무 방식은 옆에서 보기엔 다소 답답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불만도 있었지만, 철저한 숙고와 검토를 거치면 품질이 나아지니 그 정당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방망이 깎는 노인’을 보듯 존경심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이런 방식은 거의 사라졌다. 남아 있더라도 바람직한지 잘 모르겠다. 작문 실력이 사람보다 뛰어난 AI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속도’와 ‘초안의 완성도’에서는 사람이 AI를 이길 수 없다. 법률 문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AI가 대중화한 지금, 업계에는 어떤 변화가 나타나고 있을까. 먼저 서면 공방이 놀라운 속도로 전개된다. 상대방의 문건이 송달된 시점부터 한 시간 이내에 반박 문건을 준비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원래 민사소송에는 어느 정도 관습화·정형화된 서면 공방의 리듬이 있었다. 소장이 제출되면 으레 답변서를 내고, 쟁점이 정리되면 참고서면을 주고받는 식이다. 아무리 간단한 서면이라도 사람이 직접 쓰려면 수 시간이 걸리므로, 불필요한 서면은 자제하고 의뢰인과 대리인이 납득할 수준에서 공방이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AI 시대에는 도가 지나칠 만큼 압도적인 물량이, 상상하기 어려운 짧은 시간 안에 쏟아지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인간의 창의성이 개입될 여지가 크지 않은 업무는 이제 AI로 대체된 듯하다. 프루프리딩(proofreading), 즉 오탈자와 형식상의 오류를 잡아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분량이 30쪽을 넘어가면 집중력이 떨어져 오탈자를 놓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AI에 맡기면 순식간에, 그것도 정확하게 검수해낸다.
본격적인 업무에 앞서 판례·법리·관행·규제 등 일반적인 내용을 정리하는 리서치도 AI로 대체하고 있다. 과거에는 소송 절차나 실무에 관한 업무를 하기 전 ‘법원실무제요’를 확인하지 않으면 처리에 문제가 없다고 장담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있었다. 지금은 반대로, AI로 관련 내용조차 정리하지 않고 일을 처리하면 성의가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회의록 작성도 그렇다. 과거에는 저연차 소속 변호사가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업무였다. 사건 진행의 기초자료가 되는 만큼 은근히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회의를 녹음해 활자화한 뒤 AI로 정리하면 짧은 시간 안에 고품질 자료를 확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형화된 양식을 채워 넣는 반복 작업이 있다. 건설현장 공무는 대금 지급 같은 정형적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공문을 다수 작성·발송해야 한다. 가맹본부 담당자는 점주에게 정책을 설명하거나 시정을 요구하는 공문을 자주 쓴다. 과거에는 이런 공문 한 장에도 상당한 시간이 들었으나, 지금은 AI로 간단히 작성한다.
여기까지 보면, AI가 곧바로 대체하는 업무는 대체로 저연차·주니어가 맡던 일이다. 그래서 AI는 ‘팀장을 위한 도구’처럼 보인다. 동시에 AI 탓에 주니어가 업무를 숙달할 기회를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로 오탈자 교정, 리서치, 회의록 같은 기본기는 저연차가 반복하며 몸에 익히던 과정이었는데, 그 과정을 통째로 생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외로 고부가가치로 평가받던 작업도 AI가 대신할 수 있다. 규제 사안에서 시장 구조와 현황, 의뢰인의 경제적 상황 등을 종합해 규제기관을 설득하는 신청서·의견서를 작성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과거에는 이런 문서를 쓸 수 있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고, 그들은 이른바 ‘전문 변호사’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변호사들은 전문 변호사가 남긴 기재례를 찾아 헤맸고, 대형로펌 전산 깊숙한 곳에 저장된 양식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AI를 쓰면 이런 문서도 어렵지 않게 만들어진다. 이 또한 AI 시대에 필자가 느끼는 아이러니다.

쓰고 싶지 않아도 AI를 쓰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의뢰인이 이미 AI로 정리·검토한 자료를 들고 와, 그것을 근거로 질의하거나 상담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AI 자료는 대체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프롬프트 자체가 부정확하고, AI 특유의 편향과 환각을 교정하지 않은 탓이다. 정확한 답을 얻으려면 반복 질문을 통해 교정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그 과정이 대부분 생략돼 있다.
그럼에도 업무 방식은 분명히 바뀌었다. 과거에는 변호사가 회의자료를 만들어 전달하며 상담을 시작했다면, 지금은 의뢰인이 AI 자료를 들고 오고, 그 자료 중 맞고 틀리고 보완할 부분을 가려내는 데서 상담이 출발한다.
사건을 수행하며 관찰한 바로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는 사람이 AI도 잘 쓴다. 사람을 100% 믿지는 않되 교정할 것은 교정하고, 그렇다고 세세하게 통제하지도 않으며, 적당한 재량을 주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는 리더십을 가진 사람일수록 AI로 엄청난 생산성을 보였다.
또한 법률 업무에서 AI는 근본적으로 사용자의 식견을 넘어서지 못했다. 앞서 말한 오탈자 교정, 리서치, 회의록, 자료 정리는 AI가 사람보다 낫다. 그러나 사건 대응 전략 수립, 주장 사실의 강약 조절, 상대를 설득하는 논리의 개발은 전적으로 사람의 능력에 좌우됐다. 바로 이 지점에서 AI는 수단이자 도구에 불과하다.
혹자는 AI의 발전으로 변호사 일감이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정반대로 본다. 오히려 변호사의 일은 폭증할 것이다. AI 덕분에 소송의 기초가 되는 자료와 증거가 폭증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번거로워서 그냥 넘어갔던 일이 AI의 도움으로 법률 분쟁으로 번진다. 구두 협의에 그쳤을 일이 이제는 AI로 깔끔하게 정리된 공문으로 오간다. 우리나라에는 수억 원을 빌려주면서도 차용증 한 장 쓰지 않고, 수십억 원짜리 임야를 매매하면서 한 장짜리 계약서만 작성하던 비(非)법률적 관습이 있었다. 그 탓에 소송하려 해도 증거가 없어 못 하던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AI의 도움으로 자료를 갖추기 어렵지 않게 됐다.
또 다른 측면에서 AI의 대중화는 불필요한 분쟁과 소송도 야기한다. 자료와 정보가 폭주하지만 법률 업무에 훈련되지 않은 사람은 그 물량에 압도당하거나, AI가 일방적·편향적으로 내놓은 결론을 검증하지 못한 채 맹신한다.
AI는 대체로 질문자의 입맛에 맞는 답을 내놓는다. 그래서 질문자가 원하는 대로 “이 소송은 이길 수 있다”고 답하곤 한다. 그러나 실제 소송은 전혀 그렇지 않다. 승패는 일단 진행해 봐야 안다. 사전 예측에는 한계가 있어, 소송을 흔히 살아 있는 유기체에 비유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법률적 판단을 AI에 맡기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그럼에도 주변에서는 AI의 일방적·편향적 답변만 믿고 소송을 거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를 감당해야 하는 법원과 수사기관은 상당히 부담이 크겠으나, 결과적으로 법률 분쟁은 늘어날 것이고 변호사 업무도 그만큼 많아질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메일 한 통을 며칠간 숙고하던 그 시절의 ‘방망이 깎는 노인’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초안을 누가, 또 무엇이 쓰든, 그 초안이 맞는지 틀린지를 끝까지 책임지고 판단하는 몫은 여전히 사람에게 남아 있다. AI 시대에 변호사의 가치는 바로 그 자리에서 결정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