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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 AI
④ 얼리어답터 넘어서려면? 스마트워치에서 배워라

대체불가능 ‘필요한 순간’ 확보해야…압도적 편의성과 사회적 수용성 확보가 관건

편집자 주
2012년 구글 글래스가 처음 등장한 지 10여 년, 스마트 안경이 다시 빅테크의 격전지로 떠올랐다. 새로운 AI 접점을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한때 실험적 기기로 남았던 스마트 글래스가 일상 속 기기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플랫폼 경쟁과 부품·공급망 변화, 프라이버시 규제 공백을 차례로 짚어본다.

[비즈한국] 이제는 대세가 된 스마트워치도 처음부터 필수 IT 기기로 인정받은 건 아니다. 2013년 삼성 갤럭시 워치의 전신 격인 갤럭시 기어가 출시되고 스마트워치 시장이 열렸을 때도 “구태여 왜 사야 하는지 모르겠다”거나 “작은 화면으로 스마트폰을 대신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뒤따랐다. 

2년 뒤 애플워치 1세대가 등장하고, 단독 통화와 배터리 성능을 대폭 개선한 기어 S2가 히트를 치면서 스마트워치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반전의 계기는 세 가지였다. 스마트폰이 대체할 수 없는 심박수·수면 측정 등 신체 밀착형 기능, 폰을 꺼내지 않고 알림을 확인하는 마이크로 인터랙션의 편의성, 그리고 패션 아이템으로서의 효용성이다. 무선이어폰 역시 비슷한 길을 걸었다. ‘선이 없다’는 단순하고 확실한 편의성이 이동과 운동의 방식을 바꿨고, 잦은 충전과 비싼 가격이라는 단점을 상쇄하며 독자적 시장을 열었다. 

스마트워치와 무선이어폰은 기존 기기를 소형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마트폰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불편을 줄이면서 독자적인 시장을 만들어냈다. 사진=픽사베이

신유형의 기기가 얼리어답터의 전유물을 넘어 대중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단점을 감수할 만큼 분명한 사용 이유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AI 안경은 아직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는 평가다. 사진·영상 촬영이나 음악 감상, 음성비서 등 현재 스마트 안경에서 제공하는 기능 상당수는 스마트폰과 무선이어폰으로도 구현할 수 있다. 안경이라는 새로운 폼팩터를 감수할 만큼 기존 기기보다 압도적으로 편리한 기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아직 의견이 갈린다.

시각장애인엔 ‘삶을 바꿔놓은 기술’로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은 생성형 AI다. 시각과 음성을 함께 이해하는 멀티모달 AI가 발전하면서 스마트 안경은 단순한 촬영 기기를 넘어 주변 상황을 해석하는 인터페이스로 진화하고 있다.

외국어 메뉴판을 보고 번역을 요청하거나, 낯선 물건을 가리키며 용도를 묻거나, 눈앞의 표지판이나 안내문을 읽어달라고 하는 식이다. 스마트폰으로 같은 작업을 하려면 기기를 꺼내 카메라를 실행하고 대상을 비춘 뒤 질문하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AI 안경에서는 눈앞의 상황을 그대로 질문할 수 있다. 사용자가 별도 기기를 조작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장점이다.

AI와 결합한 스마트 안경은 눈앞의 정보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새로운 인터페이스로 진화하고 있다. 외국어 메뉴판이나 표지판을 번역하거나 주변 사물과 상황을 설명하는 등 기존에는 스마트폰을 꺼내 카메라를 실행해야 했던 작업을 음성만으로 처리할 수 있다. 사진=Unsplash

특히 이런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곳이 접근성 분야다. 시각장애·저시력 이용자에게 AI 안경은 단순히 ‘있으면 편한 기기’와 의미가 다를 수 있다. 주변 사물과 환경을 설명하거나 글자를 읽어주는 기능은 스마트폰의 카메라와 화면을 조작하는 과정을 줄이는 수준을 넘어 일상생활의 독립성을 높이는 보조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평가가 나온다. 미국 IT 매체 더버지 팟캐스트에 출연한 시각장애인 청취자는 시각지원 기능을 두고 “이건 ‘해결책을 찾아 헤매는 문제’가 아니라 내 삶을 바꿔놓은 기술”이라고 반박했다. 모든 이용자에게 필요한 기능은 아닐 수 있지만, 특정 사용자에게는 없으면 안 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관건은 이 같은 ‘필요한 순간’을 얼마나 많은 소비자에게, 얼마나 자주 만들어낼 수 있느냐다. IT 매체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메타의 전작 레이밴 스토리즈는 출시 7개월 만에 구매자의 약 90%가 사용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태 안경’ 조롱…무단 촬영 문제 해결해야

그럼에도 얼굴에 쓰는 기기가 갖는 물리적·사회적 한계는 여전하다. 무단 촬영 우려를 둘러싼 논란은 해외에서 먼저 본격화했다. 올해 미국에서는 스마트 안경으로 여성을 몰래 촬영한 영상 등이 확산하면서 프라이버시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레이밴 메타는 ‘구글 글래스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은 스마트 안경’으로 조명됐지만, 최근 오용 사례가 이어져 이른바 ‘변태 안경(pervert glasses)’이라는 조롱 섞인 별칭이 다시 거론되는 등 사회적 수용성 논쟁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스마트 안경은 오히려 ‘착용한 게 티가 나야’ 프라이버시 우려가 줄어드는 모순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카메라가 탑재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지금 촬영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경계심과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다.

AI가 스마트 안경의 활용도를 높이고 있지만 대중화를 위해 넘어야 할 장벽도 여전하다. 스마트폰과 무선이어폰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사용 경험을 확보하는 동시에 착용자와 주변인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물리적 조건을 갖추는 것이 관건이다. 갤럭시 버즈4 프로. 사진=삼성전자

미국 워싱턴대 연구진이 올해 국제 학술대회 CHI에 발표한 논문은 “이어폰은 이미 사회적으로 정상화된 폼팩터라 채택 장벽이 낮지만, 그 시각적 무해함이 오히려 카메라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주변인이 감지하기 어렵게 만들어 방관자의 우려는 해소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물리적인 한계도 남아 있다. 기능을 추가할수록 무게와 발열, 배터리 소모가 커지고, 이를 줄이면 사용 가능한 기능이 제한되는데, 카메라와 마이크, 배터리, AI 연산 기능을 넣으면서도 일반 안경처럼 가볍게 만들어야 하는 과제다.

AI 안경의 다음 단계는 스마트워치처럼 특정 영역을 확실히 보완하는 제3의 폼팩터로 안착하는 길일 가능성이 크다. 남은 과제는 사회적 수용성이라는, 훨씬 더디고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하는 일이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지속적으로 유저에게 수용되고 시장이 확장되려면 사생활 및 보안 관련 우려가 해결되고 납득되어야 한다”며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소비자가 채택하지 않는다면 사장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스마트 안경을 일반 소비자(B2C) 시장으로만 한정해 바라볼 필요는 없다는 시각도 거론된다. 황 교수는 “산업 현장 등에서의 실질적인 쓰임새를 찾으며 B2B(기업용) 영역에서 접근하는 방향도 수요 다각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강은경 기자

기술과 산업을 취재하고 씁니다.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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